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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특집】 국립원호원에서 새로운 인생 시작
나라로부터 보호받은 과거, 사회활동으로 보답…전쟁고아, 아동보육소에서 새 출발
2019-06-20 06:45:52최종 업데이트 : 2019-07-12 10:55:56 작성자 : 시민기자   김윤지
"아버지는 6·25 전쟁 이후 휴전이 이루어지고 1954년 1월 18일 지리산 공비 토벌에 참전하셨다가 전사하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겨우 2살 때였죠. 아버지는 휴가 때 제가 태어난 걸 보시고 아주 좋아하셨다고 하지만 저는 얼굴조차 모르죠."
 
수원시보훈회관(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호매실로 225)에 있는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수원시지회 이택열 지회장을 만났다. 전쟁이 가져다준 상처는 유가족들에게 고스란히 남겨졌고 아픈 기억은 아직도 뼈에 사무치듯 남아 있다.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이하 유족회) 수원시지회 이택열 지회장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이하 유족회) 수원시지회 이택열 지회장


천신만고 끝에 국립원호원 입소, '제2의 고향'에서 학창시절 후 취업까지
"아버지 전사 통지서를 받은 어머니는 제가 8살이 되었을 때 재혼을 했습니다. 큰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하루하루가 견디기 힘든 나날들이었어요. 뛰어 놀고 마음껏 꿈을 꾸는 나이에 하고 싶은 공부는 생각도 못하고 일만 해야했죠. 결국 큰집에서 도망쳐 나와 무작정 보훈지청을 찾아갔어요. 학교 다니면서 먹고 살게만 해달라고 애원했죠."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이, 어머니의 재혼이 그를 고아로 만들어버렸다. 인생의 낭떠러지 앞에서 입소하게 된 수원국립원호원(영화동), 그곳은 수원보훈지청에 속한 아동보육소였다. 전쟁으로 인해 고아가 된 아동들을 보호하는 곳이었는데 그는 중·고등학교를 보내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이 지회장은 국립원호원에서 밴드활동도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출처/이택열 지회장)

이 지회장은 국립원호원에서 밴드활동도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사진/이택열 지회장 제공


"국립원호원에서 보낸 7년 동안 120~130명이 모두 형제처럼 어울려 지냈어요. 단체생활이라는 걸 제외하면 가정과 똑같았죠. 한 방에 8명 씩 생활할 수 있도록 책상도 있었고 옷, 학비, 학용품도 모두 지급됐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점호하면서 하루를 시작했어요. 청소하고 세수하고 식당가서 밥 먹고 도시락을 챙겨서 학교에 갔죠. 급식도 잘 나왔어요. 소고기국도 먹고요."

전쟁 직후 고아가 된 아동들이 전국적으로 너무 많았다. 전쟁으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고 친척집에서 눈치를 받으며 살아가는 아이들이 넘쳐났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 지회장은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한다. 국립원호원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졸업 후에는 국립보훈원 직업보도소에서 전기 기술도 익혔다. 그는 보훈지청 도움을 받아 농협중앙회에 취업을 할 수 있었고 73년도에 입사해 38년 동안 평생직장을 얻고 가정도 꾸릴 수 있었다. 
경인보훈대상식에서 유자녀 부분 수상한 이택열 지회장 (출처/이택열지회장)

경인보훈대상식에서 유자녀 부분 수상한 이택열 지회장. 사진/이택열 지회장 제공


부모세대가 나라를 위해 희생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있어
이 지회장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유자녀라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편견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국가에서는 예우를 해주려고 하지만 정작 사회에서는 벽이 느껴졌다고. 그래서 더욱 사회를 바꾸는 활동을 이어갔다고 한다. 학창시절 국가에서 보호를 받았던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1997년 IMF가 닥쳤을 때 농협 노동조합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1999년 경인일보와 손을 잡고 결식아동을 돕기 위해 만화영화잔치를 시작했는데 전국으로 퍼지게 되었죠. 또 직장생활을 하면서 우리 농촌 현실이 매우 안타까웠어요. 농산물을 애용하고 도시와 농촌 지역 격차를 해소하는 일에도 앞장섰습니다."

사회생활도 적극적으로 했지만 아버지 업적을 기리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유가족들을 챙기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는 육군본부에 인터넷 민원을 넣어 그동안 찾지 못했던 아버지의 화랑무공훈장을 어렵게 돌려받을 수 있었다. 전투에서 용감하게 헌신한 이에게 수여하는 훈장으로 '아버지에 대한 업적을 확실하게 찾는 것도 제 역할'이라고 말한다.
화랑무공훈장(왼쪽)과 국가유공자증(오른쪽)(사진출처/이택열지회장)

화랑무공훈장(왼쪽)과 국가유공자증(오른쪽). 사진/이택열 지회장 제공


이 지회장은 평생을 열심히 살아왔지만 특히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 되면 더욱 마음을 다진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희생했던 부모님 세대 덕에 현재의 자유와 풍요를 누릴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호국정신'을 권한다.

"호국정신이 뭐 별거 있나요? 수원시민으로 이웃집에 도움을 주는 일도 수원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돕고 의지하는 마음만 있으면 가능하죠. 하다못해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를 줍는 일도 애국심에서부터 나옵니다. 일상에서 실천하는 작은 행동이 애국심이고 호국정신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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