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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기’ 김향화 선생을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나다
김우영/시인, 언론인
2018-08-20 13:08:45최종 업데이트 : 2018-08-23 15:30:12 작성자 : 편집주간   강성기

지난 17일 수원시 3.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에서 실시한 국내 3.1운동 유적지 탐방에 참여했다. 다음 달에는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 프로그램으로 러시아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지역을 답사한다는 데 나는 과거 이 지역 독립운동 유적지를 두 번이나 다녀 온 바 있다. 게다가 21일 출발하는 연암 박지원 선생의 열하일기 코스 답사 여행과도 겹쳐 못 가게 됐다.

 

이번 3.1운동 유적지 탐방은 3월1일 만세 시위가 벌어진 방화수류정(용두각) 아래 용연과 화성행궁을 거쳐 발안 제암리-서대문형무소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답사를 이끈 이동근 학예연구사의 열정은 모두를 감탄케 했고 몰입도를 더욱 높였다.

 

내가 이번 답사에 선뜻 참여하게 된 것은 부끄럽게도 아직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외국인의 눈을 통해 우리 문화와 자연, 역사와 문화유산, 음식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우리 자신을 다시 보게 하는 좋은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독일 청년들이 DMZ에 갔다가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한 것이다. 청년들은 우리의 역사에 공감하며 가슴 아파하는 모습을 보여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줬다. 또 독일과는 달리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잘못을 비판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받았다.

 

그런데 이들의 생각에 공감하면서도 내내 가슴이 무거웠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저렇게 이역만리까지 찾아와 가슴 아파하면서 일본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데 나는 어째서 지금까지 한 번도 찾아가보질 않았던가하고 자책했다. 전철을 타면 얼마 걸리지 않는 수원에 살면서도 말이다.

 

특히 수원지방은 평안북도 의주, 황해도 수안과 더불어 3.1운동의 3대 항쟁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다. 서울에서 만세 시위가 벌어졌던 1919년 3월1일 방화수류정 아래에서 김세환 선생 등이 주도, 수백 명이 만세를 불렀고 이 만세 시위는 전국 각 지방으로 퍼져 나가는 기폭제가 됐다. 수원지방의 3.1운동은 농민과 노동자, 상인, 지식인과 심지어는 기생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계층이 참여한 독립운동을 벌였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17일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한 수원시 3.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들

17일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한 수원시 3.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들

그런데 그분들이 잡혀가 고문을 당하고 죽음을 당한 현장인 서대문형무소가 가까운 거리임에도 지금껏 방문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기대감이 컸다. 그리고 뒤늦게라도 찾아가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7월 경성감옥으로 문을 열었다. 그 후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로 불렸으며 해방 후에는 경성형무소,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서울구치소로 이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그러다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됐고 1988년 2월 이곳은 사적(史蹟)으로 지정됐다. 해방 후의 건물은 대부분 철거됐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주로 수감되었던 일부 옥사와 사형장 등 11개 동이 남았다.

 

멀리서 보아도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사형장은 내부에는 사형 집행에 쓰였던 기구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사형장 앞에는 굵은 미루나무 한그루가 남아 있다. 이 나무는 1923년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건립 당시 심었는데 '통곡의 미루나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조국 독립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애국지사들이 이곳을 지나면서 통곡했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이다.
 

울타리 너머 사형장 안쪽에 같은 시기에 심은 또 다른 미루나무는 '사형장 미루나무'다. 이 나무는 성장이 더뎠는데 사형장에서 순국한 선열들의 한이 서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지난해 8월 15일 세찬 바람에 쓰러지고 말았다.

서대문형무소에 전시된 수원의기 김향화선생의 사진과 공적사항

서대문형무소에 전시된 수원의기 김향화선생의 사진과 공적사항

서대문형무소 관람 도중 가슴이 뭉클했던 것은 수원에서 만세 시위를 벌인 의기(義妓) 김향화 선생의 사진을 만났기 때문이다. 유관순 열사도 갇혔던 여자 감옥 안에는 김향화 선생의 사진이, 그 옆 담장엔 얼굴 그림이 그려져 있어 반가웠다.
 

수원기생들은 1919년 1월 고종 승하 때 덕수궁 대한문 앞에 가서 소복을 입고 통곡했으며, 3월 29일에는 30여명이 자혜의원과 수원경찰서 앞(현 화성행궁)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다 체포돼 주동자인 김향화 선생은 모진 고초를 당하고 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사실은 역사의 뒤안길에서 잊혀졌다. 그러다가 지난 2008년 수원시 이동근 학예연구사가 수원기생들의 사진과 인적사항이 담긴 자료를 공개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됐으며, 2009년 3월 1일에는 '만세 부른 수원기생들'이라는 특집 다큐멘터리도 제작됐다.

이 학예사의 집중적인 연구 발굴로 김향화 선생은 지난 2009년 4월 13일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대통령 표창과 함께 독립유공자로 거듭났다. 이동근 박사도 서대문형무소 안에 걸린 김향화 선생의 사진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

 

무더위가 지나가면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 보시기 바란다. 그분들이 모든 것을 바쳐 희생한 덕분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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