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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숲속 나들이 어때요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이 잠든 융건릉 답사
2018-05-08 16:36:27최종 업데이트 : 2018-05-10 10:08:28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신록의 계절인 5월,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에 어디를 갈까. 가까운 곳으로 문화유산 답사를 가자.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이 잠들어있는 화산 숲으로 결정. 현재 수원시와 화성시로 갈라졌지만 두 도시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한 뿌리였다. 정조대왕과 관련된 유적이 수원시, 화성시, 오산시 등지에 흩어져 있지만 하나의 역사문화권으로 이해하고 답사를 해야 제대로 할 수 있다.

1795년 윤2월 9일부터 16일(양력 3월 29일 - 4월 5일)까지 정조대왕은 어머니 혜경궁홍씨를 모시고 성대한 수원행차에 나선다. 윤2월 12일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 사도세자가 잠들어있는 현륭원을 참배했고 다음날 봉수당에서 어머니 회갑잔치를 열었다. 아버지와 동갑인 어머니의 회갑잔치는 아버지를 위한 회갑잔치이기도 했으리라.
소나무가 울창한 화산 숲

소나무가 울창한 화산 숲

정조대왕은 1789년 아버지의 묘를 수원으로 천봉하고 1800년까지 13차례 현륭원을 방문했다. 정조대왕의 행차는 언제나 현륭원까지 이어졌다. 행차의 목적이 현륭원 참배에 있었기 때문이다. 1975년 정조대왕 능행차가 참배 목적이 아닌 수원화성문화제의 연시로 복원됐다. 초창기에는 정조대왕이 세자를 데리고 능행차를 하는 모습으로 복원됐다가 이후에 반차도를 바탕으로 수원행차를 재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복원된 정조대왕 능행차는 수원화성문화제 기간에만 화려한 퍼레이드로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그쳤다. 2016년 창덕궁에서 수원까지 능행차가 재현됐고 2017년에는 창덕궁에서 수원을 거쳐 융릉까지 전 구간에서 재현되기에 이르렀다. 1795년 능행차 재현에 한걸음 다가선 것이다.
화산 숲에 있는 융릉, 융릉은 추존 장조의황제(사도세자)와 헌경의황후(혜경궁홍씨)의 능이다.

화산 숲에 있는 융릉, 융릉은 추존 장조의황제(사도세자)와 헌경의황후(혜경궁홍씨)의 능이다.

수원의 관문인 지지대고개부터 융릉까지 정조대왕의 능행차 길에는 이정표로 표석과 장승을 세웠다. 세월이 지나면서 길이 없어지거나 바뀌어 과거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지지대고개부터 왕이 행차하던 길은 수원 8색길인 효행길로 재탄생했다. 효행길은 화성시와의 경계지역에서 끊겼다. 화성시의 정조대왕 능행차는 시 경계지역에서 출발해 융릉까지 이어진다. 행정의 단절이 역사적 문화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능행차 길을 따라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이 잠든 화산 숲에 가면 소나무, 참나무가 울창하다. 봄에는 진달래꽃이 붉게 펴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하고 신록이 우거진 5월의 화산 숲은 가족단위 나들이객들로 생기가 넘친다. 추모의 공간인 동시에 후대 사람들에게는 휴식과 힐링의 공간이 됐다. 울창한 숲속에서는 온갖 새들이 지저귄다. 
융릉 정자각에서 바라본 화산 숲

융릉 정자각에서 바라본 화산 숲

정조대왕은 수원화성을 축성하고 신료들과 화성 춘8경과 추8경을 정했는데 춘8경 첫 번째 공간적 배경이 화산이다. 봄 제1경 화산서애(花山瑞靄)는 화산의 상서로운 안개다. 화산은 원소(현륭원) 뒷산이다. 이후 수원8경에서는 화산두견(花山杜鵑)이라 했는데 화산 숲속 두견화 위에서 슬피 우는 두견새 소리다. 화산 숲속에 잠든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을 염두에 둔 것이다.

화산 숲속에 있는 융건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잘 정돈된 길을 따라 들어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 길이 사도세자가 잠든 융릉이다. 정겨운 숲길을 걷다보면 금천교가 보인다. 왕릉의 금천을 건너는 다리로서 속세와 성역의 경계 역할을 한다. 원대황교라 쓰여있는데 대황교를 철거할 때 석교 부재를 이용해 만든 것이다. 금천교를 건너면 왼쪽에 곤신지란 연못이 있다. 원형 연못은 용의 여의주를 상징하는 것으로 아버지를 연모했던 정조대왕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 홍살문을 지나면 그 뒤로 정자각과 왕릉이 보이며 오른쪽에 비각이 보인다.
정조대왕과 효의왕후가 잠든 건릉

정조대왕과 효의왕후가 잠든 건릉


건릉 비각, 표석 앞면에 '대한 정조선황제건릉 효의선황후부좌'라 전서로 써있다.

건릉 비각, 표석 앞면에 '대한 정조선황제건릉 효의선황후부좌'라 전서로 써있다.

왕릉은 출입금지 구역이다. 아래 있는 비각에는 큰 비석 두 개가 서있다. 하나는 현륭원비로 1789년 정조대왕이 글을 지었고 앞면 전서는 판동녕부사 윤동섬, 뒷면 음기는 봉조하 조돈이 쓴 것이다. 그 옆에는 사도세자가 장조로 추존되고 현륭원이 융릉으로 높여지면서 1900년 세운 융릉비로 고종의 친필이다. 두 비석 모두 앞면은 전서, 뒷면은 해서로 단정한 품격이 있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정조대왕이 잠든 건릉이 있다. 능 아래 비각에는 1900년 세운 건릉 비석만 있다. 융릉에는 두 개의 비석이 있는데 왜 이곳은 한 개만 있을까 궁금하다. 

융릉 가는 길에는 소나무가 많은데 건릉 가는 길에는 참나무가 많다. 숲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고즈넉한 답사여행이라 더욱 여유롭다. 수원 역사여행, 문화재 여행은 융건릉이 있는 화산 숲으로 가보자. 5월 13일은 건릉 제향일이다. 제향에 참여하는 것도 뜻깊은 일이다.

화산, 융건릉, 사도세자, 정조대왕, 세계유산,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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