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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시민문화제 참여한 시민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역사를 기억하며 걷는 수원3.1운동의 성지
2019-03-07 14:27:17최종 업데이트 : 2019-03-07 17:21:17 작성자 : 시민기자   김효임
지난 3월1일 수원시 3.1운동 시민문화제가 행궁동일원에서 열렸다. 시민 모두가 주인공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있어 수원시 3.1운동 100주년 기념 시민문화제가 가능 했던 것 같다. 서로 약속하지 않아도 만날 사람은 바로 이 수원시 3.1운동 100주년 기념 시민문화제에서 모두 우연처럼 만나기도 했다.

수원시 3.1운동 100주년 기념 시민문화제는 '기억하는 백년의 울림. 기약하는 백년의 미래'라는 슬로건으로 수원시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주체가 되어 화성행궁광장, 수원역 방화수류정, 화홍문에서 기념문화제를 시작했다.
방화수류정 용두각 용연 앞에 만세를 부르기 위해 모여든 시민들

방화수류정 용두각 용연 앞에 만세를 부르기 위해 모여든 시민들

​3.1만세운동을 본받은 만세행진은 평화군과 독립군으로 나누어 평화군 수원역 출발, 독립군 방화수류정 출발해서 화성행궁광장에 모여 본 행사를 진행했다. 화성행궁광장에서는 3.1절 기념식과 공연, 전시 체험 및 먹거리 등부대행사를 진행했다.

화홍문이 있는 방화수류정 용연에는 각종 시민단체와 학생 시민들이 가족단위 친구 등과 함께 모여서 만세삼창을 했다.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주독립을 외치며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던 100년 전 우리조상들의 얼이 그대로 살아 돌아온 듯 감동이었다. 

​태극기 물결이 방화수류정과 용연 그리고 화홍문에 이처럼 장관을 이루다니 가슴이 뭉클하고 이 순간 이 장소에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그 옛날 수원의 3.1운동은 바로 이 방화수류정에서 시작되었다.
단체별로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행진을 하고 있다.

단체별로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행진을 하고 있다.

방화수류정 수원 3.1만세운동의 성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48인 가운데 한사람이었던 수원의 교육자 김세환 선생은 1919년 2월 10일 경 당시 YMCA 간사였던 박희도를 통해 3.1운동 준비모임에 참가했고 충남지역과 수원지역의 조직 책임자로 활동했다. 

​민족대표인 김세환 선생의 지시로 사전 계획을 통해 그의 제자였던 김노적, 후배였던 박선태, 임순남, 최문순, 이종상, 김석호, 김병갑, 이희경, 신용준, 이선경 등 지역 엘리트층이었던 교사와 학생 기독교인이 중심이 되어 시위를 시작했다. 

이 중 이선경 학생은 당시 나이 18세로 연락 임무를 담당했고 1920년에는 '구국민단'을 결성해 비밀리에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혹독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19살의 나이에 풀려난 지 9 일 만에 순국했다. 

​'석방 되도 다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겠소'라고 말했다는 수원의 독립운동가 이선경의 말은 가슴을 울린다. 
화성행궁 광장 기미년 3.1운동 기념공연

화성행궁 광장 기미년 3.1운동 기념공연

방화수류정 횃불시위

당시 삼일여학교 교사였던 김세환 선생은 당초 3.1운동을 삼일학교 교정에서 독립선언서 낭독 이후 수원 시내를 거쳐 화성학원까지 가는 만세시위로 서울 만세운동 3월 1일 정오 개최와 동시에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일본경찰에 탐지되어 3월 1일 저녁 횃불시위로 대체되었다. 

​저녁 방화수류정 용두각에는 수백 명이 모였고 시위를 펼치고 봉수대 팔달산 화성장대 등 20여 곳에서 횃불이  타올랐다. 이 수원군 3.1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수백 명의 학생과 주민이 모여 대한독립의 기치를 세운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천도교도, 기독교도, 유학자 그리고 농민, 학생, 상인, 기생까지 전 계층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이 시위는 삽시간에 수원군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3월 1일 화홍문 방화수류정 횃불시위를 시작으로 3월 16일 장날을 이용한 만세운동을 벌였는데 시위군중은 3.1운동 주동자로 체포된 사람들에 대한 석방을 요구하기도 하며 철저하게 조직적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3월 29일 수원면 김향화의 주도로 기생 30여 명이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던 중 자혜의원(지금의 봉수당) 앞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자혜의원으로 가는 길에는 경찰서도 있었지만 일본인의 총칼에 아랑곳 하지 않고 부르던 대한독립만세. 그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뭉클하다.

​3월을 넘어 4월이 되어가도록 이어진 이 만세시위는 조선소요사건이라는 말로 일본인이 따로 만세시위가 일어났던 지역을 지도로 표시할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가장 격렬한 만세항쟁을 펼치는 원동력이 된 수원화성의 횃불시위 깜깜한 밤에 횃불로 수원화성 전역을 환하게 밝히고 만세를 외치던 그 장면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삼삼오오 모여서 만세를 부르는 시민들

삼삼오오 모여서 만세를 부르는 시민들

100년 전의 수원의 3.1운동 재현

100년 전 그때 그 길을 생각하며 길을 걸었다. 직접 만든 태극기를 들고 깃발을 휘두르며 태극기를 몸에 감기도 하며 온몸으로 그때를 기억했다. 그렇게 행진을 하고 화성행궁광장에 도착하니 화성행궁광장에서는 다양한 퍼포먼스와 체험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는 거대한 태극기가 걸리고 다양한 태극기로 만세도 부르고 태극기 탁본체험도 하고 퍼즐조각도 맞추고 드론으로 태극기를 높이 들어올리기도 하며 다양한 체험을 이어갔고 중앙 무대에서는 독립군가 플래시몹과 연극무대도 이어졌다.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었고 100년 전 그 때를 기억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많은 어린이와 학생들이 부모님들과 함께 참여했다는 점과 전시부스에 마련된 수원의 독립 운동가에 대한 설명과 전시를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며 역사를 기억하는 수원시민들의 모습이었다. 100 년 전 마치 우리들이 주인공이었듯이 말이다. 

1919년 상인들은 가게문을 닫고 시위에 동참하며 철시투쟁을 벌였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조선의 독립을 요구했다. 방화수류정, 팔달산 서장대, 연무대, 종로 수원역, 서호 등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노동자, 농민, 학생, 기생, 상인, 지식인 할 것 없이 참여했다. 

1919년 기미년 삼일운동에서부터 2019년 수원 삼일운동 시민문화제까지 미세먼지도 뚫고 모인 수많은 군중들이 바로 이날의 주인공이었다. ​
수원의 독립운동가 전시를 열심히 읽어내려가는 시민들

수원의 독립운동가 전시를 열심히 읽어내려가는 시민들

방화수류정, 횃불시위, 이선경, 김세환, 수원의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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