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수원 남문시장 상징물의 의미를 되새기다.
남문시장 어딘가 미래 백선행이 장사하고 있는지도…
2019-03-18 11:43:32최종 업데이트 : 2019-03-19 08:37:27 작성자 : 시민기자   김효임
수원남문시장

수원남문시장

날이 풀리고 봄이 눈을 뜨는 요즘 '어디론가 산책이라도 가볼까'하고 생각했다면 상인들의 활력이 느껴지는 수원남문시장을 추천한다. 언제나 똑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꼼꼼하게 구석구석 살펴보면 그동안 남문시장에 다양한 상징물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남문시장을 이야기하며 정조임금의 일화는 그야말로 약방의 감초마냥 등장한다. 백성이 부유하고 행복하게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길 원했던 조선 22대 임금 정조는 누구나 시장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팔수 있게 금난전권을 폐지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 시장은 그야말로 시끌벅적 난전을 펼칠 수 있었고 자기만의 특권으로 생각했던 시전상인들의 상권독점을 막아 고르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실사구시 정책을 폈다.
불취무귀 不醉無歸  정조대왕 동상

불취무귀 不醉無歸 정조대왕 동상

불취무귀(不醉無歸) 정조임금과 마주하다.

남문시장하면 떠오르는 상징물은 불취무귀(不醉無歸) 정조임금님이 술을 따르는 모습의 상징물이다. 영동시장 바로 앞에 있는 이 상징물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정조임금님이 따라주시는 술을 먹는 사진을 찍어서 각종 sns에 올리고 있다. 
 
'술이 취하지 않은 자는 돌아가지 못한다'는 뜻의 불취무귀(不醉無歸). 그는 왜 이렇게 말을 했을까 잠시나마 정조임금님의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실수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건가 아니면 풍족하게 먹고 마시며 즐겁게 지내라는 뜻으로 취하기 전에는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술이 취하면 진심을 이야기 한다는데 술 취한 사람의 속마음을 듣고 싶었던 것인가. 진심으로 행복한지 확인하고 싶었던 건가. 말이 없는 동상을 보며 혼자서 말을 걸어본다.  
엽전 소원나무

엽전 소원나무

엽전 소원나무에 소원을 빌어볼까.

돈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진귀하고 맛있는 것들 모두 사먹고 좋은 집에서 호사를 누리며 살고 싶은 것이 모든 사람들의 소망일 것이다. 사람들의 소망대로 엽전이 주렁주렁 열린 나무가 남문시장 고객센터 앞에 생겼다. 
 
그러나 사람은 돈으로만 살 수 없다. 엽전 소원나무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한번쯤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조임금은 수원화성의 화(華)를 화봉삼축(華封三祝) 고사에서 따왔다고 한다. 화봉삼축(華封三祝) 고사는 어느 지방 현자가 임금님께 축언한 3가지를 뜻하는데 오래살고, 부자로 살고, 많은 자식을 낳아서 자손 대대로 천수를 누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요나라 임금은 현자의 말에 3가지 모두 사양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아들이 많으면 걱정이 많고, 부유하면 할일이 많으며, 오래 살면 욕되는 일이 많다고 했다고 한다. 
 
시장을 산책하면서도 옛 선인들의 말을 음미하며 진정 우리 마음을 살찌우는 풍요로움을 찾아보시길 바란다. 
백선행 여성사회사업가 흉상

백선행 여성사회사업가 흉상

백선행은 누구인가?

엽전 소원나무 옆에는 백선행이라는 여성 사업가의 흉상과 미래의 백선행의 흉상을 제작하겠다는 의미에 빈 비석이 세워져 있다. 백선행(1848~1933)은 수원에서 출생한 여성사업가로 평양으로 이주했다. 근검절약하여 거부가 되었으며 3.1운동에 충격을 받고 모든 재산을 사회사업에 바치기로 발표한 후 민족교육에 헌신했다고 한다. 
 
가난한 집에서 이름도 없이 태어난 그녀는 7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14살에 결혼했으나 신랑이 2년 만에 죽고 친정으로 돌아와 엄마와 쌍과부가 되어 억척스럽게 돈을 벌었다고 한다. 환갑이 넘을 때까지 '평양 백과부'로 불린 그녀는 가난한 집안을 스스로 일으키며 억척스럽게 재산을 모았다.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남문시장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남문시장

갑부로 이름이 알려진 것은 대동강 근처에 산 땅이 나중에 시멘트광산으로 알려져 이 광산을 일본사업자에게 몇 십 배 비싸게 팔고 평양갑부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이웃들을 위해 마을 큰 냇가에 백선교라는 다리를 놓았고 기부천사로 헐벗은 백성과 교육을 못 받는 사람들에게 전 재산을 기부했다고 한다. 그의 백선행이라는 이름은 이때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이라 한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주는 표창도 거절했다고 알려진 그녀는 1933년 86세에 죽음을 맞이했다.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졌으며 10만여 명의 인파가 운집했고 수 백 명이 상복을 입었다. 장례행렬은 300개가 넘는 화환과 만장이 2km를 넘게 이어졌으며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훗날 1985년 MBC문화방송 한국인 재발견 시리즈로 제작해 방송되기도 했다. 

지금도 수원남문시장 어딘가에 미래의 백선행이 장사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시장 안에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시장을 오가며 물건을 흥정하고 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 수원남문시장 산책길.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난 후 신학기 딸아이에게 필요한 옷가지와 주전부리 간식으로 산 떡과 도너츠를 한아름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정조대왕, 정조임금, 정조, 엽전나무, 엽전소원나무, 평양백과부, 백선행

프린트버튼캡쳐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독자의견전체 0

SNS 로그인 후,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icon 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