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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 '지명 독립'도 이뤄져야
일왕이란 명칭을 삭제해야 한다.
2015-07-02 11:32:49최종 업데이트 : 2018-07-18 11:28:48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수원미술전시관 방향에서 만석공원으로 들어가다 보면 만석거(萬石渠) 설명 간판이 서있다. 수원시향토유적 제14호이며, '만석거는 장안문 북쪽의 황무지를 개간하고 안정된 농업경영을 위한 수리시설로서 정조 19년(1795)에 축조하였다. 일왕 저수지나 조기정 방죽으로 불리기도 한다. 정조대왕의 화성능행차 시에는 이곳을 경유, 장안문을 통과하여 현륭원으로 향하는 원행이 이루어졌다.'고 소개하고 있다.
 

광복 70주년 '지명 독립'도 이뤄져야_1
만석공원 입구에 있는 만석거 표지판

수원시 홈페이지 '문화, 관광' 카테고리에서 문화유산을 검색하면 수원시향토유적으로 '만석거(일왕저수지)'를 소개하는데, '일왕저수지'나 '조기정방죽', '북지'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설명을 시작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만석거'를 검색해봐도 위 내용과 비슷하게 기술하고 있다.
정조때의 저수지 명칭이 '만석거'였는데 어째서 '일왕저수지(日旺貯水池)'란 이름이 붙었는지, 그 치욕적인 역사의 내력을 알아보았다. 

1999년 수원시와 수원문화원이 편찬한 '수원지명총람'을 보면, 1931년 4월 1일 전국 41개 지정 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는데 수원군 수원면이 수원읍으로 승격되었다. 이 때 수원군은 1읍(邑) 19면(面)으로 편성되었고, 19면 중에서 처음으로 일본식 명칭인 일왕면(日旺面)이 등장하는데 일왕(日旺)이란 일본의 왕이란 뜻이 담겨있다. 당시 수원읍 각 리의 명칭이 정(町), 정목(丁目)과 같이 일본식으로 개편되었다. 본정(本町), 매산정(梅山町), 남수정(南水町), 구천정(龜川町), 영정(榮町), 매향정(梅香町), 북수정(北水町), 신풍정(新豊町), 궁정(宮町), 장안정(長安町), 남창정(南昌町), 남부정(南部町) 등이다.
 
광복 70주년 '지명 독립'도 이뤄져야_2
일왕삼거리 표지판

만석거란 명칭이 일제에 의해 일왕면(日旺面)에 있는 저수지라는 의미에서 일왕저수지(日旺貯水池)가 된 것이다. 일제가 우리나라의 행정구역을 통폐합 하면서 우리 지명이나 명칭을 일본식인 정(町), 황(凰), 왕(旺) 등으로 바꾼 것이다. 해방이후 1960년대에 일왕면은 폐지되었지만, 일왕이란 명칭은 해방된지 70주년이 되었는데도 부끄러움 없이 사용하고 있다. 일제에 빼앗겼던 우리의 지명이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수원지명총람'을 더 보자. 운동장 사거리에서 동진맨션을 거쳐 만석공원에 이르는 길을 일왕로(日旺路)라 하는데, 이 일대가 예전에 일왕면(日旺面) 지역인데다가 만석거를 일명 일왕저수지(日旺貯水池)라고 칭한 연유에서 도로명을 '일왕로'라고 하였다.
일왕교(日旺橋)는 일왕저수지 아래에 있는 다리로, 중부 경찰서와 한국통신 경기 건설국 사이에 있다... 일왕저수지는 1936년 10월 1일에 이 일대가 일왕면 이었으므로 교명도 면명을 취해 일왕교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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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공원 입구에 세워진 만석거 주변 약도

수원지명총람이 출간된지 오래되어 만석거 주변을 답사해보니 일왕로란 도로표지판은 볼 수가 없었고, 정조로 송원로 등의 도로명 표지판으로 바뀌었다. 일왕교는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고, 만석거 하류에는 북지교, 상련교, 여의교, 연꽃교, 두견교, 백설교, 한마루교 등 좋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일왕삼거리의 명칭이 남아 있고, 만석공원 주변의 안내간판에는 일왕저수지란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하루빨리 제대로 정비되어야 겠다.

조선왕조실록 정조 20년(1796) 병진 1월 20일자 기록 '현륭원에 배알하려고, 화성 교구정을 지나 행궁에 이르러 밤을 지내다'를 보면, '장차 현륭원(顯隆園)에 배알하려고 어가가 화성(華城) 교구정(交龜亭)에 이르러 우의정 윤시동에게 이르기를, "관개(灌漑)하는 이익이 크다고 하지 않겠는가. 이 못을 파면서부터 1년이 지나지 않아 앞 들판에서 수확한 것이 이미 1천 곡(斛)이 되었다." 하고는, 인하여 정자[亭]를 '영화(迎華)'로, 야(野)를 '관길(觀吉)'로, 평(坪)을 '대유(大有)'로, 도랑[渠]을 '만석(萬石)'으로 각각 명명하고 비석을 세워 기록하도록 명하였다. 행궁(行宮)에 이르러 밤을 지냈다.' 만석거라는 이름을 쓰는게 얼마나 당연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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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거 삼거리 버스정류장 송죽동 주변 지도

일제는 우리나라의 영토 뿐 아니라 정신문화를 지배하기 위해 별 못된 짓을 다 했으며, 특히 우리 고대사가 기록된 역사책을 모두 불태우고, 우리 고대사를 왜곡하는 만행을 저질러 단군의 역사를 신화속에 꽁꽁 묶어두었는데 오늘날 우리는 한심하게도 우리 고대의 역사를 말하면서 단군신화를 앵무새처럼 말하고 있다. 

식민사학의 망령이 아직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 개탄스러울 뿐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진정으로 우리가 청산해야 할 것은, 식민사학으로 부터의 광복이며,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일본식 지명이나 명칭으로 부터의 광복이다. 그 치욕의 역사를 기억하면서 반성하려고 남겨둔 것이 아닌 이상, 이참에 깨끗하게 청산해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일왕, 일왕저수지, 만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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