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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 옆 이아(貳衙) 복원후 팔달구청으로 쓰자
염상균의 수원이야기 54
2010-11-20 13:44:19최종 업데이트 : 2010-11-20 13:44:19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이아 자리를 찾아서

행궁 옆 이아(貳衙) 복원후 팔달구청으로 쓰자_1
화성행궁과 이아-화성전도의 일부(행궁 우측 하단이 '이아'다)


화성행궁을 정면에서 바라보자면 오른쪽에 신풍초등학교가 보이고 학교 담장이 끝나는 곳은 작은 네거리가 되어 선경도서관과 화서문으로 이어지는 서쪽 길, 장안문으로 가는 북쪽 길, 또 종로로 이어지는 동쪽 길과 행궁으로 이어지는 남쪽 길을 형성한다. 
이 네거리의 동쪽과 북쪽 길 주변은 화성유수부의 작은 관아였던 이아가 섰던 곳이다.

이아는 부아(府衙)라고도 하며 화성 유수를 보좌하여 유수부의 실무를 지휘, 관리하던 수원 판관(水原判官)이 머무는 관청 건물이다. 
1793년(정조 17) 1월 수원이 화성유수부로 승격될 당시 판관을 배치하였다. 그런데 이아 건물이 건립된 것은 같은 해 8월경이었다. 

기부금 받아 세운 수원 이아

행궁 옆 이아(貳衙) 복원후 팔달구청으로 쓰자_2
수원 이아
'정조실록' 권38, 17년 8월 18일 기사에,
"수원 유수 이명식(李命植)이, 이아(貳衙)를 지을 때 절충 장군 안처윤(安處潤) 등 여덟 사람이 재물을 희사하여 공사를 도운 내용을 치계하였다. 이에 그들에게 오위장(五衛將)과 변장(邊將) 등을 차등 있게 제수하라고 명하고, 승지 서매수(徐邁修)에게 이르기를,
"수원은 새로 창건하는 곳이라 자진해서 재물 바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 대해 차등을 두어 시상하지 않을 수 없으나, 그런 일이 만약 조금 지나치면 벼슬을 파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 무리들은 모두가 벼슬 얻기를 바라는 자들인 것이다. 근래 들으니 관서(關西)와 해서(海西) 지방에 이런 일이 더욱 심하여 가끔은 공천(公賤)으로서 오위장에 오른 사람도 있다고 하니, 관직 제도의 문란함이 극에 이르렀다. 주자(朱子)가 비록, 진정(賑政)을 도운 사람들에게 적공랑(迪功郞-지방의 말단 관리) 정도는 아낄 것이 아니라고 하였지만 그것은 기민 먹이는 일과 관계되는 것이므로 이 문제와는 다른 것이다."

이아를 건립할 때 여덟 사람에게서 기부금을 받았고, 그들에게 벼슬을 내리는데 차등을 두었다. 또한 기부금을 냈다고 하여 벼슬을 남발하면 매관매직이 된다는 점도 짚고 넘어갔다. 다만 중국 송나라 때를 예로 들며 미관말직 정도는 주자는 것이었다. 

이아는 요즘의 구청 건물?
 
이아는 판관이 근무하는 곳으로서 판관은 종5품의 관료로 지방 군현의 수령에 해당한다. 그래서 수원부 이아의 각 건물은 지방의 관아처럼 동헌 건물인 화청관(華請館)을 비롯하여 총 102칸이 넘는 대규모로 만들어졌다. 
'화성성역의궤' 화성전도에 화성 행궁의 오른쪽 아래에 위치한 대규모 건물군이 이아이다. 1872년 제작된 '수원부지도'에는 이아가 화성관이라고 표시되었다. 이아에 소속된 관속은 서리 20명, 청직 15명, 사령 18명, 관노 11명, 관비 12명 등 76명에 달하였다. 지금의 구청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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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이아 터 일부의 현재
 

수원부 이아 자리는 일제강점기 이후 법원과 검찰청 및 감옥으로 사용된다. 그러다가 수원지방법원과 수원지방검찰청이 지금의 선경도서관 자리로 이전하게 되고 또다시 법원과 검찰청은 동수원 개발과 함께 지금의 자리로 옮겨 앉는다. 그래서 그 자리를 선경그룹이 매입하여 도서관을 지었다. 그리고 법원과 검찰청은 또 광교신도시로 옮길 채비를 한다.

남한산성의 예를 보더라도, 행궁 옆의 이아(二衙)는 판관의 공식 집무실이었고, 제승헌(制勝軒)은 판관의 숙소라고 여겨지며, 연병관 옆의 작은 건물 두 채는 남녀로 구분된 형옥(刑獄)으로 추측된다. 서울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개성유수부, 서쪽에는 강화유수부, 동쪽에는 광주유수부, 마지막으로 남쪽에 화성유수부를 두어 수도권 방위체계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각 유수부마다 판관이 집무하는 이아를 경영한 것이다.

팔달구청 이전, 두 마리 토끼를 잡자

팔달구청은 지금 월드컵 경기장을 빌려 사용한다. 이의 독립적인 이전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팔달구청은 당연히 화성 안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의견부터 성 안으로 옮기면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의 경관을 해친다고 반대하기도 한다. 구청을 옮겨야 하는 당위성은 모두 공감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를 어디로 어떻게 옮길 것인가? 

성 안으로 옮기자면 행궁 근처가 적당할 터인데, 그러면 이아 자리가 가장 명분이 서는 자리이다. 그러나 자리가 좁아 다층 구조로 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아의 복원도 물 건너 간 셈이 되고 화성과 행궁의 경관도 당연히 해치게 된다. 어떻게 해야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것인가.

지상에는 이아를 제 모습대로 완벽하게 복원하여 구청의 집무실 일부로 사용하고 지하에 나머지 사무실을 두어 경영하면 어떨까? 더 깊은 지하에는 주차장을 건설하고 각 사무실에는 햇볕이 최대한 들어오도록 설계하여 지으면 어떨까?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정조 시대 이아를 건립하면서 기부금을 받은 것처럼 이아의 본 모습을 복원할 때도 시민 성금을 받으면 어떨까?

지상엔 옛 이아 복원, 지하는 구청

이는 문화재 복원의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지상에는 옛 건물을 세우고 지하는 실용적인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문화유산은 박제된 동물로 후세에 남겨지는 것보다 활용하는 공간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더구나 이아는 완전히 없어져서 새로 지어야 하는 문화유산이다. 옛 방식의 건물과 현대적인 건축물이 실용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옛 용도대로 쓰인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는 아마도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떨칠 계획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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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 법원 검찰청 옛터 표석
 

그러나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은 이아 터의 발굴 작업이다. 
여러 시대에 걸쳐 건축물을 지었던 곳이라서 그 유구가 남았는지는 의심스럽지만 그래도 발굴을 우선해야 한다. 그리고 그림과 지도에 나오는 대로 이아를 완벽하게 복원하기 위해 설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지하 공간을 어떻게 지어 효과적으로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백여 년 전의 조상들이 훌륭한 문화유산을 만들어 오늘날 세계인이 찾아오는 화성이 되었듯이 우리도 후세에 남길 멋진 작품을 되살리고 활용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수원은 화성의 축성부터 실사구시를 표방한 실학의 도시가 아니었던가?
염상균/(사)화성연구회 이사, 문화유산 답사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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