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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특집】 1129일간 한국전쟁 이야기
미니리광 경로당 양정상 회장이 들려준 6·25 한국전쟁 참전사…12사단 중대장
2019-06-19 14:29:03최종 업데이트 : 2019-07-01 09:44:15 작성자 : 시민기자   하주성
6, 25 한국전쟁 당시 참전이야기를 들려준 지동 미나리광 경로당 양정상(만 88세) 회장

6, 25 한국전쟁 당시 참전이야기를 들려준 지동 미나리광 경로당 양정상(만 88세) 회장


"지금도 가끔은 6·25 때 생각을 하면 깜짝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면 '내가 그 전쟁 통에서 어떻게 살아있을까?'하고 생각하죠. 지금 생각해보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이야기입니다."

19일 오전, 대한노인회 수원시 팔달구지회 지동 미나리광 경로당에서 만난 양정상(미나리광 경로당 노인회장) 어르신은 6·25 한국전쟁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간간이 눈을 감으신다. 아마 그때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르는 듯하다. 1129일(1950년 6월 25일 ~ 1953년 7월 27일) 동안 벌어졌던 한국전쟁은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될 동족간의 비극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북한군(인민군)이 전면 남침을 시작했다. 북한군은 남침암호 '폭풍'을 전군에 하달, 38도선 전역에 걸쳐 7곳의 사단병력과 제105 전차여단 등 11개 지점에서 일제히 국경을 넘어 남침을 시작했다. 북한군은 지상군 4~5만 명, 전차 94대가 남침을 시작했고, 4일 후인 6월 28일에는 북한군이 서울시내에 진입했다.

3년간 벌어진 6·25 한국전쟁.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던 한국을 돕기 위해 미국을 포함한 세계 16개국이 전투부대를 한국에 파견했고, 39개국이 물자 및 재정을 지원했다. 의료지원도 5개국에 달했으며,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국군 62만명, 유엔군 16만명, 북한군 93만명, 중공군 100만명, 민간인 250만명이 전쟁피해를 입었다.

"6·25 한국전쟁 때 난 중대장이었다"
"저는 6·25 한국전쟁 때 동부전선인 12사단에서 중위로 중대장직을 맡고 있었어요. 저희들의 작전지역은 강원도 철원, 인제, 속초 등이었는데, 1951년 거리모병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은 후 다시 영장이 나와 입대를 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최전선에서 중대장직을 맡아 한국전쟁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충남 금산이 고향인 양정상 회장은 그렇게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도 돈 많은 부잣집 사람들은 군대 끌려가지 않고, 시골에서 살던 무학자들은 모두 끌려갔다"고 말한다. 그렇게 전쟁터로 투입된 양정상 회장이 들려주는 6·25 한국전쟁 때 이야기는 우리가 듣던 이야기와는 또 다른 숨겨진 이야기였다.

당시 동부전선에서는 지척에 마주하고 있던 한국군과 북한군은 서로 대치하면서 이야기도 나누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상부에서 공격명령이 떨어지면 바로 상대방을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고, 그런 와중에 36명이던 소대원들이 전투를 마치고나면 5~6명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기에 당시 소대원들은 20명에서 45명까지 일정치 않았으며 전투를 마치고 나면 후방에서 새로 보충병들이 들어와 소대인원을 보충했다는 것이다.자료를 보여주면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양정상 회장은 자료를 보여주면서 전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낮에는 한국군, 밤에는 북한군이 고지점령
"전쟁이 점점 치열해지면서 적을 향한 국군의 공세도 한층 강화되었어요. 군인은 상부의 명령에 무조건 따라야 하죠. 진지를 탈환하라고 하면 이유없이 공격을 감행해야 합니다. 공격명령이 떨어지면 전투기들이 먼저 적진을 향해 폭격을 한 후 지상군이 공격을 감행해 진지를 탈환하죠. 그런데 밤이 되면 적군의 공격이 시작되고 다시 진지를 빼앗깁니다. 이런 전투가 계속되면서 쌍방 간에 사상자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죠."

양정상 회장은 당시의 전쟁은 한 마디로 지옥이었다고 한다. 동부전선 한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3일 밤낮을 전투를 벌인 적이 있는데, 화약연기와 연막탄 등을 하도 많이 쏟아 부어 인근이 연기가 자욱해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한치 앞을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적과 대치를 하다보면 곁에서 함께 있던 전우가 갑자기 쓰러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라고 말하는 양정상 회장. 전쟁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이 난다고 한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를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부상자가 생기면 남은 사람들이 먼저 부상자를 들쳐 업고 아래로 내려갑니다. 그렇게라도 전장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죠. 일단은 치열하게 총탄을 쏟아 붓는 전장을 피하면 단 몇 시간이라도 더 살 수 있으니까요."

며칠 동안 벌어진 이 전투에서 쌍방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잃었는지 모른다고 한다. 낮에는 국군이 고지를 점령하고, 밤이 되면 적군이 무섭게 공격해 와 다시 고지를 넘겨주고 후퇴를 하기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3일 동안 물 한 모금 먹지 못하는 날도 비일비재
6·25 한국전쟁 당시 보급은 제대로 이루어졌느냐는 질문에 양정상 회장은 "그 당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면서 "당시는 전투를 하면서도 주먹밥을 보급 받았는데, 밥을 날라다 주는 사람들은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었어요. 군복은 입고 있었지만 전투를 하는 군인들과는 다른 군복이었죠. 그런데 이들이 밥을 전투가 벌어지는 곳으로 날라주다가 폭탄이 터지면 다 집어던지고 도망을 갑니다." 그런 일이 하도 비일비재 하다 보니, 3일 정도 굶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는 전쟁 중이라 배낭에 건빵을 반쯤 채워갖고 다녔어요. 며칠 씩 보급이 되지 않으면 건빵도 다 떨어져 남은 사람들 것을 다 모아서 분배하기도 했고요. 수통에도 물을 꼭 채우고 다녔는데 계곡물 같은 것을 먹지 못하게 했거든요"

하도 폭격들을 심하게 하다 보니 곳곳에 시신이 즐비하고 폭탄이 투하된 곳에 혹 물이라도 오염이 되어 있을 것 같아 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고 한다. 미나리광 경로당 양정상 회장께 들어 본 6·25 한국전쟁 때의 전장이야기. 듣고 있는 내내 그 참상이 떠오른다.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됩니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양정상 회장. 이제는 몸도 병이 들고 아픈 곳도 많다고 하신다.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신 이분들을 우리는 영원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한국전쟁, 5, 25, 양정상 노인회장, 미나리광 경로당, 특집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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