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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 이종학 선생을 기억하라 (하)
김우영/시인, 언론인
2018-03-12 09:41:33최종 업데이트 : 2018-03-12 09:57:49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기자

지난 2000년 10월 사운연구소 주최, (사)화성연구회 주관으로 '정조 서거 200주기 이종학선생 화성특별자료전'이 경기도문예회관 전시실에서 열렸다.

오래 전 일이라 자세히 기억 나지 않지만 개막식 때 몸이 불편하신 가운데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역사 기록의 중요성과 함께 전시 자료들을 꼼꼼하게 설명해 화성연구회 회원들과 관람객들을 감동시켰다. 

그로부터 2년 뒤 2002년 선생은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독도박물관 초대관장과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초대소장을 지낸 선생은 독도와 충무공, 그리고 일제 한국강점기를 중심으로 역사연구를 진행했다. 수집한 자료 수천점은 독립기념관, 동학혁명기념관, 현충사 등에 기증했다. 수원시에도 기증했다.

2004년 선생의 부인 윤정의 여사 등 유가족은 선생이 생전에 소장했던 고서적과 사료·지도·사진 등 무려 1만9천836점을 수원시에 기증했다. 이 자료는 일제시기의 책자와 지도, 사진·엽서와 고문서가 대부분인데 일제 침략사, 풍습 및 생활사, 도시변천 등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이 가운데 조선총독부 풍속 조사 자료는 일제가 조선의 식민정책을 위해 수집한 우리나라 풍속에 관한 기초자료인데 유일본으로 추정된다.

이 자료들 일부는 수원광교박물관 사운 이종학 사료관에 전시되고 있으니 시간이 있는 분들은 일부러라도 가서 보시길 바란다.

선생의 다른 공로 중의 하나는 수원화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고 심재덕 전 시장은 선생이 1억6천만원이란 사재를 들여 발행한 '화성성역의궤' 영인본을 들고 가서 세계유산 위원들에게 보여줬기 때문에 세계유산 등재가 가능한 일이었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했다.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2000년 가을 사운연구소 주최, (사)화성연구회 주관으로 경기도문예회관 전시실에서 열린 '정조 서거 200주기 이종학선생 화성특별자료전'에서 역사와 기록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사운 선생 (사진/화성연구회 이용창)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2000년 가을 사운연구소 주최, (사)화성연구회 주관으로 경기도문예회관 전시실에서 열린 '정조 서거 200주기 이종학선생 화성특별자료전'에서 역사와 기록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사운 선생 (사진/화성연구회 이용창)

선생의 업적은 또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수원성'이라 불리던 수원화성의 이름을 바로 잡는 데 앞장섰다. 화성에 관한 수많은 수집자료를 바탕으로 정부 기관에 청원서를 수차례 제출하는 등 적극 노력, 결국 제 이름을 되찾게 됐다.

사운 이종학 선생이 세상을 떠나고 몇 년 뒤 울릉도의 독도박물관을 찾았다. 감회에 잠겨 전시장을 돌아 본 뒤 방명록에 "사운 선생님 너무 늦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라고 쓴 뒤 밖으로 나와 한참 동안 박물관을 바라봤다.

생전에 선생은 "어디라도 좋으니 독도 박물관이 보이는 곳에 묻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바람대로 고인의 유해는 화장 된 후 독도박물관 옆 나무 밑에 안장됐다.

사운 이종학 선생은 50번 넘게 일본과 여러 나라에 가서 자료를 찾으려 애썼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시마네현 고시 제40호' 허구성을 밝힌 후 근거를 들이대며 시마네현 관리와 논쟁을 벌이는 등 외로운 역사 전쟁을 벌인 또 다른 위대한 독립군이었다.

고인은 지난 2014년 1월 14일 동북아역사재단이 주는 제5회 '독도상' 시상식에서 '독도사랑상'을 수상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딸 이선영씨가 고인 대신 상을 받았는데 당시 어느 신문과 한 인터뷰 기사를 읽다 고개를 끄덕였다.

"자료 기증하시는 데는 호탕했는데 구두는 10년씩 신으셨어요. 뒤축을 몇 번씩이나 바꾸셨죠. 그렇게 아끼면서 자료수집 비용을 대신 거예요."

실제로 나는 선생이 낡은 구두를 신고 다니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양복도 꽤 오래된 것이었다.   

그랬다. 선생은 재산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다. 거금을 들여 국내외에서 수집한 자료들을 아낌없이 기증했다. 아마 금액으로 따지면 수천억대의 부자가 됐을 것이나, 관련된 연구기관과 박물관에 모두 기증했다. 앞에서도 쓴 바 있지만 선생 사후엔 유족들이 남아 있던 귀중한 자료들까지 모두 수원시에 기증했다. 또 독도 영유권 확립과 일제의 불법 강점을 알리기 위해 방대한 자료집을 발간하여 국내외에 배포했다.

선생은 이처럼 독도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쳤고 큰 업적을 남겼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학계는 선생을 '재야 서지학자' 정도로 여겼다. 확실한 자료인데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학계의 배타성 때문이다. 이제라도 선생의 업적이 학계에서 재평가 됐으면 좋겠다.

지난 해엔 수원광교박물관과 울릉군 독도박물관이 공동으로 수원광교박물관 사운 이종학실에서 공동특별전시회 '독도, 기록하고 기억하다'를 개최하기도 했다. 독도박물관 개관 20주년 기념 전시회였는데 독도 역사와 독도 영유권에 관한 자료가 전시돼 큰 관심을 끌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동람도', '해좌전도', '울릉도 개척시 선격양미잡물용입가량성책' 등 한국의 사료(史料)와 '육지측량부발행지도일람도기일', '동판조선국전도', '대일본분견신도', '조선국세견전도' 등 일본의 사료가 눈길을 끌었다.

독도를 지킨 사람들 가운데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이 있다. 신라장군 이사부, 조선어부 안용복, 홍순칠 대장 등 독도의용수비대, 최초로 주민등록 주소지를 독도로 옮긴 최종덕, 현재 독도에 거주하고 있는 독도리 이장 김성도·김신열 부부를 비롯해 독도경비대원 등이 있다.

나는 사운 이종학 선생의 이름이 이들 명단에서 빠지면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수원은, 아니 대한민국은 그의 이름을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높은 뜻이 후세에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종학, 김우영, 화성연구회, 독도, 안용복, 이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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