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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난 ‘수원화성 낙성연’…佛 '정리의궤' 통해 고증
화성연구회 주축으로 재현 성공, 상하동락·애민정신 구현
2018-10-06 00:00:13최종 업데이트 : 2018-10-29 09:00:02 작성자 : 시민기자   김윤지
낙성연 궁중연희 '헌선도'가 봉수당에서 열리고 있다

낙성연 궁중연희 '헌선도'가 봉수당에서 열리고 있다

4일 화성행궁과 일대에서 제55회 수원화성문화제 전야제 행사가 풍성하게 치러졌다. 8시 늦은 저녁시간이지만 행궁광장은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날씨와 함께 수원화성문화제를 만끽하러 온 시민들이 많았다. 4일은 고유별다래, 달빛가요제, 그리고 낙성연이 열렸고 전야경축타종도 함께 진행됐다.

이번 수원화성문화제는 '여민동락, 民 과 함께 별을 헤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의미를 구현한 낙성연을 보기위해 화성행궁 봉수당을 찾았다. 낙성연은 1796년 10월 16일 수원화성 준공을 축하하는 자리로 만들어진 잔치다. 본격적인 시작 전 이한규 부시장은 낙성연에 대한 소개로 인사를 대신했다. 

"지금으로부터 222년 전 이곳에서 화성이 준공됩니다. 지금은 준공이라는 말을 쓰지만 그 당시에는 성이 완성되면 '낙성'이라는 말을 썼어요. 정조임금은 낙성을 크게 기념하는 연회를 열었는데 그것이 바로 '낙성연'입니다. 낙성연을 열었던 당시에는 하루 종일 백성과 왕족이 어울려서 잔치를 즐겼다고 합니다. 또 정조대왕은 화성을 준공하기까지 애썼던 일꾼들에게 미리 잔치를 열어주고 여비를 보태줬다고 해요. 정조가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사상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 마음은 낙성연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낙성연에 선보인 궁중연희 '쌍무고'

궁중연희 '쌍무고'를 선보였다

궁중연희와 민간연희 선보이며 222년 모습 그대로 재현

"수원화성은 1794년 7월 정월 7일 묘시에 석재 뜨는 공사를 시작하여 1796년 9월 10일 모든 성역을 완공하였노라. 나라가 태평하고 풍년이 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귀뚜라미가 집에 있고 짐수레가 쉬게 되었다. 바로 상하가 함께 즐거워하는 상하동락(上下同樂)이요, 태평에 춤추며 두 동이 술로 만수무강을 빎이 마땅하노라. 조선 400여년 역사에 처음 있는 큰 공사를, 2주년 사이에 이와 같이 이루었다. 만백성의 마음으로 성곽이 우뚝 하고 화성행궁이 거대하고 화려하니 오늘 낙성잔치를 어찌 장대하게 열지 않으리오. 오늘 낙성연을 끝으로 화성의 성역에 참여한 모든 백성들의 노고를 치하하노라. 이곳에 모인 백성들 모두는 풍류를 즐기고 마음껏 취하기 바라노라!"

총리대신 좌의정 채제공이 낙성연 시작을 알렸다. 궁중연희는 헌선도를 시작으로 쌍무고로 이어졌다. 겹겹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무용수들이 고운 자태로 보여준 헌선도는 정적이었지만 절제미가 넘쳤다. 하지만 쌍무고는 좀 더 동적인 동작이 북소리와 함께 흥을 돋우기 충분했다. 깊고 웅장한 북소리는 하늘을 찔렀고 북을 둘러싼 무용수 4명이 추는 춤은 마치 한 송이 꽃이 피어 오르는 모습과 비슷했다. 신명나는 북소리와 함께 관객들 박수도 높아져갔다.

낙성연이 5년째 진행되고 있지만 올해는 철저하게 역사 고증을 통해 재현한 노력이 역력했다. 작년 공연을 준비한 화성연구회가 프랑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낙성연에 대한 자세한 순서와 내용이 담겨 있는 정리의궤를 찾아낸 것이다. 그전에는 낙성연에 대한 간단한 내용만 있었던 화성성역의궤를 참고해서 기획했다고 한다. 특히 쌍무고는 봉수당 진찬연에 나와 있던 무용을 차용했는데 이제서야 비로소 쌍무고 진짜 모습을 찾게 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낙성연을 222년만에 그대로 재현한 의미가 있는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과정을 시민들이 직접 만들어나갔다는 점이다. 화성연구회 한정규 회원장을 비롯한 회원들은 기록을 꼼꼼하게 살폈고 그 내용을 연출가와 공동으로 시행착오를 반복한 끝에 재현에 성공할 수 있었다. 

또 낙성연 출연진 또한 전문 공연단이 아닌 화성연구회 회원들이고 경기도립무용단과 경기도립국악단이 협력했다. 시민들이 직접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고 연구하여 만들어진 최초 낙성연이다.
민간연희 '사자춤'을 선보이고 있다

민간연희 '사자춤'을 선보였다

백성을 사랑한 애민정신 느껴져,,, 마지막은 신명나는 춤으로 마무리

"화성에는 축성에 참여했던 석공들에 대한 헌사가 새겨져 있습니다. 팔달문 안쪽에 김상득이라는 석공 이름이 새겨져 있는 공사 실명판이 남아 있어요. 창룡문도 마찬가지고 화서문은 전쟁으로 인해 희미하지만 분명히 석공들 이름이 남아 있어요. 공사 실명판은 높은 벼슬아치들과 동등하게 이름을 넣어주었는데 이는 정조가 인간에 대한 존중이 깊이 남아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어요."

궁중연희가 끝난 뒤에는 사회를 맡은 김준혁 한신대학교 교수는 수원화성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설명을 들은 한 시민은 "낙성연을 관람하는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공연 중간에 설명이 곁들여지니 수원화성에 대해 몰랐던 사실도 알고 그만큼 관심과 애정도 생겼다"며 감동과 재미와 유익함을 모두 갖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신나게 춤판을 벌이자!" 낙성연 마지막에 관객들이 무대로 올라 신명나게 춤을 추고 있다

이어 낙성연은 민간연희로 이어졌고 사자춤, 신장수춤, 만석승무는 시간이 갈수록 점차 흥을 돋구었다. 사자춤에서는 익살스러운 얼굴을 가진 두 사자가 몸과 얼굴을 흔들며 뒹구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냈다. 특히 마지막에 사자가 두 사람 키 정도 되는 높이로 훌쩍 커졌을 때는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민간연희 마지막은 다함께 어울려 신나는 춤 한판으로 마무리 되었다. 연희를 만든 이유도 만든 사람도 즐기는 사람도 모두 시민들이었다. 그동안 자리에 앉아서 어깨춤을 들썩이던 시민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고 자연스럽게 무대로 올라왔다. 처음 본 사람도, 함께 온 사람도 어깨동무를 하거나 강강술래를 하며 신명나게 즐겼다.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모든 이들과 함께 멋진 공연을 하게 되어 기쁩니다. 늘 그렇듯이 공연이 끝나면 아쉬움도 있어요. 시간 제약이 있어 줄타기 등 많은 공연들이 있었는데 현장상황 때문에 다 하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하지만 내년에는 더 잘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간직해야겠죠. 제55회 수원화성문화제는 많은 공연이 열리는데 시민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많은 수원시민들이 문화적 가치를 높이는데 동참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공연을 마친 김준혁 교수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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