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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백성들에게 식은 죽을 먹이지 말라"
<염상균의 수원이야기 50>-8일 간의 행차
2010-08-09 14:34:25최종 업데이트 : 2010-08-09 14:34:2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어머니의 회갑연을 수원에서 열자

내 백성들에게 식은 죽을 먹이지 말라 _1
진찬연 재현-수원시 유명식 사진
 

화성 건설이 한창 진행될 때인 정조 19년(1795)년 윤 2월,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를 앞당겨 화성에서 열어준다. 사도세자와 부인인 혜경궁은 1735년 생 동갑내기인데, 사도세자의 생일이 1월 21일이고 혜경궁의 생일은 6월 18일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회갑 잔치라고 하지만 사실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구갑(舊甲)도 겸하였다고 하겠다. 윤 2월, 윤달을 고른 이유는 무슨 일을 해도 동티가 나지 않는다는 속설을 따르면서, 본격적인 농번기가 닥치기 전 잔치를 열고픈 마음, 그리고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것도 윤 5월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행연습-리허설도 연 잔치

정조와 어머니 혜경궁을 비롯한 대규모의 인원들은 윤 2월 초9일 창덕궁을 출발하여 한강을 건너 노량진 주변에서 점심을 먹고 지금의 금천구 시흥본동 시흥행궁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인 초10일에 의왕시 고천동사무소 자리인 사근내 행궁에서 점심을 들고 저녁에 화성에 도착하였다. 이를 위해 정조는 행차 전 창덕궁 후원에서 가마 타는 연습을 시킨다. 가마 타는데 익숙하지 않은 어머니를 위한 것이다. 또, 한강을 효과적으로 건너기 위해 배다리를 놓았는데, 이 배다리를 건너는 의식도 연습하였다.

화성에 도착한 다음날인 윤 2월 11일에는 수원 향교에 가서 대성전에 참배하였다. 나라의 이념인 유교에 충실하려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행궁의 낙남헌에서 과거를 거행하여 화성 및 인근 지역 선비들과 무사들을 등용하였다. 지역 주민을 특별 채용하기 위한 임금의 배려였다. 
문과에서 5명을, 무과에서는 56명을 합격시켰다. 이는 화성유수부를 군사의 거점으로 만들려는 의지와 무예를 좋아하던 아버지의 유지를 따르려는 계산이 복합된 결과였다. 

오후에는 회갑연의 예행연습도 가졌다. 숙련된 기생을 많이 동원하지 않아서 의녀(醫女)나 침선비(바느질하는 종) 등으로 잔치의 흥을 돋우어야 하는데, 그들의 재주가 불안하였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수행 인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려고 한 실학 정신의 소산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정조의 우려와는 달리 이들의 솜씨가 좋아서 상을 내린다. 비단 한 필씩을 선물로 주었는데 어머니가 직접 주도록 배려하였다. 어머니 잔치에 동원된 인력인 만큼 그 당사자가 베풀게 하여 사기를 북돋기 위함이었다.

전야제와 회갑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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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당 앞 야간 공연-수원시 유명식 사진


윤 2월 12일에는 어머니인 혜경궁을 모시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원인 현륭원을 참배한다. 혜경궁에게 이번 행차는 경사스러운 일정이니 몇 번이나 울지 말라고 다짐하였건만 어머니는 끝내 오열을 토한다. 정조 또한 어머니를 따라 울었는데 우울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날 오후에는 화성에서 대규모의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더구나 밤에는 마치 회갑연의 전야제라도 하는 듯이 야간 군사훈련도 거행한다. 울적한 심사를 억누르기 위해서 그랬는지 이 전야제는 자정이 넘어 끝났다고 한다.

윤 2월 13일 혜경궁의 내외 친척 80여명이 초청된 가운데 열린 회갑연에서 왕과 신하들은 음식과 술잔을 올리고 천세(千歲)를 불러 축하하였다. 
지금은 우리가 마음대로 만세를 부르지만 당시는 중국에 속한 제후국이어서 천세밖에 부르지 못한 것이다. 화성행궁 정당인 봉수당 뜰에 널빤지로 만든 특설무대에서는 음악이 연주되고 노래가 불러지는가 하면, 헌선도, 몽금척, 선유락, 처용무 등의 춤과 연회가 곁들여진 큰 잔치였다.

잔치 뒷풀이-식은 죽을 먹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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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루-수원시 이용창 사진


윤 2월 14일에는 화성부에 사는 사민(四民-鰥寡孤獨), 즉 홀아비와 홀어미, 고아와 독자(단독 세대주) 등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쌀을 나누어주었다. 또 사민에는 들지 않지만 굶주린 사람들(기민饑民)을 위해서도 쌀을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먼저 죽을 끓여 먹였다. 
주린 배로 쌀을 지고 가기 어려운 마음을 헤아린 것이다. 그리고 노인들을 초청하여 양로 잔치까지 열어준다. 

특히 쌀과 죽을 나누어준 곳은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앞인데, 정조는 신풍루에 올라 죽을 직접 먹어보기까지 한다. 가장 어려운 사람들한테 먹이는 죽을 가장 높은 사람이 먹어 본 것이다. 혹시 어려운 사람들한테 주는 것이라고 식은 죽을 주지나 않을까 걱정하였기 때문이다. 
이를 본 백성들과 수행원들은 감동할 수밖에 없었겠다. 아울러 정조는 한 술 더 떠서 아무리 늦게 오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식은 죽을 먹이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한다. 국왕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렇듯 따뜻했던 것이다. 

행사를 기록으로 남기자

내 백성들에게 식은 죽을 먹이지 말라 _4
봉수당진찬도(8폭 병풍 중)


윤 2월 15일에는 화성을 떠나 16일 궁궐에 도착하는 것으로 여드레 동안의 행차는 막을 내린다. 
여드레는 또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고통을 받은 8일과 같다. 이 일련의 행사와 그 내용을 기록한 책이 '원행을묘정리의궤'이다. 화성에서 벌어진 가장 큰 행사가 속속들이 담겨진 수원의 보물이다. 

또한 행차의 중요한 대목을 간추려 8폭 병풍으로도 제작하였다. 그러나 이 그림은 애석하게도 수원에 없다. 
2005년 4월 15일 보물 제 1430호로 지정되었는데 용산구 한남동의 리움미술관(소장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보관한다. 그래도 수원시내 곳곳에서는 이 그림의 복제판이 걸렸다. 시청에도, 박물관에도 화성행궁에 가서도 만나게 된다. 
염상균/(사)화성연구회 사무처장, 답사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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