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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별주’ 발굴현장 시민에게 공개
문화재 발굴 현장 시민에게 개방하는 획기적 행정 펼치는 수원시
2019-05-25 21:15:56최종 업데이트 : 2019-06-05 10:56:45 작성자 : 시민기자   김연수

수원시는 수원화성행궁의 완전한 복원을 위한 2단계 발굴현장인 '화성행궁 별주(別廚) '1795년 혜경궁 홍씨 회갑 잔치에 사용될 음식 준비를 위한 전각터를 오는 28일 오후 2시 시민들에게 공개한다.

별주 발굴현장 항공사진 'e 수원뉴스 제공'

별주 발굴현장 항공사진 'e 수원뉴스 제공'

230년의 역사를 품은 수원화성행궁은 고통 속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하는 수난을 겪었다. 일제치하 강점기 때 봉수당과 장락당 등 전각이 경기도립병원, 경찰서와 또 다른 시설로 이용되었다. 이후 일제는 봉수당을 비롯한 전각들을 철거하고 근대식 건축물을 세움으로써 민족의 자존심마저 꺾으려고 했다.

 

행궁은 임금이 궁궐을 떠나 지방으로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거나 전란(戰亂), 휴양, 능원(陵園)참배 시 별도의 궁궐(행궁)로 사용했다. 수원화성행궁은 경복궁만큼 아름다운 궁궐(행궁)이며, 국내 행궁 중 가장 규모가 크다.

 

행궁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전쟁과 같은 위급함을 피하기 위해 마련된 '강화행궁' ,남한산성 내의 '광주부행궁'등이 있으며, 휴양 목적으로 설치된 '온양행궁'이 있다. '수원화성행궁'은 정조대왕이 아버지의 능인 융릉을 참배할 때 머물던 행궁이지만, 한편으로는 아들 순조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노후 상왕 궁궐의 목적도 있었다.

우화관, 신풍초등학교 교문

우화관, 신풍초등학교 교문

일제가 멸망하고 해방을 맞았으나 행궁에 남아있던 근대 시설물은 그대로 사용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1989년 연초 당시 수원문화원장이었던 고 심재덕 전 수원시장을 중심으로 지역 원로, 문화예술계, 학계, 지역사회단체 대표, 언론계 등 각계에서 모인 42인이 발기인으로 참여해 수원화성행궁복원추진위원장 김동휘, 부위원장 홍의선·안익승·심재덕, 추진본부장 이홍구, 기획부장 임병호, 총무부장 송철호, 사료편찬부장 이승언, 섭외부장 김상용, 홍보부장 김우영 등이었다. 이와 함께 이종학 김동욱 김학두 리제재 송태옥 이상봉 이완선 이호정 조웅호 최홍규 이사(10명), 이근환 정규호 감사(2명) 등 각계를 대표하는 위원 81명을 선정했다. e수원뉴스' 칼럼 "멀지 않았어요" 화성행궁 완전복원 인용. 김우영/시인, 언론인.

 

수원화성복원추진위원회와 시민이 함께 꾸준히 복원운동을 펼친 결과 1996년 복원공사를 시작해 마침내 482칸으로 1단계 복원이 2002년 완료되었으며, 2003년 10월 봉수당, 장락당, 유여택, 서리청 등 행궁 전각이 일반에게 공개됐다. 1단계 완공에 이어 수원화성행궁 2단계 복원사업이 2003년부터 추진됐다.

 

2단계 복원대상은 나라를 짊어지고 나아갈 미래의 꿈나무인 아이들의 배움터 신풍초등학교가 있던 우화관과 행궁 남쪽의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었던(발굴중) 별주와 장춘각이다.

신풍초등학교, 우화관 복원 공사 현장

신풍초등학교, 우화관 복원 공사 현장

우화관(于華觀'館')은 수원화성행궁 건립과 함께 1789년(정조 13)에 팔달관이라는 이름으로 화성유수부(華城留守府) 객사(客舍)로 건립됐다. 이후 1795년 (정조 19)에 우화관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객사는 왕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시고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예를 올렸다. 외국에서 온 사신을 맞이하거나 관리들의 숙소와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1795년 을묘년에 정조 임금이 수원화성 행궁으로 행차하여 수원과 광주, 시흥, 과천 등지의 유생에게 우화관에서 문과 별시(別時)를 치렀다. 별시가 치러진지 101년 만인 1896년 고종 33년에 수원군 공립 소학교가 문을 열었다. 이후 신풍초등학교로 교명이 바뀌게 되고 학교가 문을 연 개교 120년 기념식을 마지막으로 2016년 2월에 광교신도시로 이전했다. 2017년 4월에 발굴공사가 시작되어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며, 초등학교로 사용되던 현대식 건물은 철거되고 학교 역사 자료관은 아직도 남아 있다.

별주 발굴현장

별주 발굴현장

별주(別廚)는 1795년 혜경궁 홍씨 회갑 잔치에 사용될 음식 준비를 위한 전각이다. 이후 분봉상시(分奉常寺)로 이름이 바뀐 별주는 현륭원에 올릴 음식과 술 등 제물을 마련하고, 이와 관련된 문서를 정리 보관하는 곳으로 활용되었던 곳이다.

 

별주 건물터는 가로 26m, 세로 20m 규모다. 네모난 단 위에 건물 2동이 있었으며, 그 주변에 담장이 있었던 것으로 항공사진 자료에서 볼 수 있다. 별주 앞에는 연못 흔적이 발견됐다고 한다. 2단계 복원으로 화성행궁이 원형의 제 모습을 갖추게 되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행궁안에 연못이 생기고, 연못에는 물고기가 노릴며,수련(垂蓮)의 향연을 볼 수 있을 있을 것이다.

 

별주 발굴 현장은 부엌과 온돌방, 도자기 조각, 벽돌 등 출토 유물도 볼 수 있다. '화성행궁 별주' 건물터 발굴현장을 시민에게 공개하면서 수원시 관계자는 "조사 결과 별주의 배치와 규모 등이 명확하게 확인됐다. 유적의 상태도 비교적 양호하다"며 "미복원시설(장춘각)의 발굴 조사가 완료되면 「정리의궤」에 그려진 화성행궁의 완전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문화재를 복원할 때는 언제나 복원부분을 일반인들이 볼 수 없게 가림막(철판, 천막) 펜스를 설치하여 접근을 금지하는 것이 상례였지만 수원시는 이번 수원화성행궁 2차 복원공사현장인 별주 터를 시민에게 공개하는 이례적이고 획기적인 행정을 펼친다.

 

'별주' 복원 발굴현장을 확인하고 싶으며,수원화성행궁과 문화재에 관심이 있는 시민은 누구나 수원화성사업소 문화유산관리과(031-228-4478)로 문의 하면 함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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