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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역사탐방과 가을 낭만 여행을 동시에
강경의 근대유산 거리와 무지개 다리를 보러 떠나
2018-10-19 08:58:51최종 업데이트 : 2018-10-19 17:12:28 작성자 : 시민기자   이경
18일 아침 7시 30분 강경의 '무지개다리'와 '근대문화유산'을 보러 떠나는 수원문화원 인문학 역사탐방이 시작되었다.
예향의 고장 충남 논산 강경읍에 가다.

간이역원과 길목의 뜻이 합쳐진 원목다리(위),미내다리(아래)는 강경장이 아우른 사람들의 경제력을 짐작하게 하는 유적지로 손꼽힌다.

10월 강경 역사탐방은 코스모스 만발한 가을 들녘을 보러 떠나는 낭만 여행이 덧붙여졌다.

아침 7시 전인 이른 아침 수원문화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부지런한 회원들이 벌써 15명이 모여 줄지어 서 있다. 매달 한 번씩 마주치는 회원들과 정답게 안부 인사를 주고받는다. 2013년부터 시작된 여행은 기자를 비롯해 모두에게 큰 의미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염상균 해설사의 강의를 더 좋은 자리에서 듣기 위해 줄을 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골드투어 버스가 수원문화원을 출발하고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논산을 먹여 살린 강경읍'이란 주제로 1시간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과거 강경은 강 포구로 원산항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컸습니다. 시장규모 역시 평양, 강경, 대구 순으로 손에 꼽힐 만큼 발달한 지역이었죠. 논산시의 서쪽에 위치한 강경읍은 논산천과 강경천이 논산평야를 가로질러 금강으로 유입되는 곳으로 수로와 육로를 잇는 큰 포구로 번성하였습니다."
강경의 근대문화유산을 둘러보다.

강경상고 교장관사(위),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아래) 서정구교장선생님을 만나다.

강경의 오랜 역사와 출신 학자들의 이야기에서 왜 충청도를 양반의 고장이라 불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더불어 원목 다리와 미내 다리를 통해 볼 수 있는 무지개다리의 역사는 수원화성에서 완성되었다는 설명은  화홍문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는지 다시 깨닫는 시간이 됐다.

"여러분은 오늘 침례교회 성지를 가게 됩니다. 1897년 한강 이남에서 지어진 남측 최초의 예배 터로 당시 남녀칠세부동석, 남녀유별이 엄격한 유교 전통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고, 일제 강점기 탄압의 역사를 알게 됩니다. 1943년 일제는 민족 말살 정책과 항일 사상의 근거지를 없애려는 의도로 교회를 방화하고 신사 참배 부지로 사용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강경침례교회에 관한 역사 강의는 수원 김장환 목사의 한미관계 중재 역할과 기독교 역사 전반에 걸친 이야기로 뻗어갔다. 더불어 수원문화원 주차장도 바로 아래 수원향교가 있어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의 현장이 만들어졌다는 설명을 덧붙여주셨다. 우리나라 근본을 짓밟는 무례한 일제 강점기의 역사는 언제 들어도 치욕적이고 울분을 동반한다.
1900년대 조선에서 근대화의 수혜를 입은 첫번째 지역으로 강경이 손꼽힌다.

침례교회 최초의 예배지에서 설명을 듣는 참가자들,붉은 벽돌로 지어진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옥녀봉,강경젓갈을 점심으로 먹었다.

젓갈 냄새가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강경읍 젓갈 시장
 
기자의 고향은 충남 논산과 경계선에 있는 전북 완주군에 있다. 어릴 적 젓갈을 사러 강경에 오곤 했는데 짜릿한 젓갈 냄새가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충청도 사투리가 구수한 시장상인은 새우젓과 생선을 팔기 위해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고 흥정하는 악착같은 모습을 보였다. 시장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면서 빈손으로 나올 수 없는 분위기가 어릴 적에는 낯설지만 흥미로웠다.

