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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호국 보훈의 달, 6.25 참전용사 아버지를 생각하며
언론인 김우영
2019-06-02 15:13:56최종 업데이트 : 2019-06-02 15:14:21 작성자 :   e수원뉴스
[공감칼럼] 호국 보훈의 달, 6.25 참전용사 아버지를 생각하며

[공감칼럼] 호국 보훈의 달, 6.25 참전용사 아버지를 생각하며

아버지는 평안북도 선천군 선천면 태화동 오리정거리 출신이다. 얼마 전 칼럼에서도 이야기 한 바 있지만 술이 얼큰하면 항상 '저 앞산에서 저 뒷산까지'가 '우리 땅'이었다며 남쪽으로 넘어올 때 갖고 나온 땅문서를 펼치곤 했다.

막걸리 한잔으론 정 없단 소리 들어
게 아무도 없는 거여?
봉당 지나 들려오던
저 말씀, '피 보다 더 진한 술' 한 되 더 청하셨다


건너 편 산영(山影)까지 빈 술잔에 잠겨오고
노을이 길 그 너머
숲을 하냥 태웠었다
쓰러진 당신 혼까지도 태울 것만 같았다
-졸시 '만가'(輓歌) 전문

아버지와 마주 앉아 술 마시던 어느 여름날 내 요청에 의해 그 땅문서는 불에 태워졌다. "그래 이젠 우리 땅이 아니지"

그때 그 표정을 기억한다. 잃어버린 땅이 아까웠던 것이 아니라 생전에 고향에 가기는 힘들겠구나 하는 허탈함이 가득했다. 유난히 노을이 아름다웠던 그날 저녁 아버지는 그 어느 때 보다 더 취해서 마당에 펴 놓은 멍석에 누워 잠이 들었다. 이 시조는 그 무렵 썼는데 '시조문학'인가 '월간문학'인가에 발표된 것이다.

아버지는 6,25 전에 월남했다. 서울에서 나중에 고려대학교에 합병된 우석대학교 국문과 강의도 청강했다. 그리고 6.25가 나자 해병대로 입대했는데 언뜻 1기였다는 말도 들었다.

시골 옹색한 초가집 벽장엔 쥐똥과 먼지가 가득했는데 그 속에는 '현대문학'과 '사상계' 같은 잡지도 있었다. 자랑 같지만 나는 세 살 무렵 한글을 익혔다. 어머니 말로는 만화책을 보면서 혼자 깨우쳤다고 하는데, 사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내게 한글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절반은 맞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익힌 한글이니 어렸을 때부터 책벌레가 될 수밖에 없겠다. 가난한 살림에도 아버지는 시내에 다녀올 때마다 동화책이나 아동잡지를 사서 내게 건네곤 했다.

읽을거리가 떨어지면 벽장에서 꺼내온 책을 읽었다. 시나 평론, 정치적인 논쟁 같은 어려운 글은 이해가 안돼서 요즘말로 패스했고 소설을 찾아 읽었다. 책 모퉁이는 쥐가 갉아 먹고 중간 중간 쥐오줌으로 얼룩진 오래된 '사상계' 잡지에서 손창섭의 '잉여인간'도 봤고, '현대문학'에서는 이범선의 '오발탄'도 읽었다.

그 나이에 뭘 이해했을까마는, 그런 일들이 내 문학의 자양이 됐던 것은 틀림없다. 그러니까 내가 글을 쓰게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이다.

부모님이 사셨던 화성시 비봉면 양노리 풍경. 부모님은 아파트에서 이 벌판을 내려다보길 좋아하셨다.

부모님이 사셨던 화성시 비봉면 양노리 풍경. 부모님은 아파트에서 이 벌판을 내려다보길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몇 해 전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가 가시고 나서 정신적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우리 4남매가 "아버지는 1년만 더 사셨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풍전등화 같은 중환상태에서도 우리들의 소원대로 1년을 버티고 어머니 곁으로 가셨다.

5년간 식물인간처럼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 아버지는 당신보다 먼저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알고 계셨을까. 6.25전쟁 참전용사인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천에 있는 국가유공자 묘역인 호국원의 전망 좋은 곳에서 영면하고 계신다.

어린이 날, 어버이날, 부처님 오신 날, 스승의 날, 5.18 광주민주항쟁 기념일 등이 들어 있는 5월이 가고 이제 6월이다. 호국보훈의 달이다. 요즘 꿈에 간혹 보이는 아버지... 영정 사진이나마 모시고 평안북도 선천 오리정거리 아버지, 할아버지 고향집에 가게 될 날은 언제일까. 과연 가볼 수는 있는 것일까?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공감칼럼, 김우영, 호국 보훈의 달,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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