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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특집】광교산 '썬더볼트 작전' 전투현장 찾아
광교산 방어선이 무너지면 화성, 평택, 천안까지 방어선 구축할 고지 없어
2019-06-05 22:07:57최종 업데이트 : 2019-06-19 10:43:30 작성자 : 시민기자   김연수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e수원뉴스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호국보훈에 대한 특별기획 기사를 영역별 취재하고 있다. 기자는 1951년 1월 30일부터 2월 10일까지 국군 1사단과 미군 25사단, 터키 1개 대대가 칠보산과 광교산, 관악산을 연계한 '썬더볼트' 작전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광교산을 찾았다. 북한군과 중공군을 격퇴시키기 위해 싸우다 목숨을 바쳤으나 유해가 수습되지 못하고 오랜 세월 홀로 잠들어 있다가 뒤늦게 국가의 의해 유해가 발굴된 현장에서 묵념하고 명복을 빌었다. 

 

광교산 썬더볼터 전투 안내문

광교산 썬더볼터 전투 안내문

 

광교산 전투는 인해전술로 공격해 오는 중공군을 맞아 산악 전투를 치열하게 벌였던 곳이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면서 반격에 나선 유엔군은 패퇴하는 북한군을 따라 두만강 유역까지 진격해 갔지만 중공군이 개입 하자 후퇴하기 시작한다. 서울이 함락되고 평택 이남으로 철수했던 유엔군은 다시 반격에 나서 한강이남 지역을 탈환하기 위한 전투를 이어갔다. 이때 미 제8군 사령관인 리지웨이 중장이 작전명 '썬더볼트'를 펼쳐 광교산 등의 전선에서 치열한 공방이 치러진다.


유엔군은 서울 이남까지 적에게 넘겨주는 후퇴를 단행 한다. 이때 철수 명령이 그 유명한 '1.4후퇴'다. 유엔군이 철수하자 피난민이 남쪽으로 내려와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영화로 제작된 1.4후퇴는 광교산 전투 썬더볼트 작전과 깊은 연관 관계가 있다.

 

작전명 썬더볼트는 1.4후퇴 이후 1월 25일 3.8선 이남 수원과 이천을 연결한 방어선을 구축한다. 한국전쟁은 산과 강을 이용한 전투가 많았다. 서울이 함락되면서 관악산과 청계산이 연결되는 광교산에 방어선이 만들어졌고, 밀고 내려오는 적군과 밀리지 않고 지키겠다는 각오로 치른 전투는 치열할 수 밖에 없었다. 전투가 치열한 만큼 양측은 많은 전사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썬더볼트 전투 전사자 유해 발굴지 비석

썬더볼트 전투 전사자 유해 발굴지 비석

 

광교산 썬더볼트 전투에서 전사한 군사들의 유해가 수습되지 못하고 수 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국방부 유해발굴단은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시작했고, 광교산 형제봉 백년수 약수터 전방 300여m에서 유해 2위가 발굴되었다. 현장에는 돌무더기를 쌓고 나무로 된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는데, 2015년 수원시가 비석을 제막하고 태극기를 게양했다.

 

국방부 유해발굴단은 이어 지난해 5월부터 10월까지 광교산 일대를 정밀 탐지하여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발굴 작업에서 전사자 유해 4구와 전투화, 손목시계 등 유품 515점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뒀고, 올해 9월과 10월에 수원지역(수리산군)일대를 선정해 발굴 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단 관계자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6.25전쟁당시 나라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바쳤으나 미처 수습되지 못한 채 아직도 이름 모를 산야에 홀로 남겨진 12만 4000여 위 호국용사들의 유해를 찾아 조국의 품으로 모시는 국가적 숭고한 호국보훈사업을 펼치고 있다. 국가는 무한 책임의지로 나라를 위해 희생된 분들은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 주변이나 등산을 하다 전사 유해나 오래된 유품 등이 발견되면 국방부 유해발굴단으로 신고 해 달라"고 당부했다.    2013년 6월 전사자 발굴지 비석 제막식 전 모습(e수원뉴스 사진)

