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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오산' 본래 한뿌리…유적, 세도시에 흩어져
수원 정체성 이해 위해 독산성‧궐리사 답사 떠나
2018-06-26 15:57:19최종 업데이트 : 2018-06-27 14:45:24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현재는 수원시, 화성시, 오산시가 나뉘어졌지만 유사 이래 한 뿌리였다. 사도세자, 정조대왕과 관련된 유적이 처음에는 화성유수부 내에 있었지만 지금은 세 도시에 흩어져있다. 수원시에는 수원화성과 화성행궁, 향교 등 대부분의 유적이 남아있고 화성시에는 융건릉, 오산시에는 궐리사와 독산성이 있다. 행정구역은 나뉘어졌지만 문화적 뿌리는 하나인 것이다. 수원의 정체성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융건릉과 궐리사, 독산성 등 수원 주변 도시에 있는 유적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오산시에 있는 궐리사(闕里祠)는 1994년 경기도기념물 제147호로 지정됐다. 궐리사는 중종 때의 문인이며 공자의 64세손인 공서린(1483-1541)이 서재를 세워 후학을 가르쳤던 곳이다. 정조대왕이 이 장소에 사당을 짓도록 하고 정조 16년(1792년)에 궐리사란 현판을 내려주었다. 공자의 후손들이 조선으로 이주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던 이곳에 공자가 태어난 중국 산둥성 곡부현의 실제 지명을 붙인 것이다.
궐리사 입구, 홍살문과 하마비가 보인다

궐리사 입구, 홍살문과 하마비가 보인다


궐리사로 들어가면 왼쪽에 신령스런 은행나무가 있다

궐리사로 들어가면 왼쪽에 신령스런 은행나무가 있다

궐리사에는 공자의 생애를 그림과 글로 목판에 새긴 '궐리사 성적도'가 있다. 1904년에 중국 산둥성에서 성적도를 구해와 이를 목판으로 만든 것이다. 이 목판은 60장이며 피나무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유일의 성적도로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2호로 지정됐다.

궐리사 입구에는 홍살문과 하마비가 있고 궐리사란 현판이 붙어있는 솟을삼문은 외삼문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공서린이 심었다는 큰 은행나무가 신령스럽게 서있다. 이 은행나무는 공서린이 죽었을 때 고사됐다가 200여년이 지나 새싹이 나와 거목이 됐다고 한다. 성묘(聖廟)란 현판이 붙어있는 내삼문으로 들어가면 공자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있다. 성상전(聖像殿)이란 현판이 붙어있는 내삼문으로 들어가면 1993년 중국 산둥성 곡부현에서 기증한 '공자상'이 있다.
공자 영정이 모셔진 사당

공자 영정이 모셔진 사당


1993년 중국 산둥성 곡부현에서 기증한 '공자상'

1993년 중국 산둥성 곡부현에서 기증한 '공자상'

궐리사에서는 음력 2월 18일 공자가 돌아가신 날을 기해서 춘계 석전대제를 지내고 음력 8월 27일 공자가 탄생한 날 석전대제를 지낸다. 궐리사에서 지내는 석전대제는 현재 중국 곡부의 공묘에서 지내는 석전대제의 원형이다. 중국이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공묘에서 지내던 제례의식이 멸실돼 궐리사에서 석전대제를 배워간 것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이 공자의 고향인 중국에 모범이 된 것이다.
독산성 남문

독산성 남문


독산성 남쪽

독산성 남쪽

세마대가 있는 독산성

독산성(禿山城)은 백제가 축성한 고성으로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의 일화로 유명하다. 도원수 권율이 독산성에 들어갔는데 성안에 물이 적어 오래 지키기가 어려웠다. 적이 염탐해 이런 사실을 알고 성을 공격하려했다. 권율은 군사에게 적을 향해 말을 세우고 쌀을 흩날리게 부어 씻게 했다. 이를 본 왜적은 성안에 물이 많은 것으로 생각해 포위를 풀고 퇴각했다. 계략으로 적을 물리친 것이다. 훗날 이곳을 세마대라 하고 장대를 세웠다. 이런 사실은 1831년에 화성유수 박기수가 편찬한 '화성지'의 산성(山城) 조에 기록돼있다. 화성지에는 성첩석축이 309첩, 둘레가 1010보, 리(里)수는 5리라 기록했다. 1보는 117.23cm로 독산성 둘레는 약 1184m다. 독산성은 수원화성 둘레 5393m보다는 작은 성이다.
독산성 남쪽성

독산성 남쪽성


독산성 남쪽성벽

독산성 남쪽성벽

독산성은 성곽의 주요 시설인 치, 암문이 남아있다. 성벽은 남아있지만 성벽위의 성가퀴는 없는데 원래 없던 것인지 무너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산성의 특성상 여장이 있었을 것이다. 정문은 남쪽 문인 진남루인데 문루 6칸이 있었지만 소실됐고 북문, 서문, 동문이 남아있다. 

북문은 평거식 성문으로 천장석과 바닥에 성문을 고정시켰던 문확석이 각각 두 개씩 남아있다. 평거식 성문이란 양쪽 벽 위에 장대석이나 판석을 수평으로 걸쳐 통로를 만든 성문이다. 수원화성 홍예문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서문은 남문과 함께 독산성의 주 출입구 역할을 했고 1790년 정조대왕이 독산성에 행차했을 때 출입한 문이다. 순조 4년 현륭원의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폐쇄됐다 파손된 것을 복원했다. 
독산성 서문

독산성 서문


독산성 암문
독산성은 영조, 사도세자, 정조대왕이 다녀간 성이다. 정조대왕이 1792년 세마대를 중수했는데 일제가 파괴했고 이후 1957년 중건한 것이다. 독산성에서는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이 잠들어있는 화산이 눈앞에 보인다. 정조대왕도 세마대에 올라 화산을 바라보면서 아버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독산성 세마대
독산성에서 바라본 화산
독산성은 산성이라 산 위에 있지만 둘레가 짧고 사방 경관이 뛰어나 부담 없이 둘러볼 수 있다. 성벽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성곽의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조선후기에 쌓은 수원화성과 비교하면서 답사하면 유익할 것이다. 궐리사와 독산성을 돌아보는데 한나절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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