"어릴 적 먹었던 그 맛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짭쪼름 하니 정말 밥도둑이네." "짜서 많이 먹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자꾸 더 먹게 되네요." "갖가지 젓갈을 넣고 고추장과 비벼 먹으면 환상적인 맛이 납니다."
인문학 탐방에서 늘 기대되는 점심 특별메뉴는 이번에도 기대에 부응했다. 젓갈 백반이 나왔는데 평소 먹던 오징어, 꼴뚜기를 비롯해 토하젓, 황석어 젓갈 등 10가지 넘게 나와 참가자들의 입맛을 돋웠다. 저마다 각자의 입맛으로 특별한 점심을 먹었고 가족들을 위해 강경 젓갈을 구매할 시간을 가졌다.

1905년 경부선의 개통은 강경의 쇠락을 가져왔다. 철도는 금강수운의 쇠퇴와 역할 감소를 불러왔고 그에 따른 강경의 발전은 멈추어 지금에 이르렀다. 강경역이 세워지고 도심지에 많은 근대건축물이 들어섰지만, 기존 시장의 역할은 서서히 줄어들게 되었다.

강경객주들이 만든 노동조합건물과 강경 중앙 초등학교 강당, 강경 상고 관사 등 강경의 지난 영화를 엿 볼 수 있는 문화재들을 둘러보았다. 일제 강점기의 잔재를 굳이 보호해야 하는가에 관한 부분에서는 시대 산물 역시 우리의 역사이기에 후세를 위해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설명이 있었다.

논산시 강경읍 중앙리에 위치한 강경중앙초등학교에서  서정구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현재 학교는 전교생이 60명이 되지않아  통폐합의 위기를 겪고 있지만 학교를 지키기 위한 나름대로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강당은  개교 30주년 기념으로 1937년 준공된 건물로 붉은 벽돌이 돋보인다. 건축당시 체육관 겸용으로 지어졌는데 바닥의 마루가 80년의 역사를 보여준다. 창을 비교적 많이 내서 채광이 좋고, 기둥없는 넓은 강당의 모습은 지어질 당시의 기술력이 엿보인다.

"이 강당은 한국 근대시기 교육시설 중 전형적인 모습을 담고 있어 연구가치가 높은 문화재입니다." 서정구 교장선생님의 설명에서 학교에 대한 애정이 묻어있다. "오래도록 보호하고 지켜나가도록 노력할겁니다." 덧붙이는 말씀에 참가자 모두 박수를 보냈다.
임이정과 팔괘정에서 금강을 보다.

팔괘정,임이정,죽림서원을 돌아보는 인문학 역사 탐방과 가을 코스모스를 보는 낭만여행이 동시에 이뤄졌다.

우암 송시열이 건립한 정자로 퇴계 율곡 선생을 추모하며 당대의 학자 및 제자들을 양성했던 '팔괘정', 사계 김장생이 후학양성을 위해 강학으로 사용하던 '임이정', 흥선 대원군의 집권 당시 철폐되었으나 1946년 다시 복원된 '죽림서원'을 돌아보며 여행은 끝이 났다.

아쉽게도 문화재는 3곳 모두 내부를 볼 수 없게 잠겨져 있어, 남아있는 현판이라도 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조상들이 남긴 유산 중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높아 보호해야 할 것이지만, 우리 문화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밑거름이 되려면 사람들이 찾아와서 역사를 배워가야 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무조건 잠겨놓고 볼일만은 아닌 것 같다.
10월 화성문화제에서 만난 화홍문.

무지개다리의 완성은 수원화성 화홍문이다.강경의 원목다리와 미내다리를 보고 화홍문의 아름다움을 생각했다.

이제 2018년 인문학 역사탐방은 11월 경기 가평, 양평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매월 매주 큰 사고 없이 만족스러운 여행이 되도록 노력하는 수원문화원 스텝과 해설을 맡아주시는 염상균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강경원목다리, 강경미내다리, 강경근대문화건물, 강경중앙초등학교, 서정구교장, 강경포구, 옥녀봉, 침례교회최초예배지, 김장환목사, 팔괴정과 임이정, 수원문화원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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