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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보물을 찾아가는 여행
2018-01-02 18:10:18최종 업데이트 : 2018-01-03 07:54:27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수원은 역사와 문화의 도시다. 오래전 마한 54개국 중 모수국이 위치했고 고구려 땅이었을 때는 물골의 순 우리말인 매홀이라 불리는 등 지명은 물과 깊은 연관이 있다. 통일신라 때는 수성군, 고려시대는 수주부, 조선시대는 수원으로 불리다가 정조대왕 때 화성유수부로 불리게 되었다. 

오랜 기간 사람이 살다보니 유형, 무형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고 가치가 높아 보호해야 하는 것을 문화재라고 하는데 수원에는 선사시대 유적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 근대 등록문화재 등 현재 약 74건의 문화재가 등록되어 있다. 국가 지정 문화재로 보물, 사적, 국가무형문화재, 중요 민속 문화재가 있고, 경기도 지정 문화재로 경기도 시도 유형문화재, 경기도 시도 기념물, 경기도 시도 무형문화재, 경기도 문화재자료가 있고, 등록 문화재, 수원시 향토유적 등의 문화재가 수원 전역에 퍼져있다.
보물 제 14호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

보물 제 14호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

이들 문화재 중에서 조선경국전 등 보물 5점, 홍재전서 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9건, 영조어필 벼루 등 경기도 문화재자료 2건, 화성관련 표석 일괄 등 수원시 향토유적 5건은 수원박물관, 수원화성박물관에서 볼 수 있고, 무형문화재를 제외한 유형의 문화재는 수원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 주변을 답사하면서 야외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문화재는 어떤 것이 있을까. 보물들을 찾아가보자.

수원화성을 둘러보다가 문화재 답사여행의 출발지는 문화재 위치를 고려해 보물 제14호로 지정되어 있는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를 보면서 출발하면 무난하다. 이 비는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옆 언덕길 비각 안에 있는데 고려 공민왕 때 국사를 지내고 1382년 창성사에서 입적한 화엄종 승려 진각국사 천희(1307-1382)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했다. 

광교산 창성사 폐사지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보호하고 있다. 비는 직사각형의 대석 위에 높이 150cm, 폭 85cm, 두께 13cm의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우진각 형태의 옥개석을 얹은 모양이며 장식이 없어 간략화 된 고려후기 비석의 소박함이 보인다. 비문은 이색(1328-1396)이 짓고, 승려인 혜잠이 글씨를 새겼는데 글씨는 구양순 서체에 바탕을 두고 있어 굳세고 투박한 멋이 있다.
보물 제 1709호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보물 제 1709호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두 번째는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 바로 옆에 있는 보물 제1709호 방화수류정이다. 수원화성 성곽 건축물로 공식 명칭은 동북각루 이지만 주변을 감시하는 군사 지휘소와 주변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어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닐다'는 뜻의 멋진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독특한 지붕의 형태는 수원화성 건축물 중에서도 독창적이고 조형미가 뛰어나 아름답다. 

방화수류정에 올라가면 사방이 탁 트여 광교산을 조망할 수 있고 바로 눈 아래 화홍문 7간 홍예의 멋스러움과 용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1797년 1월에 정조대왕은 수원화성을 순시하고 방화수류정에 이르러 활을 쏘아 무를 숭상하는 뜻을 보이고 멋진 시(詩) 한수를 지었다. '춘성을 두루 보고도 해가 아직 한창이라 소정의 풍경은 한결 더 맑고 아름답네. 난기가 계속 삼련의 적중함을 보고하니 수많은 버들 그늘 속에 살촉이 꽃 같구려.' 얼마나 멋스러운가.
보물 제 403호 수원화성 화서문, 보물 제 1710호 수원화성 서북공심돈

보물 제 403호 수원화성 화서문, 보물 제 1710호 수원화성 서북공심돈

세 번째는 보물 제403호 화서문과 보물 제1710호 서북공심돈이다. 수원화성 서쪽 대문인 화서문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반달모양의 옹성을 쌓고 한쪽을 열어놓아 통행할 수 있다. 적이 성문을 공격하더라도 화서문과 옹성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구조이다. 원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보물로 지정되었고 초대 화성유수였던 채제공이 쓴 화서문 글씨를 볼 수 있다.

1797년 1월 29일 수원화성을 순행하던 정조대왕은 서북공심돈에 이르러 "공심돈(空心墩)은 우리 동국(東國)의 성제(城制)에서는 처음 있는 것이다. 여러 신하들은 마음껏 구경하라" 하였다.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우리 건축물에 대한 정조대왕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은 사이좋은 형제처럼 서있어 언제 봐도 늠름하고 멋스럽다.
보물 제 402호 수원화성 팔달문

보물 제 402호 수원화성 팔달문

네 번째는 보물 제402호 팔달문이다. 수원화성의 북쪽 대문인 장안문과 형태와 구조가 유사하다. 높은 석축에 홍예문을 내고 그 위의 누각은 중층으로 하였다. 우진각 지붕에 용마루와 추녀마루에는 취두와 잡상이 있고 성문 밖으로는 벽돌로 반원형의 옹성을 쌓았고 정면에 홍예문을 설치했다. 홍예문 위에는 오성지라는 다섯 개의 구멍을 뚫었는데 적이 화공으로 공격할 시 물을 부어내릴 수 있도록 설치한 시설물이다.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에서 출발해 방화수류정, 용연을 한 바퀴 돌아 화홍문, 북동포루, 장안문, 북서포루, 북포루, 서북공심돈, 화서문을 보고 화성행궁을 거쳐 팔달문까지 모두 5개의 보물을 답사하면 수원의 보물 10개 중 반을 본 것이다. 수원여행에서 보물을 만나는 것은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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