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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직장 동료들에게 수원 알리는 홍보대사 되다.
3일 서호의 축만제와 경기상상캠퍼스에서의 수원 이야기들
2019-06-03 23:37:40최종 업데이트 : 2019-06-19 10:30:44 작성자 : 시민기자   김청극
과거 30대에 함께 했던 직장의 동료들을 만났다. 각각 서울, 인천, 부천, 천안 등 흩어져 살기에 만나는 약속장소를 수원역으로 했다. 만나서 점심식사도 해야 하고 정식의 등반은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수원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한 나머지  가까운 서호를 산책하는 코스로 잡았다.

차량을 이용하여 서호 입구에 다다랐다. 꽃피는 봄이나 가을보다는 못하지만 초여름도 괜찮은 것 같았다. 수원에서 40년이나 살고 있어 나로서는 자주 찾던 곳이지만 외부에서 오는 동료들은 거의 처음이기에 오랫동안 걷는 부담에서 벗어나 가벼운 산책로를 택했다.
한가로움과 평화가 공존하는 민물가마우지들의 낙원

한가로움과 평화가 공존하는 민물가마우지들의 낙원

시원한 강바람이 살살 불어왔다. 오전 11시가 넘어 바깥기온은 30도가 넘는 초여름의 이상 기온이었다. 먼저 눈에 들어 오는 것은 평화롭게 놀고 있는 민물가마우지 떼들이었다. 세상적인 시름이 없어져 마음이 편안했다. 서호천 한 가운데 인공섬이 보였는데 그들의 서식처였다. 수 많은 민물가마우지 둥지에서 떨어지는 배설물이 때로는 섬 전체 90%를 차지하는 아카시아 나무를 포함한 초목들의 위부분을 하얗게 덮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 다행히 지금 6월초는 녹음이 우거져 모두가 푸르러진다고 했다.

한낮이 가까워지기 때문에 걷기 운동이나 다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가끔 자전거가 지나갔다. 그래도 그늘이 군데군데 있어 운동하기에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조금 걷다가 걸음이 멈춰졌다. 새들을 보며 잘 모르지만 들은 대로 말했다. 왜가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토실토실 건강했다. 천연기념물 13호이다. 자주 보이는 민물가마우지는 물위에 있다가 나르는 모습이 너무도 둔탁했다. 한마디로 힘에 겨웠다.
 
옆에 있던 한 동료는 "날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보자"고 했다. 마치 육상 단거리 선수가 출발할 때 뒷발을 차는 힘으로 탄력을 받는 것과 매우 비슷했다. 수많은 민물가마우지는 물위를 출발모습이 똑같았다. 서서히 걷노라니 수원역과 화서역으로 오가는 전철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은 희미하게 수많은 아파트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들은 오히려  "주변의 아파트가 많이 세워져 분위기를 덜 살린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어느 동료는 "여기에 유람선을 띄울 수 없느냐?"고까지 했다. "그래도 자연 보존을 위해 그대로 잘 관리하는 것이 낫다"는 말도 오갔다. 빨간 장미가 계절을 대표했다. 조금 더 걸으니 축만제(祝萬堤)라는 비석이 나타났다.
정조23년에 조성된 대규모 수리시설이었던 축만제

정조23년에 조성된 대규모 수리시설이었던 축만제

사람도 많지 않아 꼼꼼하게 소리 내어 읽었다. 경기도 기념물 제200호(2005.10.17.)로 지정된 조선시대 1799년(정조23)화성의 서쪽 여기산 아래 길이 1246척, 너비 720척이라는 당시로는 최대 크기로 조성한 저수지를 의미했다. 이에 앞서 정조는 1795년에 장안문 북쪽에 만석거(萬石渠)를, 1797년에 화산 남쪽의 사도세자 묘역 근처에 만년제를 축조했다.

대규모 수리시설과 둔전 개간이 크게 성공하자 그 수익으로 수원화성을 수리하는 비용으로 사용했다. 축만제의 가치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아 2016년 11월에 국제관개배수위원회(JCID)의 세계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정조23년 수원성을 쌓을 때 3만량이라는 거금을 들여 만든 인공호수에 제방을 쌓고 완성한 기념으로 세운 비석임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세월이 가며 비와 바람에 글씨도 하나 둘 퇴색되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호수를 거닐다 잠시 수원이야기를 계속하는 옛 직장동료

호수를 거닐다 잠시 수원이야기를 계속하는 옛 직장동료

우리 일행은 수원시가 국토의 중심으로 비나 가뭄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전혀없는 선택 받은 땅 임을 이구동성으로 인정했다. 수원에 농촌진흥청이 있고 과거에는 도청소재지가 인천이었을 당시 수원은 농업으로 유명했던 이야기도 곁들였다. 그러나 이제는 농촌진흥청이 남쪽으로 떠나 차차 물의 이용가치가 줄어드는 현실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다시 저수지를 주시하며 서호에 대한 역사를 살폈다.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뜻으로 화성의 서쪽에 있어 일명 서호(西湖)로 불리웠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12시가 훨씬 넘어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 멀리 보이는 공원에는 체험학습을 나온 학생들이 많았다. 광교호수공원이 있지만 시간이 모자라 가지 못한 아쉬움도 있음을 말했다.
 초여름의 더위를 막아주는 호수와 우거진 나무들

초여름의 더위를 막아주는 호수와 우거진 나무들

경기상상캠퍼스로 가다가 가까운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수원시의 유명한 곳을 보려면 넉넉하게 3일은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식사를 한 시간 동안 한 후 수원연극축제가 3일 간 열렸던 곳을 산책했다. 가볍게 담소를 나무며 수원이야기를 계속했다. "문화와 예술이 남다르게 많고 많은 시민이 적극 참여하는 의식이 매우 높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연극축제로 대 성황을 이루었던 곳은 어쩐지 허전했다. 대신 각종 창작활동이 이루어지는 실내를 돌아봤다. 마지막 코스로 수원화성 행궁을 지나며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시간을 내어 다시 한번 수원의 문화를 돌아보자"는 말로 아쉬움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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