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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인터뷰】 밥먹을 시간 아까워서 국수로 때웠어요
【수원시 승격 70주년 기념】 70세 맞는 수원쟁이가 본 수원
2019-04-22 16:32:06최종 업데이트 : 2019-04-24 10:30:06 작성자 : 편집주간   강성기

왕이 만든 시장, 팔달문시장. 사진/e수원뉴스 하주성 기자

왕이 만든 시장, 팔달문시장. 사진/e수원뉴스 하주성 기자

올해가 수원시로 승격된지 70주년 되는 해이다. 본지는 이를 기념해서 70세인 수원쟁이의 일대기를 통해 수원의 지난날을 가늠해 본다. ------ <편집자 주>

21일 수원 팔달문시장은 이주민이 참여하는 팔달문다문화가요제를 즐기러 온 인파들로 가득 찼다. 오전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무대쪽을 향한다. 행사를 주관하는 팔달문시장 상인회도 최종 점검을 하느라 분주한 움직임을 보인다. 사무실을 드나드는 사람들 틈에 이틀전 인터뷰를 한 김종택 팔달문시장 상인회 이사도 보인다. 이상은 팔달문시장의 오전 풍경이다.


상가 절반이 양장점과 수입품 가게
 

"제가 팔달문시장에 처음 왔을때인 76년에는 이곳 상가 절반이 양장점과 수입품 가게였어요. 때문에 손님들의 수준도 꽤 높았죠." 19일 상인회사무실에서 만난 김종택 상인회 이사는 이곳에 자리를 잡던 1976년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30년이 지난 이 자리는 신발, 의류, 가방가게가 차지했다.

 

고향이 충북 충주인 김종택 이사는 충주에서 초등학교를, 양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친 후 서울을 거쳐 수원에 둥지를 틀었다.

2003년 차없는 거리조성을 위한 팔달문시장 통로공사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이용창

2003년 차없는 거리조성을 위한 팔달문시장 통로공사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이용창

김 이사는 당초 수원의 한 회사에 취직하려 했으나 야채판매업을 해보자는 사촌형의 제안에 진로를 틀어 배추판매업에 뛰어들었다. "김장철에 배추를 판매하는 일인데 어떻게 시간이 지난줄 몰랐어요. 악착같이 일한 덕분에 당시 회사원 월급의 6~7배는 벌었어요"

 

밥 먹을 시간이 없어 거의 매일 점심은 청미당국수로 때웠다. 지금은 이 국수가게가 문을 닫아 당시의 가격은 정확히 알수 없지만 10~20원 정도 했을 거라고 말한다. 현재 시장에서 장터국수 가격이 3000원 정도하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의 국수가격이 지금의 15~30분의 1 수준이다.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데 2~3분이면 충분했다는 그는 "밥먹고 할 것 다하면 언제 돈을 버냐"고 반문한다.

 

이렇듯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일만 하기를 2년. 도저히 몸이 버터주질 않았다. 결국 그는 배추판매업을 그만 두었다. 이후 엿장사, 신발장사, 팬티‧브라자 등 내의장사, 호떡장사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술장사하고 색시장사를 빼고 다했어요.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면서 내 가게를 장만하자 주위에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며 텃새가 심했어요." 주위의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텃새 극복위해 죽어라 일해
 

명절에 집에 가지않고 악착같이 일한 덕분에 수원백화점 코너에 0.8평짜리 상가 2채와 인근에 6평규모의 가게를 구입하고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어엿한 내 점포를 갖게 된 그는 97년 종업원 대여섯명 두고 '신데렐라'란 상호로 캐주얼 신발가게를 차렸다.

 

타고난 끈기 때문에 가게는 나날이 번창했다. "장사가 신통치 않은 가게 사장님들이 '복을 받는다'며 내 손을 잡으러 올 정도였어요." 또 장사가 잘 되다 보니 자신의 상호인 '신데렐라'를 사용하는 가게가 부쩍 늘었다며 "이럴줄 알았으면 상표등록이라도 해놓을 것"이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비슷한 시기에 지동에 아담한 2층집을 장만했는데 지금까지 딸 식구와 함께 살고 있다. 74년에 결혼해서 1남 2녀를 둔 그는 무탈하게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고 자평한다.

돈은 버느라 밥먹을 시간이 없어 매일 점심 천미당국수를 먹었다는 김종택 팔달문시장 상인회 이사.

돈은 버느라 밥먹을 시간이 없어 매일 점심 청미당국수를 먹었다는 김종택 팔달문시장 상인회 이사.

그에게 위기도 있었다. 근면 성실한 덕분에 IMF도 그를 비켜갔지만 2000년대에 들어 애경백화점과 대형유통업체가 속속 문을 열면서 매출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위기도 그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악착 같이 버틴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김 이사는 몇해전 20여년 가까이 운영해온 가게를 정리하고 팔달문시장 상인회 업무에 몰두하고 있다.

 

격동의 시기, 팔달문시장과 함께 한 세대를 풍미하고 이제는 사업전선에서 은퇴해서 후배 상인들을 위한 마케팅 노하우 전수에 여념이 없는 노장의 외모에서 치열했던 삶의 흔적을 가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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