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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이 성벽 아래까지? 그들은 이미 죽은 목숨
염상균의 수원이야기 61-현안(懸眼)
2011-01-27 13:13:16최종 업데이트 : 2011-01-27 13:13:16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현안(懸眼)도 만들어보자

적군이 성벽 아래까지? 그들은 이미 죽은 목숨 _1
서북공심돈과 화서문 옹성의 현안


현안은 '성 위에서 성 바깥 바로 밑까지 길게 내리 뚫은 구멍'을 말한다. 총혈 혹은 누혈(漏穴)이라고도 하는데, 성 밑을 살피거나 성에 접근하는 적을 겨냥하여 낸 구멍이다. 현(懸) 자가 매달다, 걸다, 매달리다, 늘어지다 등의 뜻이므로 '길게 늘어진 총구멍'을 뜻한다고 할까.

성벽의 바로 밑은 적군들이 기어 들어와 숨으면 잘 보이지 않게 된다. 그래서 곳곳에 치성을 쌓거나 자연히 굴곡을 이룬 곳을 활용하여 성 위에서 성벽 아래를 감시하게 된다. 
그런데 치성처럼 돌출 된 곳은 그 자신의 아래를 잘 살필 수가 없게 된다. 여기에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고안해 낸 방법이 현안의 제도이다. 치성이나 적대, 옹성, 봉돈, 공심돈 등 돌출 된 성의 시설물에는 모두 현안을 만들게 되었다. 이 또한 중국에서 온 제도라서 벽돌만을 가지고 만들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계축년(1793) 12월 8일 화성의 축성 계획을 말하는 자리에서 정조는,
"현안(懸眼)의 제도에 대해서 혹자는 벽돌로 축조한 성이 아니면 설치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이는 그렇지 않다. 벽돌로 된 성에 이미 현안을 설치하였다면 돌로 쌓은 성이라 하여 어찌 그곳에만 현안을 설치할 수 없겠는가."
라고 단호하게 돌을 가지고라도 현안을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다. 성의 기능상 꼭 필요한 시설은 반드시 만들고야 말겠다는 고집이었다.

시각적으로도 더욱 돋보이는 현안

적군이 성벽 아래까지? 그들은 이미 죽은 목숨 _2
장안문 옹성의 현안
 

여기저기 필요한 곳에 현안을 길게 내니 성은 훨씬 더 단단해 보인다. 성의 위쪽은 깊숙이 파내고 아래쪽은 얕게 파내서 대각선처럼 만들었는데 위쪽을 깊이 파낸 것은 여장의 폭이 넓은 까닭이다. 즉 여장(성가퀴)의 안쪽에서 성 밖의 밑을 비껴보고 총을 쏘거나 활을 쏘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니까 기능적으로 방어력과 공격력이 충족된다. 

그런데 또 하나의 부수적인 효과는 성 밖에서 보아야 느낀다. 현안의 깊이 때문에 현안은 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모습을 띤다. 이는 같은 조건일 때 성이 한결 더 튼튼해 보이는 역할을 하게 해준다. 적들은 또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생각하여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칠 궁리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 

현안의 개수를 눈여겨보니 

그림자의 효과를 십분 발휘하는 현안들은 시설물에 따라서 그 숫자가 각기 다르다. 장안문의 북동적대와 북서적대에는 각기 3개 씩, 팔달문의 두 적대에는 2개 씩 만들어서 장안문의 위상이 팔달문보다 높다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낸다. 또한 장안문 적대들은 양수인 홀수로, 팔달문은 음수인 짝수로 조성한 것도 두 문의 치수에서 드러나듯 음양의 조화를 꾀한 것이라고 하겠다. 

적군이 성벽 아래까지? 그들은 이미 죽은 목숨 _3
장안문 적대의 현안


그런가 하면, 봉돈의 외벽에도 2개, 서북각루에도 2개, 동북노대에도 2개씩의 현안을 설치하였고, 공심돈의 경우엔 서북공심돈과 남공심돈에만 설치하였는데 3면에 각기 2개씩의 현안을 만들었다. 성안에 설치해서 현안이 필요 없는 동북공심돈의 경우에는 하나도 만들지 않았다. 

또 치성마다 1개씩의 현안을 두었는데 대포를 쏘는 포루(砲樓)의 경우에는 설치하지 않았고 다른 치성보다 더 넓은 동1치의 경우에는 이례적으로 2개의 현안을 만들었다.

현안은 물이나 기름을 끓여 붓는 구멍이다?

현안을 두고 잘못된 얘기들이 전해 온다. 현안은 적군이 성으로 기어 올라오지 못하게 끓는 물이나 기름을 끓여 붓는 구멍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축성의 전말을 자세히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에 물이나 기름을 끓이는 솥과 같은 장치가 담겼어야 한다. 그러나 눈을 씻고 찾아봐도 현안 주변에 그런 시설을 설치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물과 기름 등을 끓여 붓는 시설로 알려진 것일까? 

또, 전시에 끓는 물과 기름을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거니와 그것들을 현안으로 흘려보낸다고 해서 방어력이 더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름을 부었을 때 적들이 불화살이라도 한 방 날린다면 성은 더욱 위험해지는 꼴이 되므로 가당치 않은 말들이다.

제대로 알려야 할 현안

아마도 현안의 쓰임새가 잘못 알려진 데에는 '삼국지'나 '수호지' 같은 중국의 책에서 전쟁하는 장면을 읽은 독자들이 '수원화성'에서 그 비슷한 시설을 찾아내 지어낸 '소설'이리라.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이처럼 잘못된 정보가 인터넷 지식검색에도 그대로 게재되었다. 
심지어는 경기문화재단이 2007년 발간한 '화성성역의궤 건축용어집'에, '성 밑을 살피거나 성벽에 가까이 다가선 적에게 뜨거운 물이나 기름을 부어 공격하도록 고안된 시설'이라고 명시하였다. 

적군이 성벽 아래까지? 그들은 이미 죽은 목숨 _4
치성의 현안
 

화성을 건설한 사람들을 얕잡아 봐서는 안 된다. 그들은 적어도 당대 최고의 학식과 경험을 갖추었을 뿐더러, 우리나라의 성곽과 중국 및 일본의 성제를 모두 비교하고 검토해서 장점만을 취해 화성을 건설하였다. 이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현안도설'만 보아도 쉽게 알게 된다.

'현안이란 적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성에 부속된 장치이다. 그 제도는 타안(垜眼)이 시초이지만 그 쓰임새는 긴요하다. 적병이 성벽 아래에 이르면 빠짐없이 단번에 발견할 뿐만 아니라 화살이나 돌, 총 등을 모두 이용하여 공격하므로 참 좋은 방법이다.'

현안은 성가퀴(여장)에 설치한 총안(銃眼-총구멍-타안이라고도 한다)을 더욱 발전시킨 결과이다. 정조의 말처럼 '고금의 아름다운 제도를 이 성에 모두 갖추게' 하여 시설한 현안이지만 오늘의 우리는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르고 아직도 '소설'에 머무르는 것은 아닐지 실로 개탄스럽다.    
염상균/문화유산 답사 전문가, (사)화성연구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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