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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성신사를 화성의 으뜸으로 삼자
염상균의 수원이야기 53
2010-11-12 11:34:54최종 업데이트 : 2010-11-12 11:34:54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되살아난 성신사를 화성의 으뜸으로 삼자 _1
성신사 전경
 

화성성역의 마지막 해인 정조 20년(1796), 임금은 새로운 지시를 내린다. 성의 신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사당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정조 20년 2월 초하루 화성유수이자 축성공사 총감독인 조심태에게 전령을 내린 것이 그것이다. 

"성제(城制)가 이미 정해지고 누로(樓櫓)와 치첩(雉堞)이 또한 모두 차례차례 진행되는 지금, 첫째의 할 일은 좋은 날을 점쳐서 먼저 성신묘(城神廟)를 세우는 것이다. 그런 후에 때에 맞추어 향을 내리고 제사를 지냄으로써 만세에 흔들리지 않는 터로 정하면 신이나 사람이 함께 화락하고, 나에게 수(壽)를 주며, 나에게 복(福)을 주어 화성이 명실상부할 것이다. 그리고 세세토록 이 땅을 살피시고 그들의 청대로 축원을 들어줄 것이며, 경은 이것을 알아서 터를 개척하여 공사를 경영하도록 하라."

이렇듯 국왕의 의지와 명령에 의하여 병진년(1796) 7월 11일에 성신사 지을 터를 닦고, 7월 22일에는 주춧돌을 놓았으며 7월 24일에 기둥을 세우고 상량을 한다. 또한 두 달여 뒤인 9월 19일에는 성신사의 위판을 만들어 봉안한다. 위패 봉안할 시간과 날짜는 일관에게 택일하게 하여 그대로 따른 것이다.

병진 9월 17일 임금은 전교를 내려,
"화성의 성역이 완성 되는대로 성신(城神)의 사당(祠堂)을 먼저 세워 설치하게 하였다. 이제 들으니 이것도 완공되었다 하니 행차(幸行)전에 길일을 택하여 위패(位牌)를 봉안하라. 제문은 마땅히 직접 지을 것이다. 헌관(獻官)은 본부 유수로 하고 향(香)과 축문(祝文)을 기일 전에 내려 보낼 것이니, 해당 방(房)과 해당 조(曹)에 자상히 알려 거행하게 하라."
고 한다. 임금이 직접 제문을 지은 것만 봐도 성신사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알게 된다.

성신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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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사 사당

 
이렇게 하여 완성된 성신사의 모습을 보자.
"팔달산 오른쪽 기슭의 병풍바위(屛巖)위에 유좌묘향(酉坐卯向)(서쪽에 앉아 동쪽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자리 잡았다. 병진년(1796) 봄에 특교로써 터를 잡고 택일하여 이 사당을 지었다. 정당(正堂)은 5량(五樑) 3가(三架)인데 벽돌을 쌓아 벽을 만들었다. 앞 기둥 안팎에도 네모난 벽돌을 깔았고, 당 아래에는 계단 셋을 놓았다. 전면에 3문을 세우고, 문의 좌우에는 5칸 행각을 붙였는데, 남쪽으로 2칸은 안쪽을 향하게 하여 재실 (1칸은 온돌, 1칸은 마루, 1칸은 공랑(空廊)을 삼았다. 뜰의 3면을 네모진 담으로 둘러쳤다. 단청은 3토를 사용하였고 들보 위는 회를 발랐다."
《화성성역의궤》에 들어있는 성신사(城神祠)의 모습이다. 2,279냥 6전 2푼이 들었다고 했으니 화성의 시설물 가운데 비교적 많은 비용이 든 셈이다. 

성신사의 터 닦는 까닭은 고하는 제문 가운데,
"엎드려 생각하건대 사물이 크게 되는 데에는 신의 힘이 없는 법이 없습니다. 큰 고을에 성을 쌓으니 이것이 모두 토지신의 덕택입니다. 나라의 울타리이고 아들들의 휘장이 됩니다. 처음 이곳에 성을 쌓을 때 신령의 힘을 구하여 서쪽 터에 집터를 잡고 엄숙한 모습으로 임금께서 오셨습니다. 임금께서 뜻을 일으켜 밝게 제사지내 흠향하시게 하였습니다. 우리를 오래 살게 해주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만억년의 기틀이 되게 하여 주시고, 비로소 깨끗하게 이르러서 길이 편안함을 주시옵소서. 삼가 희생과 단술로 몇 가지 음식을 진열하여 밝게 올리니 흠향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여 토지 신을 달래주었다.

현륭원 호위하고 서울 막아주고 복을 주는 성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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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성신 위패
 

성신사 상량문 가운데,
"문은 거북내와 마주하여 붉은 해가 목욕하고 귀신의 눈과 봉화 중 누가 번개와 비슷한가 평안함을 밤마다 별궁에 알리네."
라고 하여 화성의 안녕을 빌고 있다. 

또한 병진년 (1796)9월에 정조는 <성신사(城神祠)에서 봉안제(奉安際)를 지내는 축문(祝文)>을 지어 내려 보낸다. 그 가운데,
"만세토록 오랜 터를 여러 사람 마음을 합하여 만들었네. 성벽은 높디높고 성가퀴가 빙 둘러쳐졌네. 우리 현륭원 호위하고 우리 서울 막아준다. 해자 도랑 믿음직하여 신령의 마음 씻는 듯하다. 성주가 제사하니 많고 많은 영광이다. 천만억년 다하도록 우리강토 막아주소서 한나라의 풍패(豊沛)와 같은 우리고장을 바다처럼 편안하고 강물처럼 맑게 하소서. 나를 오래 살게 하고 나에게 복을 주며, 태평성대를 주옵소서."
화성의 신(神)에게 화성의 역할과 바램을 담아 축문(祝文)을 지었다.
《화성성역의궤》에는, 위의 축문을 비롯하여 봉안제 지내는 의식과 성신사에 봄가을로 지내는 제사의 축문까지 담았다.

되살아난 성신사를 화성의 으뜸으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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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행 감사 표석
 

화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낸 성신사(城神祠)는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었다고 전한다. 화성행궁에 병원과 경찰서를 세우는 등 수원의 구심점을 흐린 것과 같은 맥락이다. 화성의 신이 안주하며 화성과 백성, 임금을 보호하는 성신사를 작년에 복원하였다. 

(사)화성연구회에서 그 터를 찾아내고 복원하도록 건의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기업은행에서 큰 비용을 후원하고 수원시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이는 앞으로의 화성 미복원 시설을 하나하나 복원하는데 좋은 시금석이 될 것이다. 
비영리 민간단체의 건의를 자치단체에서 받아들이고 기업에서 후원한 것이니 가히 국가적인 모범사례가 아닌가. 

이제 수원화성에는 그 주인공인 성신이 안주할 곳이 멋지게 되살아났다. 
앞으로는 화성에 무슨 일이든 추진할 때 이곳 성신사에서 제향을 먼저 올려야 한다. 미복원 시설을 복원하거나 중건할 때와 낙성할 때 개별 시설에서도 고사를 지내야 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성신에게 고해야 하는 일이 우선 아닐까?
염상균/(사)화성연구회 이사, 답사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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