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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발치 끝에 묻어달라”는 정조대왕 유언
【수원문화원 뿌리학교 현장답사】 융건릉과 용주사에서 수원을 배우다.
2019-05-22 17:47:20최종 업데이트 : 2019-05-23 14:23:58 작성자 : 시민기자   이경


경기 화성시 효행로 481번길 21 융릉

경기 화성시 효행로 481번길 21에 위치한 융릉에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합장되어있다.

21일 오전 10시 수원문화원 뿌리학교 25명 수강생이 융건릉과 용주사로 현장답사를 떠났다.

지난 3월 개강한 뿌리학교는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수원 화성을 중심으로 1학기 15강, 수원을 중심으로 2학기 15강의 일정이 계획되었다.

"125만 수원 시민 중에 얼마나 많은 시민이 수원화성과 정조대왕을 알까요?" 강의 첫날 염상균 (수원 화성 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장) 강사의 말이 기억났다.

문화원을 벗어나며 염상균 강사는 "융릉으로 인해 수원화성과 용주사가 만들어져 지금에 이르렀습니다"라고 해설을 시작하며 "나를 위해 좋은 자리 찾지 마라, 아버지 발치 끝에 묻어달라"는 정조대왕의 유언을 들려줬다.
융릉 정자각에 있는 계단의 구름문의가 독특하다

융릉 정자각에 있는 계단의 구름문의가 독특하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존호를 장헌세자로 올렸고, 1899년 능호를 융릉이라 하였다.

융릉을 만들 당시, 강화도 검은 반점이 많은 돌을 쓸 것인지, 현 고등동 일원의 돌을 쓸 것인지 신하와 임금의 신경전을 흥미롭게 들려주는 염상균 강사의 해설은 정조대왕에게 가는 길을 설레게 했다.

사도세자는 어려서부터 똑똑하고 서예와 무예에 뛰어난 인물이다. 영조를 대신하여 정치업무를 보게 되면서 노론과 갈등이 생겼고 끝내는 뒤주에 갇혀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들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이곳 융릉 자리에 올 수 있었다.

"수원화성에도 5개의 연못이 있었습니다. 현재 북지(北池)를 복원 중입니다." 염상균 강사는 융릉 곤신지 앞에서 방화수 역할의 연못에 관한 해설을 하며 "윤선도가 효종의 릉 자리로 추천하였고, 사도세자가 생전에 다녀갔던 장소입니다"라고 융릉에 관해 덧붙였다.

25명의 수강생은 홍살문을 지나 어로, 수라간, 정자각, 비각을 차례로 걸으며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삶과 죽음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호매실동에서 온 송영자 (40대) 씨는 "붕어, 승하, 졸하다, 죽다 등 신분에 따라 달라지는 죽음을 나타내는 대명사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뿌리학교에 다니며 수원을 배우는 시간이 흥미롭고 현장답사에 와서 더 많은 걸 보고 배워 좋습니다"라는 소감을 내비쳤다.

아버지 발끝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정조대왕은 초장지를 거쳐 지금의 건릉에 왕비와 합장되었다. 정조는 184권이라는 역대 임금 중 가장 많은 저서를 남겼고, 시와 서예, 무예 등 문무를 겸비한 임금으로 기억된다.
화성시 용주로 136 용주사에는 국보와 보물이 많다.

정조임금의 효심이 담겨있는 화성 용주사에 가다. 유교적인 문화가 녹아있는 홍살문은 용주사에서만 볼 수 있다.

루각 아래로 걸어들어가는 방식은 '누하진입방식'이라 한다. 문화 전성기 작품으로 보면 된다.

누각 아래로 진입하는 방식으로 지어진 용주사다. 누각 아래에서 바라보는 대웅보전이 한편의 그림이다.

"'용주사불'이란 사행시를 아시나요?" 염상균 강사는 용주사 삼문에 쓰인 죽롱 안순환(1871~1942)의 글씨를 가리키며 해설을 하고, '조선 음식 전문가'로 살던 그가 우리나라 최초 근대 요릿집인 '명월관'을 운영한 뒷이야기를 맛깔나게 들려줬다.

"수원에는 국보가 없는데 용주사에는 국보가 있나요?" 기자가 질문하자 염상균 강사는 "용주사에는 국보 '범종'이 있습니다. 범종의 손잡이에 있는 용을 보세요. 중국과 일본은 두 마리인데 우리나라 종은 한 마리입니다"라고 설명하고 범종에 관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창건된 '갈양사'로써 오랜 역사를 이어온 용주사는 병자호란에 소실된 이후 정조대왕이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다시 일으켜 세우고 원찰로 삼았다.

낙성식 전날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정조대왕의 꿈에서 '용주사'라는 이름이 나왔다. 정조의 효심이 느껴지는 사찰에서 '부모은중경'을 읽어보고, 대웅보전에 있는 삼존상과 후불탱화도 눈여겨보았다.

화창한 봄날, 뿌리학교 현장답사를 통해 나무숲으로 둘러싸인 융건릉을 걷고, 용주사를 둘러봤다. 수원을 알아가는 게 더없이 기쁜 날이 되었다.

수원문화원뿌리학교, 정조대왕, 융건릉, 용주사, 시민기자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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