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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3·1운동 민족대표 48인 김세환 선생을 기리며
언론인 김우영
2019-04-01 11:15:51최종 업데이트 : 2019-04-14 16:13:10 작성자 :   e수원뉴스
[공감칼럼] 3·1운동 민족대표 47인 김세환 선생을 기리며

[공감칼럼] 3·1운동 민족대표 48인 김세환 선생을 기리며


수원의 선구적인 독립운동가 김세환 선생. 그의 꺾이지 않는 기개처럼 눈빛이 형형하다.

수원의 선구적인 독립운동가 김세환 선생. 그의 꺾이지 않는 기개처럼 눈빛이 형형하다.


3·1운동 민족대표 48인 중의 한명이며 수원지방 선구적인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김세환(金世煥) 선생을 다시 생각한다.

그동안 본란을 통해 임면수 지사와 김향화 지사 등을 몇 차례 집중적으로 썼지만 김세환 선생에 대한 소개는 소홀했다. 수원 지역 뿐 아니라 국내 3·1 독립만세 운동을 사전에 조직하고 준비한 민족 대표 48인 중의 한사람이자, 수원지역에서 선도적으로 독립운동을 이끈 선구자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팔달문안 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다 내 좋아하는 조성진 아우가 운영하는 커피숍 가빈 건물에 걸린 현수막을 보았다. (커피숍 2층엔 가빈 갤러리가 있어서 커피 마실 겸 전시회 볼겸 가끔 들르는 곳이다.)

현수막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4월 5일부터 10월 6일까지 김세환 선생 전시회와 4차례 역사 콘서트를 연다고 쓰여 있다. 김세환 선생 관련 자료에다가 독립운동 관련 우표도 전시된다고 한다.

전에 수원화성박물관 한동민 관장으로부터 이 건물자리가 김세환 선생이 살았던 집터였다는 말을 틀은 적이 있다. 지금 그 앞 인도엔 '김세환 집터'라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그러니 가빈 갤러리에서 열리는 김세환 선생 자료 전시회가 더욱 뜻이 깊을 수밖에 없다.

이 건물에서 커피숍과 함께 가빈갤러리를 운영하는 조성진 아우는 내가 활동하는 화성연구회 이사로 오랫동안 함께 해오고 있는 사이다. 가빈 갤러리에선 화성연구회 전시회를 비롯, 미술·공예 작품전시회, 역사자료 아카이브 전시회가 여러 차례 열렸다.

생전에 이 자리에서 사셨던 김세환 선생의 영혼도 그 터에 세워진 건물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보면서 흡족해 하실 것으로 믿는다.

선생은 1889년 11월 18일 당시 수원군 수원면 남수리 242번지(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792)에서 출생하고 생활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현재 가빈커피숍과 가빈갤러리가 있는 곳이다. 이후 한성외국어학교와 일본 중앙대학에서 공부한 당대 최고 지식인이었지만 수원으로 돌아와 수원상업강습소(지금의 수원중·고등학교)와 삼일여학교(지금의 매향중·고등학교)에 재직하며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줬다.

선생은 경성 기독교청년회(YMCA) 간사였던 박희도 선생으로부터 3·1운동 동지 규합 요청을 받고 경기도 수원을 중심으로 충청지역까지 내려가 모집을 담당했다.

이에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 관장은 지난 2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유관순 열사로 대표되는 천안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도 김 선생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김세환 선생은 수원인근·충청지역의 동지 규합에 힘쓰는 한편으로 김노적(1895~1969) 선생 등과 수원군 만세 운동을 일으켰다. 김세환·김노적 선생은 수원지방 3·1운동의 주동자였다. 3월 1일 수원 화홍문과 16일 장날 팔달산 서장대와 창룡문 연무대에서 각각 수백 명이 모여 만세를 불렀다. 이후 일본경찰은 삼일여학교를 급습해 사무실을 부수기도 했다. 김세환 선생이 있는 이곳이 만세 운동의 진원지라고 판단한 듯하다.

선생은 경성에서 진행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됐고 360일간의 옥고를 치렀다. 재판장이 "이후에도 조선의 독립을 위해 계속 운동할 것인가?"하고 물었을 때, 조금의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명료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석방된 후 일주일되는 날 자녀들과 찍은 사진. 인자한 아버지의 표정으로 돌아와 있다.

석방된 후 일주일되는 날 자녀들과 찍은 사진. 인자한 아버지의 표정으로 돌아와 있다.


​석방된 이후에도 여전히 독립을 위한 사회·문화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1925년 4월 17일 종로경찰서에서 경성지방 법원 검사에게 보낸 비밀 문건이 있다. 여기에는 선생이 당시 전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총망라된 '조선사회운동자동맹 발기 준비위원회' 수원지역 준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한동민 관장에 따르면 1927년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연합조직이었던 신간회(新幹會)에 참여했고 이듬해인 1928년 8월 19일 개최된 임시대회에서 신간회 수원지회장으로 선출됐다. 또 외곽조직인 수원체육회를 조직해 회장을 역임하는 등 지속적으로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선생은 광복을 맞은지 한달 후인 1945년 9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963년엔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또 수원시는 지난해 8월 독립운동가 김세환 선생 등 수원을 빛낸 인물 8명을 수원시청 1층 로비에 마련한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 했다.

수원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인 김세환 선생의 애국적인 삶을 느낄 수 있는 전시회에 꼭 가보기 바란다. 자비를 들여 이 전시회를 준비한 조성진 아우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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