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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수원 '효(孝)' 관광 상품화 서둘러야
언론인 김우영
2019-05-27 10:27:32최종 업데이트 : 2019-05-28 13:03:36 작성자 :   e수원뉴스
[공감칼럼] 후원 효(孝) 관광 상품화 서둘러야

[공감칼럼] 수원 '효(孝)' 관광 상품화 서둘러야

지난 4월 30일 권선구청에서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입북동이 장수지팡이(청려장, 靑藜杖)를 전달한 것이다. 이 장수지팡이는 5월 가정의 달과 어버이날을 맞아 수원시 각 동에서 개최하는 경로행사에서 장수 노인들에게 전달됐다.

장수지팡이는 입북동 '효사랑 장수지팡이 만들기 사업단'에서 제작한 것이다. 효사랑 장수지팡이 만들기 사업은 지난 2012년에 시작됐다. 입북동의 장수지팡이 사업은 수원시가 추진하는 마을 만들기의 일환이다. 2월 명아주 씨앗 파종을 한 후 밭갈이, 거름 펴기, 복합비료 뿌리기, 이식, 지주대 설치, 풀베기 및 가지치기 등 친환경 재배 과정을 거쳐 10월경에 수확한다. 그리고 앞에서 소개한 대로 명아주 말리기 및 불리기, 명아주 껍질 벗기기, 사포질하기 및 6차례 니스칠 하기 등 2년간의 과정을 거쳐 완성품을 만드는 것이다.
입북동 효사랑 장수지팡이 전달식

입북동 '효사랑 장수지팡이' 전달식

2013년 2월엔 전담 사업단인 '효사랑 장수지팡이 만들기 사업단'이 구성돼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사업단은 장수지팡이를 수원시 관내 100세 이상 장수노인 60여명과 시의 각종 경로행사시 전달하는 한편 시민을 대상으로 판매도 하고 있다. 입북동을 방문하면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청려장은 한해살이풀인 명아주의 대로 만든 지팡이로서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장수한 노인에게 왕이 직접 하사했다. '본초강목'에는 청려장을 짚고 다니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고 기록돼 있다. 옛 사람들은 신경통에도 좋다고 여겼다. 청려장은 건강과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귀하고 의미 있는 물건인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50세 때 자식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청려장을 '가장(家杖)'이라 했고, 60세 때 마을에서 주는 것을 '향장(鄕杖)', 70세 때 나라에서 주는 것을 '국장(國杖)', 80세 때 임금이 내리는 것을 '조장(朝杖)'이라고 해 장수한 노인의 상징으로 삼았다.

청려장은 안동 도산서원에도 보관돼 있다. 퇴계 이황이 짚고 다니던 것이다. '청려장(靑黎杖) 짚고 단발령(斷髮令) 넘어가니 장안사(長安寺) 내외협(內外峽) 전나무 수천 주(數千 株) 십리정(十里程)에 어려 있고...'라는 작자미상의 금강산 기행시도 있다.

1992년부터는 '노인의 날'에 100세를 맞은 노인들에게 대통령 명의로 주어진다. 지난해 10월 제22회 노인의 날에도 100세를 맞은 전국 노인 1343명에게 문재인 대통령이 장수를 축하하고 건강을 기원하는 축하카드와 함께 청려장을 선물했다.

청려장(장수지팡이)은 '효의 도시 수원'과 잘 맞는 물건이다. 이걸 대대적으로 홍보해 수원을 대표하는 관광기념 상품으로 판매해도 될 것이다.

청려장 뿐만 아니라 효를 주제로 한 관광 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효는 부모와 조부모 등 어른을 잘 섬기는 일로써 동양과 서양, 옛날이나 지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중요한 윤리이자 가치다. 나를 세상에 보내 주시고 사람답게 자라날 수 있도록 길러주신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은혜는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효는 처음엔 부모와 자식 간의 좁은 윤리관계였다. 그러다가 차츰 영역이 확대되어 감에 따라 가족 간의 윤리가 되고, 더 나아가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즉 종족과 사회와 국가의 윤리로 성장했다.

이 효사상은 수원에서 꽃 피었다. 조선시대 22대 정조대왕의 지극한 효심은 오늘날 세계문화유산 화성을 만들었으며 조선시대 최대 규모의 행궁을 건축했다. 효심의 원찰(願刹)인 용주사와 부모은중경을 후세에 전해지게 했다. 정조대왕의 거룩한 효심은 오늘날 수원에 전승되고 있다.

비명에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를 생각하면서 실시한 능행차...정조대왕은 지지대 고개를 넘어 서울로 돌아가실 때 아버님이 묻히신 화산이 안 보이는 것이 안타까워 자주 지체했으므로 이 고개 이름조차도 '지지대고개'로 바뀌었을 정도다. 또 사도세자의 무덤에 엎드려 참배할 때는 너무 울어 눈에서 피가 흘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정조대왕은 일찍이 남편 사도세자를 잃고 홀로 되신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사도세자의 유택이 모셔진 수원에서 성대한 회갑 잔치를 열었을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경로연까지 함께 베풀었다.
 지난해 화성문화제 때 열린 혜경궁홍씨 진찬연.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강제원

지난해 화성문화제 때 열린 혜경궁홍씨 진찬연.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강제원

차츰 효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 몸속에는 효의 유전자가 전해지고 있다.

효의 도시를 긍지로 삼고 있는 수원에서 효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게 해주는 관련 행사나 체험 프로그램, 관련 투어, 기념상품을 개발하길 바란다.

그리하여 전국의 모든 노인들이 아들·딸, 며느리, 손자·손녀의 손을 잡고 수원으로 와서 행복을 느끼면 좋겠다.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공감칼럼, 김우영, 효(孝)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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