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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의식과 애국심이 절로나는 6.25 전쟁기념관
"한번도 만난적 없는 국민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했던 그 아들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2019-06-08 13:33:07최종 업데이트 : 2019-06-10 13:39:55 작성자 : 시민기자   차봉규

우리 근대사에 가장 뼈아픈 역사라면 6.25 전쟁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48.8.15)된지 2년 신생 정부가 자리도 잡지못한 1950년 6월25일 소련의 군사 장비를 지원 받은 조선인민군이 기습 남침을 감행 했다. 아무런 대비를 못한 우리국군은 속수무책으로 후퇴를 거듭하며 불과 28일 만에 대구 까지 후퇴를 했다.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참전으로 3개월 만에 서울을 수복(9.28) 평양 신의주까지 진격 통일을 목전에 두고 중국군의 개입으로 우리의 염원인 통일이 무산된지 71년째 세계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있다. 

 

조선인민군들의 6.25 남침전쟁이 발발한지 69년 휴전한지 66년째다. 나라는 분단된 채 가슴아픈 6월을 맞이했다. 6월은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보훈의 달이다. e수원뉴스는 6월 기획기사로 6.25 참전용사들의 영웅담이나 6.25를 겪은 분들의 실상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공모했다. 기자는 어릴적 6.25를 겪은 세대로 실상은 쓸수 있으나 당시의 상황에 맞는 사진이 마땅치 않았다. 율전동에 거주하는 지인(85)에게 상의를 했더니 용산에 가면 전쟁기념관이 있으니 함께 가보자고 한다.

6.25전쟁 기념탑과 전쟁 기념관

6.25전쟁 기념탑과 전쟁 기념관

4일 성균관대역에서 만나 전철을 타고 용산  남영역에서 내려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전쟁기념관 정문 중앙에는 웅장한 조형물이 하늘높이 우뚝 서 있다. 6.25전쟁 50주년을 기념하여 전후 세대에게 안보의식을 고취시켜 전쟁의 재발 방지를 다짐하고 평화통일 기반을 조성 하고자 6.25 전쟁 기념탑을 세웠다고 한다. 조형탑 좌우로는 호국군상(護國軍像) 뒤로는 참전국 기념비 등으로 조화를 이루었다.

 

전쟁기념관은 호국추모실, 전쟁역사실, 6.25전쟁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기증실 등 7개의 실내 전시실과 어린이 박물관, 야외에는 참전 유엔군 대형 군 장비 전시장으로 구성 되어 있다. 1층에는 전쟁역사실 1,2관과 기획전시실이 있다. 선사시대부터 이 땅을 지켜온 우리 선조들의 대외 항쟁사와 거북선을 비롯한 각종 군사 유물들이 전시된 공간이다.

 

2층 전시실에는 호국추모실이 좌우로 있다. 오른쪽 추모실에는 6.25 전쟁때 전사한 국군, 경찰, 군번 없는 학도병들의 명패가 명찰 크기만 하게 세로로 나열돼 있다. 왼쪽 추모실에는 유엔군 참전용사들의 전사자 명패가 나열해 있다. 명패 위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국민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했던 그 아들 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이 글귀를 읽는데 웬일인지 가슴이 먹먹하고 코끝이 시큼해 온다.

기념관 관계자를 만나 참전 전사자를 알아봤다. 한국군은 13만7899명 유엔군 전사자 4만790명 그중에 미군 전사자가 3만6574명이라고 한다.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한번도 본적도 없는 나라 국민을 지켜주다가 전사한 외국의 젊은 청년들이다.

유엔군사령관에 임명된 맥아더장군이 유엔기를 인수받고 있다

유엔군사령관에 임명된 맥아더장군(오른쪽)이 유엔기를 인수받고 있다

6.25 전쟁때 미국을 비롯한 16개국 젊은 청년들이 참전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지만 그냥 그랬나보다 생각했지 전사한 영령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나 추모 할 생각은 못해봤다. 이곳에 와서 명패를 보니 '이들의 희생이 대한민국을 지켜 줬구나. 잘살게 해줘서 고맙고 자유를 누리게 해줘서 고맙다'는 생각을 하니 고개가 숙여지고 고마운 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2층 왼쪽으로 가니 전쟁 역사실 1, 2관이 있다. 인민군의 남침 배경부터 정전협정조인 까지 6.25전쟁의 모든 전 과정을 전시했다. 6.25전쟁 1,2관과 전쟁지도실 방산 대형 장비실이 있다. 1관에는 북한군 남침을 우리 군이 반격하는 상황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유엔군이 사용했던 일부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2관에는 우리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하는 전쟁 상황을 사진과 영상으로 볼수 있다.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이 모의해 인민군의 남침 배경에서 부터 전쟁의 경과와 휴전을 앞두고 반공포로석방 과 정전협정 조인까지 6.25의 모든 과정을 전시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를 석방 미국을 경악케 했다. 하지만 미국의 휴전 조건으로 미군의 주둔과 한미방위조약을 이끌어냈다.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를 석방, 미국을 경악케 했다. 하지만 미국의 휴전 조건으로 미군의 주둔과 한미 방위조약을 이끌어 냈다.

방산 대형 장비실에는 인민군이 6.25 남침할때 사용했던 무기들, 한국군이 사용했던 무기들, 이승만 대통령 전용차, 스탈린이 선물했다는 김일성 전용차 ZIS-110 리무진 등이 전시 되었다. 우리 국군과 인민군의 무기를 비교해 보면 어쩌다 28일 만에 우리 국군이 대구까지 후퇴했던 가를 알수 있을 것 같다.

6.25전쟁에 참전한 한국공군 건국기

6.25전쟁에 참전한 한국공군 건국기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 항공기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 항공기

우리국군은 미국에서 제작한 T-6훈련용 항공기를 6.25 남침 한달 전인 5월24일 국민들의 성금으로 캐나다에서 10대를 구입 '대한건국기'로 명명하고 한국전에 참전했으나 폭탄을 손으로 투하하는 등 기능이 열악했다. 육군은 75mm고사포 와 단발 소총들 뿐이었다. 인민군은 122mm곡사포, 85mm고사포, 76mm 곡사포, 120mm박격포, 14.5mm중고사포, T34탱크 242대, MIG128 공군기, YAK18훈련기, 36연발 따발총으로 남침을 감행했다. 한국전 당시 국군은 10만명으로 인민군 20만명의 절반에 불과했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이 낙동강 전선에 참전하지 않고 맥아더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안했으면 오늘의 풍요로운 대한민국 자유 대한민국이 있었을까 새삼 생각하게 된다. 3층 전시실은 시간이 모자라 관람을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나오면서 야외 대형 군 장비 전시장에 들렸다. 6.25 전쟁당시 사용했던 대형 군 장비들과 세계 각국의 항공기, 장갑차 등 160여점이 전시 되었다. 마치 국제 무기 전시장 같다. "야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 어마어마한 무기들이 인민군과 중공군을 몰아내고 대한민국을 지켰다고 생각하니 감탄을 안할 수가 없다.

기자는 6.25를 겪은 세대라 그런지 더욱 감회가 깊다. 관람 하느라고 점심을 굶었는데도 배고픈 줄 몰랐다. 그저 볼수록 감탄스럽고 가슴이 벅찼다. 호국영령들의 보훈의 달에 6.25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  전쟁기념관을 한번쯤 다녀오면 안보의식과 애국심이 절로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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