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중증장애인도 공부하고 일할 수 있어요!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장 받은 뇌병변1급 장애인 강민산 씨
2018-05-11 00:08:49최종 업데이트 : 2018-05-17 09:36:07 작성자 : 시민기자   김소라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 위해 귀가 아닌 마음을 열어야만 할 때가 있다. 의사 소통이 완벽하지 못해 어려움은 있지만 분명히 자신의 언어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 그렇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다리지 못한다.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표현이 안되면 의견이 없다고 생각한다. 수원자립생활지원센터에서 동료상담가로 활동하고 있는 강민산 씨와의 대화는 더디고 길었다. 오랜 시간이 소요되면서 몇 번이나 되물어야 했다. 잘 알아듣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녀와 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비슷한 또래이자 같은 성별인 여성이다. 하지만 살아온 환경과 경험은 완전히 다르다. 짧은 시간 동안 강민산 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깊은 울림이 느껴졌다. 대화가 온전하지 못해 통역을 해 주시는 봉사자가 옆에서 거들어 주셨다. 누군가의 말을 이토록 열심히 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문재인대통령으로부터 설 선물 받은 강민산 씨

문재인대통령으로부터 설 선물 받은 강민산 씨

강민산 씨는 비장애인으로 태어났으나 어릴 때 열병으로 뇌병변장애 1급판정을 받았다. 거동이 불편해 27살 때까지 집에만 있었다고 한다. "집으로 인구조사하러 왔는데 학력란에 '無' 라고 쓰는 게 너무 싫었어요"라고 한다. "글씨는 쓸 수 있어요? 한글 알아요?"라고 묻는데 그 말이 죽기보다 싫었다.
장애인의 인권 향상에 대한 보건복지부장관상 표창장

장애인의 인권 향상에 대한 보건복지부장관상 표창장

그녀는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7년동안 독학으로 초등학교, 중학교를 검정고시로 합격했다. 그리고 방송통신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이버대학교의 사회복지학과를 공부했다. 현재 동료상담가로 수원시 보치아 선수로 활동한다. 2018년 문재인대통령으로부터 선물을 수여받았고, 지난 4월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단순히 장애를 뛰어넘어 의지를 보였다는 것만으로 상을 받은 게 아니다. 중증장애인을 위한 인권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농성을 벌이며 사회에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었기 때문이다.
문재인대통령 설날 선물 증정식

동료상담가로 보치아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강민산 씨

"저는 나라에서 인정하는 상을 받은 것이 부끄러워요. 더 대단한 분들도 많은데 저 같은 사람이 받아서... 광화문 시위나 점거 농성 때 앞장을 서서 참여한 것 뿐인데요. 차비와 밥값과 시간을 들여서 그곳까지 가서 시위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많은 장애인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복지 혜택은 소수의 장애인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사회에 냈기 때문이에요. 다음 세대를 바꾸기 위해 나의 작은 실천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농성과 시위 등에 참여했던 강민산 씨

수많은 농성과 시위 등에 참여했던 강민산 씨

강민산 씨는 장애인 행사를 주관할 때면 어디든 가서 참여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 아무런 보상도 댓가도 없는 일에 나선다. 추운 겨울에도 하루 뿐 아니라 이틀, 일주일, 무기한 점거 농성까지 벌인다. 왜 이러한 일을 하려는 걸까. 강민산 씨는 사회적 약자로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장애인들의 삶이 조금씩 나아지는데 보탬이 된다고 하면 끝까지 하겠다고 말한다.
수원시장애인보치아연맹 경기도장애인체육대회에서

수원시장애인보치아연맹 경기도장애인체육대회에서

지금의 엄청난 변화의 시작은 '독학' 이었다. 공부를 통해 세상을 알게 됐다. 자신감도 생기고 꿈이 생겼다. 지금껏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을 모두 다 이루었다고 말할 정도로 공부를 하면 행복하다고 한다. 중학교 검정고시 공부할 때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 문제집, 교과서 보고 외우면서 시험 준비를 했다. 뇌병변 장애 1급 판정을 받으며 신체가 자유롭지 못했기에 당연히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아래로 세 명의 동생들은 공부를 하고 학교 다니는데 자신만 학교를 다니지 못한 설움이 컸다. 동생들 어깨 너머로 한글을 알게 됐다고 한다.
보치아 경기를 하고 있는 강민산 선수

보치아 경기를 하고 있는 강민산 선수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어 23살 때는 장애인작업장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도 배우지 못했다고 무시당한 경험도 잊을 수 없다. "너는 못 배웠으니까..."라는 말로 무시하면서 굴욕적으로 대했다. 하루에 6시간씩 일 하고도 월급을 5만원 밖에 받지 못했던 곳도 있다. 전기 콘센트 조립하고 끼우는 단순 노동이었지만 악덕기업으로부터 착취를 당한 셈이다. 그 다음부터 독하게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대학에서 영상학과도 공부했고, 대본도 쓰고 촬영도 하여 단편영화도 찍은 적 있다. 글 쓰고 영상을 찍는 등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 좋다고 말한다.

주변에서 강민산 씨를 보고 하는 말이 있다. "강민산같은 사람이 있기에 장애인들이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는 말이다. "투쟁하면 강민산이 최고" 라고 손꼽을 정도다. 동상까지 세워야 한다고 우스개로 이야기한다. 그만큼 자신의 작은 관심과 행동이 세상을 분명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을 불쌍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몸만 불편하지 정신은 똑같아요. 느낌과 감정도 같습니다. 몸이 불편하면 정신도 모자르다고 생각하나요? 그게 정말 화가 나요. 제가 공부한 이유입니다. 시간이 걸릴 뿐이지 장애인도 천천히 모두 해낼 수 있는 일들이 많아요!"
 
앞으로 장애인들에게 일할 권리, 공부할 권리, 사회에 참여할 권리 등이 늘어나야 한다. 강민산 씨처럼 홀로 신체를 움직일 수 없고,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회에 자신의 몫을 해낼 수 있다. 강민산 씨는 장애를 극복하고 자립한 경험을 다른 장애인들에게 공유하기 위해 동료상담 리더양성과정을 이수한 후 동료상담가로도 활동하면서 끊임없이 장애인 인권을 위해 활동한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자신이 태어난 환경과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자기 안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것. 이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 또한 사회를 위해서도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강민산, 뇌병변장애인, 김소라시민기자, 수원자립생활지원센터

프린트버튼캡쳐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독자의견전체 0

SNS 로그인 후,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icon icon 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