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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현판에도 정조대왕의 효심 가득
염상균의 수원이야기 49-화성행궁 각 현판에 담긴 뜻
2010-07-29 10:30:46최종 업데이트 : 2010-07-29 10:30:46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효도의 상징-신풍루

화성행궁 현판에도 정조대왕의 효심 가득 _1
화성행궁 전경-사진 조형기(화성연구회 이사)

 
화성행궁의 외삼문인 정문 위에 누각을 지어놓고 신풍루라 하였고, 신풍루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이 다리가 신풍교이다. 이 다리는 물론 개천을 건너기 위해 조성되었지만 다리를 건넌다는 상징성으로 인해 평범치 않은 공간으로의 진입을 예고하기도 한다. 신풍루와 신풍교의 '신풍'의 유래는 이렇다. 

한 고조 유방의 고향은 패주(沛州) 풍읍(豊邑), 즉'풍패豊沛'이다. 여기에서 군사를 일으켜 경포의 반란을 진압하고 항우도 무찌른 뒤 천하를 통일하고 천자로 즉위하였다. 
그 후 그는 이곳에 들러 주민을 위로하고 세금을 면제해 주거나 부역을 늦추어주기도 했다. 그래서 '풍패'라 함은 임금의 고향을 일컬으면서 은혜를 받은 선택된 땅이라는 의미도 함께 지닌다. 게다가 천하를 통일한 후 우울증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풍패'를 수도인 장안성에 그대로 옮겨 건설하고 고향 사람들도 이주시켰다. 이를 일컬어'신풍(新豊)'이라 하였다. 한나라 고사에 의해 옮겨온 고향, 새로 만든 옛 고향이라는 의미이다. 

정조는 즉위 13년(1789)에 이 문루를 처음 세우면서 진남루(鎭南樓)라고 불렀는데, 나중에 신풍루로 바꾼 다음 자신의 새 고향 수원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를 열었던 것이다.
신풍루 상량문 가운데 이런 구절이 보인다.

화성행궁 현판에도 정조대왕의 효심 가득 _2
신풍루-사진 조형기(화성연구회 이사)


 비록 지난날에는 이 땅이 남쪽을 눌러서[진남鎭南] 호위한다 하였지만
 대략 호수를 베고 눕는 형세를 본떴구나.
 돌아보니 우리 임금님 동방의 표준이 되는 효성은
 한고조가 패땅 생각하는 마음보다 간절하구나.
 드디어 누각의 이름을 고치라 명령하여
 현판의 이름을 신풍(新豊)이라 하였네.

그 어머니와 자신과 부인까지도 앞서 옮겨온 아버지 묘소를 쓴 수원에 묻혔으니, 옮겨온 고향이기도 하면서  새로 만든 옛 고향임에 틀림없다.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비는 집-봉수당

행궁의 정당인 봉수당(奉壽堂)은 이름 그대로 정조가 어머니에게 술잔을 올리고 오래 사시기를 비는 곳이고 봉수당과 붙은 장락당(長樂堂)은 신풍이 한나라의 고사에서 따왔던 것처럼 한(漢)나라의 궁실 이름을 빌어 왔다. 
장락당 앞의 경룡관(景龍館)은 당나라 태종의 궁궐 이름이고, 장락당 남쪽에 있는 복내당(福內堂)의 복내는 일으켜 얻는 것은 밖으로부터요, 복을 얻는 것은 안으로부터 라는 <한서(漢書)>에서 따왔다.

화성행궁 현판에도 정조대왕의 효심 가득 _3
봉수당-사진 조형기(화성연구회 이사)
 

낙남헌(洛南軒)은 봉수당 북쪽에 북향으로 지어진 집이다. 언뜻 보기에는 노래당과 같이 붙어서 한 건물로 보이지만 당호가 다르고 구분이 다르므로 분명 다른 건물이다. 노래당은 낙남헌 서남쪽으로 붙어서 동향을 하였으니 두 건물은 한 건물로 보인다. 
낙남(洛南)은 아마도 중국 낙양(洛陽)의 남쪽이라는 의미가 강할 것이다. 낙양은 동주(東周), 후한(後漢), 위(魏), 서진(西晉), 남북조의 북위(北魏), 당(唐) 등의 서울이었다. 
지금의 하남성 낙양현을 일컫고 낙수의 북쪽이다. 그렇다면 낙남은 서울의 남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수원을 화성유수부로 승격시키면서 서울(한성)의 남쪽을 보위하는 요충으로 만들고자 한 것이 당시의 생각이었으니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또, 같은 소리를 내는 낙남(落南)이란 뜻은, 서울 사람이 남쪽 지방으로 이사하여 내려간다는 의미이므로 이도 고려하여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화성행궁 현판에도 정조대왕의 효심 가득 _4
낙남헌-사진 조형기(화성연구회 이사)
  

노래자 같은 효자가 되자

노래당(老來堂)은 나이 먹어서 올 집이라는 뜻이 강하다. 하지만 정조가 직접 지은 시   <노래당에서 입으로 지어 부르다>를 보면, 

 노래당 속에 활짝 핀 좋은 얼굴
 동산과 정자의 이름 거듭 걸어 늙을 틈이 없네.
 평상시엔 감히 늙었단 말 하지 못하고
 가만히 노래자(老萊子)처럼 색동옷 입어보네.

정조가 노래자 같은 효자가 되고 싶어 지은 이름이라고 하겠다. 글자는 다르지만 소리는 같아서, 나이 먹어서 올 집이라는 뜻과 노래자처럼 효도하는 집이라는 의미가 함께 들었다. 
노래자는 중국 초(楚)나라의 현인인데, 나이 70세에 어린 아이처럼 재롱을 부리며 오색 무늬의 알록달록한 옷을 입어 부모의 마음을 즐겁게 하였다는 전설 같은 효자이다. 노래당 상량문 가운데 나오는 구절이다.

 임금님은 매번 오래 계실 것을 생각하여
 화려한 현판을 특별히 걸고 노래당이라 하셨네.
 임금님의 나이 아직 한창인 때에
 오히려 때마다 이곳에 오시려 하였고
 아주 늙어서 힘들고 조심할 즈음에는
 여기를 잊지 못하고 간절한 마음 더욱 절실하시겠지

득중정(得中亭)은 노래당과 거의 붙은 정자인데 정조는 이곳에서 활쏘기를 자주 하였다. 
득중이란,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꼭 알맞게 되는 중용을 일컫는다. 혹은 똑바로 맞는 적중의 의미와, 시험에 합격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어떤 의미가 되었건 좋은 이름이고, 더구나 득중정 앞에는 어사대가 놓여 활을 쏘는 무대가 마련되었으니 활쏘기에는 딱 맞는 정자가 된다. 

또한 행궁 후원의 아담하면서도 아름다운 육각정 미로한정(未老閑亭)은, 더 늙기 전에 와서 한가함을 만끽하는 정자이다. 그래서 미로한정에서 즐기는 국화 감상은 수원 가을 팔경의 하나로 들 만큼 정취 어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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