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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앞 홍살문 언제 세워졌을까
화령전 건립 후 화령전 앞으로 이전한 듯
2019-07-07 15:54:29최종 업데이트 : 2019-07-08 12:23:42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화성행궁 앞에 있는 홍살문

화성행궁 앞에 있는 홍살문

홍살문의 사전적인 의미는 능(陵), 원(園), 묘(廟), 궁전(宮殿) 또는 관아(官衙) 등의 정면 앞에 세우던 붉은 물감을 칠한 나무문이라고 되어있다. 홍살문은 서원, 향교에도 설치했고 충신, 열녀, 효자 등을 배출한 집안이나 마을 등에도 세웠다. 신성시 되는 장소를 보호, 공경하고 벽사의 의미도 들어있다.

홍살문은 홍전문(紅箭門) 또는 홍문(紅門)이라고도 한다. 형태는 둥근 기둥 두 개를 세우고 위에는 지붕이 없이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워 놓았고 그 중간에는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다. 태극 문양은 2태극, 3태극, 빛을 넣은 3태극 등으로 표현했고 태극 문양 위는 2지창, 3지창이 있다.

화성행궁 정문인 신풍루 앞에는 팔달산에서 발원해 화성행궁 정문 앞을 흐르는 명당수가 있다. 명당수에는 악귀를 막기 위해 금천교라는 다리를 만드는데 바로 신풍교이다. 신풍교를 지나면 홍살문이 있는데 이 홍살문은 화성행궁을 보호하고 신성시하는 역할을 했을 것인데 언제부터 있었을까.

홍살문은 궁전이나 관아 앞에 세웠으니 당연히 화성행궁 앞에도 있었다. 화성성역의궤의 '화성전도', '행궁전도', '연거도', 한글본 정리의궤의 '화성전도', '행궁전도', '연거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성행궁도', 단원 김홍도 그림의 '화성행궁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삼성리움미술관 소장 화성능행도 8폭 병풍의 '서장대야조도', 1790년대 후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성전도 6폭 병풍' 등에 신풍교 밖 같은 위치에 홍살문을 그렸다.

홍살문이 그려진 그림들의 제작 시기는 화성행궁이 생긴 이후부터 화령전이 생기기 이전이다. 화성성역의궤는 1801년에 간행되었지만 1796년 수원화성 축성 이후부터 편찬에 들어간 것이고 정조대왕 생전에 편찬이 완료되어 정조대왕 사후에 간행된 것이다. 한글본 정리의궤는 화성성역의궤 도설을 밑그림으로 했기 때문에 편찬 시기와는 무관해 보인다. 화성행궁 앞 홍살문은 화성행궁이 건설되면서 세워진 것인데 언제 없어진 것일까.화성행궁 앞 홍살문 옆에는 하마비도 있다.

화성행궁 앞 홍살문 옆에는 하마비도 있다.

정조대왕 생전의 그림들은 많이 남아있어 홍살문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지만 정조대왕 사후의 그림은 '화성전도 12폭 병풍' 1점만 알려져 있다. 1820년 전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화성전도 12폭 병풍'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 '화성전도 6폭 병풍'과 기본적인 구도가 같은 그림이다. 그림의 가장 큰 차이는 정조대왕 사후에 세워진 '화령전(1801년)', '지지대비(1807년)', '매향석교(1814년)'가 그려져 있지만 1824년 북옹성 홍예 위에 세운 루는 그려져 있지 않아 그림의 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림을 정확하게 그렸다는 전제하에 화성전도 12폭 병풍은 1814년 이후 1824년 이전에 그렸을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에는 화성행궁 낙남헌 밖에 화령전과 홍살문이 그려져 있다. 화령전의 정확한 위치는 장춘각과 강무당 사이에 있고 홍살문은 낙남헌 앞쪽에 있다. 이 그림에서 주목할 점은 화성행궁 앞에 있던 홍살문은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화성행궁 앞에 있던 홍살문이 화령전 앞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정조대왕 살아 생전의 화성행궁은 평상시에는 화성유수가 거처하는 관아였다가 정조대왕이 원행에 나서면 왕의 공간이었다. 정조대왕 사후 화성행궁 바로 옆에 정조대왕의 어진을 모신 영전(影殿)인 화령전이 생기면서 그 격으로 보더라도 홍살문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승정원일기 고종 7년인 1870년 3월 13일 기록을 보면 고종이 현륭원, 건릉, 화성행궁, 화령전을 방문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상류천(上柳川)에 이르러 상이 가교에서 내려 말을 탔다. 팔달문(八達門)에 이르러 선전관이 여쭈어 기치를 좌우에 나누어 세우고 취타를 그쳤다. 신풍루(新豊樓)의 좌익문(左翊門)과 중양문(中陽門)을 거쳐서 도로 행궁에 임어하였다...<중략> 잠시 후에 통례가 무릎 꿇고 막차에서 나오기를 계청하니, 상이 익선관ㆍ곤룡포를 갖추어 입고 나왔다. 통례가 무릎 꿇고 여를 타기를 계청하니, 상이 여에 탔다. 홍전문(紅箭門)에 이르러 통례가 무릎 꿇고 여에서 내리기를 계청하니, 상이 여에서 내려 걸어서 망전위(望殿位)에 나아갔다. 통례가 무릎 꿇고 국궁하고 사배하고 일어나 평신하기를 계청하니, 상이 사배례를 행하였다. 통례가 상을 인도해 전 안에 나아가 봉심하였다."

고종이 현륭원에서 화성행궁으로 올 때의 여정과 화성행궁에서 화령전으로 가는 여정이 나온다. 팔달문 -> 신풍루 -> 좌익문 -> 중양문을 거쳐 행궁으로 들어왔는데 여기에는 홍살문이 없다. 화령전을 방문할 때는 홍살문 -> 화령전 순으로 되어 있다. 이 글을 통해 홍살문은 화성행궁 앞에 없고 화령전 앞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화성행궁, 홍살문, 화령전,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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