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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대사가 창건한 ‘부석사’로 시간여행
한류 1호 의상대사…선묘 아가씨의 최강 팬심
2019-05-31 15:14:39최종 업데이트 : 2019-06-19 10:33:01 작성자 : 시민기자   박순옥

수원문화원에서는 매달 인문학 역사탐방을 한다. 매월 첫째 주 월요일에 인터넷으로 접수를 받는다. 매번 경쟁이 치열하다. 이번 영주 부석사 탐방은 운 좋게 대기로 있다가 연락을 받아 참가하게 되었다. 부석사는 가 본적이 없었지만 예전 책에서 봤던 기억과 화려한 수식어들 때문에 약간의 기대가 있었다.

30일 아침. 수원문화원 앞에 준비된 관광버스를 타면 물과 방금 찐 백설기 떡을 준다. 뜨끈할 때 먹어야 맛있는데 참기가 너무 어렵다. 뜨끈한 떡은 나를 자꾸 유혹한다. 자꾸 김나는 떡이 눈앞에서 어른어른 한다. 그러나 평생 다이어트중이라 그림의 떡으로 생각하고 허벅지를 꼬집으며 참았다. 7시 30분 출발이기에 아침을 먹고 갈 시간으로는 이른 시간이라 문화원에서 준비를 해준다.
수원문화원에서 준비한 떡과 생수

수원문화원에서 준비한 떡과 생수

버스가 출발하면 관광버스 기사분의 안전운전을 바라는 문화원 직원의 안내사항 전달이 있다. 매번 듣는 이야기지만 안전에 소홀함이 없음이 믿음직스럽다. 안전벨트도 매고 오늘 함께할 사람들과의 가벼운 인사도 한다. 그리고 염상균 해설사의 재미있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다 보면 도착이다.

부석사는 세계문화유산이다. 우리나라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꼽힌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창건설화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의상과 원효는 중국 등주로 유학을 하려고 신라를 떠나 전곡항으로 향했다. 배를 타러가는 길에 해골 물을 마신 원효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 진다'는 깨달음을 얻고 신라로 되돌아갔다. 의상은 중국 등주로 홀로 유학을 떠난다.

오랜 뱃멀미로 등주에 도착한 의상은 어느 신도의 집에 며칠 묵게 되는데 그 집 딸 선묘 아가씨가 의상을 보살피다가 사모하게 되어 결혼을 청한다. 의상은 그런 선묘 아가씨를 감화시켰다. 그녀는 '영원히 스님의 제자가 되어 스님의 공부와 교화와 불사를 성취하는데 도움이 되어드리겠다'는 원을 세우고 의상의 법복과 집기를 지원해줬다. 의상은 그곳을 떠나 화엄학을 공부하고 다시 신라로 돌아오는 길에 선묘의 집에 들렀으나 선묘는 만나지 못하고 배를 탄다.
 

뒤늦게 의상이 찾아온 것을 알게 된 선묘는 의상에게 줄 법복과 집기가 들어있는 기물상자를 들고 항구로 급히 갔으나 의상이 떠난 뒤였다. 선묘는 바위에 서서 기물상자를 바다에 던져 의상의 배에 닿기를 바랐는데  신기하게도 그 상자는 의상에게 가 닿았다. 또 의상의 배가 바다를 안전하게 건널 것을 기원하며 바다에 몸을 던져 배를 보호하는 용이 되었다.
부석사 무량수전

부석사 무량수전

선묘 용은 그 후에도 의상을 보호하였다. 의상이 절을 지으려 봉황산을 찾았는데 그 곳에는 도둑 500명이 살고 있었다.  선묘 용이 그들 앞에서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공중에 떠 있었다. 그 걸 본 도둑은 모두 달아났고  그  자리에 절을 지었다. 무량수전 옆에 '부석'이라는 글이 쓰여 있는 커다란 바위는 선묘 용이 변한 바위라고 한다. 그래서 절 이름을 '부석사' 라고 지었다.

전설이지만 선묘 아가씨의 팬심은 지금의 한류 팬심에 비할 바가 아닌 듯하다. 어찌도 저리 간절히 의상을 아끼었는지 참으로 감탄스럽다. 선묘의 이야기는 일본으로까지 전해져서 일본에는 선묘의 신사도 있다고 한다.
선묘각에 그려진 선묘 아가씨 모습

선묘각에 그려진 선묘 아가씨 모습

이 외에 부석사에는 국보 제 18호 부석사무량수전과 제 19호 부석사조사당을 비롯하여 조선후기 건물인 범종류, 원각전, 안양루, 선묘각, 웅진전, 자인당, 좌우요사, 취현암등이 있다. 모두의 아름다움이 남다르며 전해지는 이야기에 감탄을 하며 둘러보았다.

부석사에서 내려와 청국장과 고등어구이로 준비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졌다. 식당 주인이 영주 특산물인 사과도 하나씩 나누어 주어 맛있게 먹었다. 기온이 올라가는 시간이었지만 해가 쨍쨍하지 않아서 덜 더웠다.

금성단은 세종의 여섯째아들로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세조에 의해 화를 당한 의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설립된 제단이다. 학살된 사람들의 피가 하천에 넘쳐흘렀다고 한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사립교육기관의 첫 번째 발자취이다. 이 자리에 주세붕이 백운동서원을 세웠고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하면서 왕에게 진언을 올려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하사 받아서 오늘에 이른다. 소수서원은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적송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다.

마지막으로 들른 무섬마을은 낙동강의 지류 가운데 하나인 내성천이 휘돌아 흘러 형성된 마을이다. 안동 하회마을과 예천 회룡포 마을과 더불어 대표적 물돌이 마을이다. 이 마을은 반남 박 씨와 선성 김씨의 집성촌이다. 단일 마을 중에서 가장 많은 독립 운동가를 배출한 마을로 건국훈장을 5명이나 받았다.

이 마을 강변에는 외나무다리가 있는데 매년 10월 '무섬외나무다리' 축제를 연다. 외나무다리를 처음 건너보니 고립무원이었다. 위태로움에 정신을 초 집중하여 걸으며 흐르는 물이 어른거리는 것에 정신을 빼앗길 수 있음을 느껴 신기했다. 인생을 혼자 헤쳐 나가는 사람의 모습이 이런 모습일까 하는 생각도 잠깐 해봤다.

가는 곳마다 염상균 해설사의 감칠맛 나는 해설은 피곤함을 잊게 했다. 참가자들 모두 염상균 해설사의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들으려고 귀가 쫑긋쫑긋 한다. 걸음이 늦은 이유로 앞머리를 잘라먹고 들어서 아쉬웠으나 다음번 역사탐방도 꼭 갈수 있길 바래본다. 역사탐방은 수원문화원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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