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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궐리사 석전대제를 보고
공자 탄생 2568년 탄신 석전대제
2017-10-16 17:01:47최종 업데이트 : 2018-06-27 12:16:13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화성 궐리사(華城 闕里祠) 석전대제에 다녀왔다. 석전대제란 공자와 공자의 제자인 공문십철 72현을 비롯한 유학의 성현들에게 지내는 큰 제사다. 우리나라에서는 성균관의 대성전에서 지내고 있는 제례의식이 대표적이며 모든 유교적 제사 의식의 전범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가장 큰 제사라는 의미에서 석전대제(釋奠大祭)라고 부르며 우리나라에서는 198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85호로 지정됐다.
화성 궐리사

화성 궐리사 입구, 홍살문 뒤로 솟을삼문 입구가 보이고 홍살문 우측에는 하마비가 있다.

화성 궐리사 석전대제는 성균관 석전대제 등 다른 석전대제와는 크게 다른 점이 있다. 화성 궐리사에서는 오직 공자 한 사람만을 모시는 석전대제인 것이다. 이는 정조대왕이 공자의 가르침으로 돌아가고자 화성 궐리사를 건립하였기 때문에 화성 궐리사 석전대제도 그 뜻에 맞춰 다른 성현들은 모시지 않고 오직 공자만을 모시라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화성 궐리사 석전대제는 음력 2월 18일 공자가 돌아가신 날을 기해서 춘계 석전대제를 지내고 음력 8월 27일 공자가 탄생한 날을 기해서 추계 석전대제를 지내고 있는데 10월 16일이 바로 탄신 석전대제이다.

화성 궐리사 석전대제는 현재 중국 곡부의 공묘에서 지내는 석전대제의 원형이기도 하다. 중국이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공묘에서 지내던 제례의식이 멸실되어 화성 궐리사의 석전대제를 배워갔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이 공자의 고향인 중국의 모범이 된 것이다.
화성 궐리사

화성 궐리사 입구, 국화꽃으로 단장한 입구를 들어가면 3단의 계단을 통과해 내삼문으로 들어가야 성묘이다.

화성 궐리사는 공자의 64세손으로 조선 중기에 대사헌까지 역임한 문신인 공서린(孔瑞麟, 1483-1541)이 은행나무를 심고 후학을 양성하던 서재가 있던 곳이었는데 정조 16년(1792년)에 정조대왕이 창건하고 친필로 궐리사란 현판을 내린 공자의 사당이다. 궐리(闕里)란 공자가 태어난 고향으로 중국 산동성 곡부현에 있는 지명이다.
공자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성묘본당(경기도 기념물 제 147호)과 공자의 일생을 화폭에 담은 성적도(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 62호)가 있으며 성묘 서쪽으로는 공자의 본향인 중국 곡부시에서 기증받은 대형 석조 성상과 안자, 증자, 자사, 맹자 상을 모신 성상전이 있고 공자 문화전시관과 공자가 삼천 제자에게 강학을 하던 중국의 행단과 유사한 행단이 조성되어 있다. 
화성 궐리사 석전대제

화성 궐리사 석전대제, 내삼문 앞에 제관들과 참관인들이 서있다.


화성 궐리사 석전대제

화성 궐리사 석전대제, 공자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성묘본당 앞에서 석전대제를 지내고 있다.


화성 궐리사 석전대제

화성 궐리사 석전대제, 제례에 앞서 마음을 정갈하게 하며 손을 씻는 의식의 관세례

정조대왕은 당쟁을 없애고 백성들을 잘살게 하려는 여러 가지 개혁정책을 펼쳤는데 그 중 하나가 공자의 본래 가르침을 일깨워 당쟁을 혁파하려 했으며 그 정책의 일환으로 화성 궐리사를 건립하게된 것이다. 정조대왕은 유학의 새로운 중심인 화성 궐리사의 위상을 높이고자 규장각에 있던 공자의 진영을 내려 보내어 상징으로 삼게 했다. 화성유수에게 매년 향(香)과 축(祝)을 내려 봄, 가을에 공자에게 제향을 올리게 하였다.

하마비와 홍살문을 지나면 화성 궐리사 입구인 외삼문으로 솟을삼문이 있다. 솟을삼문을 지나면 정면으로는 솟을삼문이 또 있는데 성묘로 들어가는 성묘 내삼문이고 왼쪽에는 성상전으로 들어가는 숭인문이 있다. 화성 궐리사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맞배지붕으로 논산의 '노성 궐리사'와 함께 우리나라 2대 궐리사로 조선후기 사당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화성 궐리사 석전대제

화성 궐리사 석전대제, 공자 석조 성상과 안자, 증자, 자사, 맹자 상을 모신 성상전

화성 궐리사에는 수령이 500년 된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다. 중종 때 대사헌을 지낸 공서린이 후학을 양성할 때 심은 나무로 공서린이 죽자 은행나무도 말라 죽었다고 한다. 그 후 정조대왕이 화산에 행차했다가 이곳을 보니 많은 새들이 슬피 울며 은행나무로 모여들어 가까이 가서 보니 죽었던 나무에 새싹이 돋아나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석전대제를 마치고 효부상과 선행상 시상식이 있었다. 효부상은 부모님께 효도한 아름다운 사람이 받았고 선행상은 인근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이 받았다.
학생들에게는 상장과 도서상품권이 부상으로 주어졌다. 도서상품권이 몇 장 들어있을지 궁금해 상장을 받은 여학생에게 도서상품권을 보여 달라고 해서 봤더니 내가 생각했던 최소한의 기대치 이하로 책 한권 사기에도 부족해 보였다. 공자의 뜻을 기리고 정조대왕의 뜻을 기리는 시상인데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에게 크게 격려를 해줘도 부족할 텐데 너무도 인색한 게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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