2013년 6월 전사자 발굴지 비석 제막식 전 모습. 사진/e수원뉴스

 

광교산 형제봉 아래 백년약수터 전방 약 300여m에 6.25전사자 유해 발굴 장소 두 곳이 있다. 2013년까지만 해도 사진(위)과 같은 작은 돌무덤에 유해발굴지역(5호)와 (6호)를 알리는 나무 표지가 전부였다. 표지판에는 '이곳은 국군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한 장소입니다'라고 적혀있다. 기자는 작은 돌무덤과 너무나 초라한 나무 표지판을 보고 2013년 6월 현충일을 맞아 '광교산, 한국전쟁의 아픈 과거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취재를 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오랜 세월 묻혔던 장소가 너무나 초라하다는 시민의 목소리에 수원시는 2015년 호국의 달 6월을 맞아 첫 번째 행사로 1일 유해발굴지에 대리석으로 된 작은 비석 제막식을 가졌다. 비석에는 "이 곳은 6.25전쟁 당시 군사 작전 중 조국을 위해 산화하신 국군장병의 유해와 유품이 발견된 역사의 현장입니다"라고 적혀있다.

 

당시 제막식은 염태영 수원시장과 각계각층의 인사와 등산객 등 50여명이 참석했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제막식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은 순국선열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수원시는 앞으로 국가유공자와 유족에 대한 예우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바 있다.

 전사자 유해 발굴지에 묵념을 마친 등산객 원명재씨와 인터뷰

전사자 유해 발굴지에서 묵념을 드리고 있는 원명재씨와 인터뷰 하는 모습

 

지난 6월 3일 다시 썬더볼트 광교산 작전 전투에서 전사한 유해 발굴 현장을 찾았다. 비석 앞에서 묵념을 하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배낭을 짊어진 등산객이 묵념한다. 묵념을 마치고 떠나려는 등산객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원명재(남.52.구운동)씨는 "광교산을 1주일에 한 번씩 찾곤 하는데 여기 오면 항상 묵념을 드린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유해가 수습되지 못하고 수 십 년이 지난 후에 발견된 것이 가슴 아프다. 고향이 가평인데 가평에서도 6.25전사 유해 발굴이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사자들을 위해 그동안 국가는 무엇을 했나 싶다. 너무나 고생하다 돌아가신 분들인데 늦었지만 그분들의 유해가 전부 발굴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사자 발굴지 비석 앞에서 묵념하는 등산객

전사자 발굴지 비석 앞에서 묵념하는 등산객


한 여성 등산객이 비석 앞에서 묵념한다. 세류동과 매탄동에 거주한다는 50대 중반 여성 등산객은 "광교산을 자주 오는데, 올 때 마다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분께 묵념을 한다. 나라를 지킨 위대한 분께 기도하고, 우리들의 등산이 안전할 수 있게 지켜달라고 당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후 광교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비석 앞에서 묵념과 기도를 올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보다 현장을 벗어난다.  

 

낙동강 전투와 백마고지 전투 등은 다들 알고 있으나 작전명 '썬더볼트 전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광교산은 해발 582m로 평온한 산이지만 한반도에서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면 한강 이남의 최후 방어선을 구축해야할 곳이 바로 이곳이다. 광교산 방어선이 무너지면 화성과 평택 천안까지 방어선을 구축할 마땅한 산이 없다.

'광교산, 한국전쟁의 아픈 과거를 찾아서' 2013년 e수원뉴스 사진

'광교산, 한국전쟁의 아픈 과거를 찾아서'. 사진/2013년 e수원뉴스

 

6월은 온 국민이 정성을 모아 호국영령의 명복을 기원해야 할 보훈의 달이다. 1년 년중 무휴로 밤샘 영업하는 나이트클럽도 현충일인 6월 6일은 영업을 하지 않고 휴업을 한다. 현충일에 음주 영업을 하지 않는 것이 법적 근거가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으며 국민 스스로가 호국보훈에 참여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6월은 국민 모두가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도 아직 외로운 산야에 잠들어 있는 미 발굴 전사자 유해가 하루빨리 나라의 품에 안겨 보훈을 받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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