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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을 걸으며 추억에 잠기다
김우영/시인, 언론인
2018-07-12 09:21:31최종 업데이트 : 2018-07-13 09:59:53 작성자 : 편집주간   강성기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좋은 점은 시간을 내 마음대로 안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고정적으로 시간에 맞춰 출퇴근할 필요가 없이 원하는 시간에 원고를 쓰고 광교산에 다닌다. 뭐, 벌이가 시원찮아져서 씀씀이를 줄여야 하지만 집필작업을 하다말고 내가 좋아하는 화성을 걷거나 행궁동 골목 산책을 하는 재미는 으뜸이다.

 

어제는 화성행궁을 걸었다. 1500원을 내고 입장권을 끊어 들어가니 평소 알던 직원이며 문화관광 해설사들이 "아니, 화성행궁 주인께서 왜 표를 끊으셨어요?"라고 농담을 한다. "내가 무슨 주인..." 하며 마주 웃었다. 주인은 아니다. 그렇긴 하지만 화성행궁과 나는 제법 깊은 인연이 있다. 몇 달 전 본란("멀지 않았어요" 화성행궁 완전 복원, 4월 19일 게재)에서도 밝힌 바 있다.

 

1989년 당시 수원문화원장이었던 고 심재덕 전 수원시장과 고 이종학, 고 김동휘, 고 이승언, 이홍구 선생 등 지역 원로, 문화예술계, 학계, 지역사회단체 대표, 언론계 등 각계에서 모인 42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해 '수원화성행궁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나는 추진위 홍보부장이란 직책을 맡아 나름 힘을 보탰다. 자세한 얘기는 먼저 글에서 밝혔으므로 생략한다.

 

우여곡절 끝에 2003년 10월 9일, 화성행궁 복원 1단계공사가 끝나고 일반에게 공개됐다. 그 날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화성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대문이 은은한 연기와 웅장한 음악 속에서 서서히 열렸다. 그 때 정조대왕(역)이 정문으로 걸어나와 "어서 오라! 후손들이여. 내 너희를 반갑게 맞이하노라..."라며 굵은 목소리로 환영했고 시민들이 입장했다.
어서 오라

"어서 오라! 후손들이여. 내 너희를 반갑게 맞이하노라..." 2003년 10월 9일 화성행궁 개관식에서 정조대왕이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가슴이 울렁거렸다. 감개무량...그랬다. 감개무량이란 표현은 이럴 때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게 분명 꿈은 아니겠지? 불가능할 것 같던 일이 이루어졌다. 시민들의 힘으로 수원경찰서와 경기도립 수원의료원, 경기도 여성회관 등을 이전시키고, 그 자리에 화성행궁이 중건(重建)됐다는 것이 현장에 있어도 믿어지지 않았다.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정책에 의해 의도적으로 파괴된 화성행궁은 조선시대 최대 규모의 행궁으로 정조대왕께서 수원에 행차하실 때마다 묵곤 하던 곳이다.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심이 서린 화성행궁은, 한편으론 원대한 개혁정치의 산실로, 또 한편으론 은퇴한 뒤에 수원으로 와서 노후를 보내기 위한 공간으로 축조했던 건물이었다.
 

또 조선시대 최대의 궁중행사였던 혜경궁 홍씨 회갑연이 열렸던 역사적인 공간이었을 뿐 아니라, 수원지역 노인들을 초청해 임금이 직접 양로연을 베풀기도 했다.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주고 죽을 끓여주었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사회를 맡았던 김준혁 교수(한신대)는 "화성행궁은 온 백성들에게 삶의 희망의 공간이요, 새로운 고향과도 같은 곳"이라고 말하면서 이날의 감동을 증폭시켰다.

정조대왕의 꿈이 깃들어 있던 화성행궁은 이렇게 다시 태어났다. 그때 나는 행궁 복원을 위해 함께 노력했던 지역 선배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우리 조상님들께 조금 면목이 서는군요"라고.

화성행궁 개관식

화성행궁 개관식

그리고 지금은 화성행궁 2단계 복원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2단계 복원 사업은 2020년까지 우화관, 별주(분봉상시), 장춘각 등을 복원한다.

 

이런 저런 추억에 잠겨 화령전도 가보고 미로한정 정자에도 올라가 앉아봤다. 더운 날씨지만 솔숲을 지나오는 바람이 참 시원하다. 싱가포르에서 왔다는 청년들과도 짧은 영어지만 김정은-트럼프 북미 정상회담 관련 대화도 나눴다.
 

천천히 돌아서 나오는 길 유여택 앞에 섰다. 저 유여택 대들보엔 내가 글을 짓고 서예가 윤춘수씨가 글씨를 쓴 상량문이 들어 있다. 일부를 소개한다. 원문의 한자는 모두 한글로 바꾸었다. 

 

<華城行宮 維與宅 重創 上樑文>

'...(전략)...후손들은 화성성역의궤의 충실한 건축기록에 따라 이를 다시 복원하기에 이르렀으며 화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수백년 후를 미리 내다본 임금의 현명하고 높은 헤아리심에 어찌 감탄치 않을 것인가?...(중략)...대왕13년(1789) 행궁 복내당 동행각 밖에 세웠는데 처음 이름은 은약헌이라 했으며 그뒤 대왕 20년 지금의 유여택이라 했다.

대왕께서 승하하신 후 순조 1년(1800) 화령전이 건립되기 전까지 대왕의 진영을 이곳에 보관해 왔으며 그 이전 평소에는 수원부사의 침소로 이용돼 왔음을 여기에 참고로 기록한다.

맨 처음 이 건물이 없었고, 있었고, 없었고, 다시 있으니 이제 유무(有無)에 관련 없이 그 거룩한 뜻이 청사에 길이길이 남아 있으라...(하략)'

 

부끄러운 글이지만 그 때문에 이곳을 지날 때마다 내 집같이 느껴진다. 이 건물이 천재지변이나 인재로 인한 사고 없이 잘 보존된다면 앞으로 나보다는 몇 배, 아니 몇 십 배 더 오래 버틸 것이다. 그래서 더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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