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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유적지 답사】 일제 강점기 역사 되짚어
3.1운동, 식민통치에 항거한 비폭력 저항운동…절규하는 ‘대한독립만세’ 외침 느껴져
2019-03-08 10:24:11최종 업데이트 : 2019-03-11 13:40:07 작성자 : 시민기자   박순옥
수원문화원에서는 매주 목요일 문화역사 유적지 답사를 하고 있다. 수원시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번에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수원의 독립운동 유적지 답사를 추가로 기획했다. 6일 미세먼지가 며칠째 기승인 쌀쌀한 아침, 화홍문 앞에서 수원문화원 염상덕 원장의 '수원의 독립운동 역사를 시민에게 알리는 기회에 함께 참여하게 되어 기쁘다'라는 인사말이 있었다. 미세먼지가 심했기에 문화원에서는 미세먼지 마스크를 참가자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

화홍문에서 방화수류정 밑에 있는 용연으로 이동해서 정조대왕이 수원에 화성을 축성한 이야기와 애민사상에 대해 이야기하며 수원지역의 3·1운동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수원지역의 3.1운동은 3월1일 방화수류정의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4월 중순 까지 지속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수원시에서는 지난 3·1절에 100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서 만세삼창을 했습니다."
자세한 해설을 들으니 역사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간다. 많은 것을 이야기 해주고자 노력했던 마음이 감사하다.

화홍문에서 수원천을 따라 매향교 쪽으로 걷다보면 왼쪽에 삼일중학교가 있다. 삼일중학교 교정 안에 빨간 벽돌 건물하나가 눈에 띈다. 지금은 학생들의 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아담스 기념관이다. 수원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필동 임면수 선생이 아담스 기념관 건축을 감독했다고 한다. 지역유지였던 그는 여성교육을 위해 집터와 토지, 과수원을 현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 부지로 기부하고 삼일남학교 설립에 기여했다. 1909년 삼일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수원지역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으며, 기호흥학회 수원지부의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필동 임면수 선생, 양성중학교 설립해 독립군 양성
일제에 조선이 강점되자 만주로 망명하여 양성중학교를 설립하고 독립군 양성에 기여했다. 양성중학교는 후에 신흥무관학교가 된다. 그는 만주에서 3·1운동 후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고 풀려나 고향 수원으로 돌아왔다. 아직 겨울이라 새싹이 나지 않은 회색의 올림픽공원 한편에 필동 임면수 선생 동상이 있다. 임면수 선생 동상은 2015년 8월 15일 수원 시민들이 모금을 통해 세운 것이다. 눈에 보이는 증거나 표식이 있어야 먼 훗날 말로 이어지지 못한 역사가 기억 될 것이라며 해설사는 기록의 중요함을 강조 하였다.
아담스 기념관 전경

아담스 기념관 전경

김향화 등 기생 30여명,  '대한독립만세' 외쳐
일제에 의해 기생은 왜곡 되어 창녀라는 이미지가 씌어졌으나 조선시대에는 관기만 있었다. 관기는 평소에는 허드렛일과 악기, 음악, 궁중무용, 노래 등의 기예를 익혔다가 국가에 행사가 있을 때 불려나가 기예를 뽐내던 이들이었다. 조선후기 양반 사회가 무너지면서 관기들은 대책 없이 해고 되고, 사회로 내몰려 호구지책으로의 경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식민지배의 통제아래 감독과 관리를 받으며 상업적 기생으로 전락했다.

1910년 '수원예기조합'이 설립되었고 1919년 3월 29일 자혜의원으로 일제에 의한 강제 건강검진을 갔던 김향화와 30여명의 기생들은 자혜의원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당시 자혜의원은 화성행궁 안에 있었고 그 앞쪽에는 수원경찰서가 있었는데 그 곳에서 만세를 부른 것이다. 지금의 화성행궁입구이다. 김향화는 만세 후 바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6개월의 징역을 살았다. 최근 개봉한 영화 '항거'에 등장하는 기생이 수원출신 기생 김향화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역사를 알아야 유적과 유물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일제 강점기 만세운동을 했던 기생들의 움직임이 영화처럼 머릿속에 그려진다. 일제의 탄압에 가슴 터지듯 답답했을 백성들이 3월1일 힘주어 외쳤을 '대한독립만세'가 피 터지는 외침이었음이 느껴진다.

바로 옆 수원 평화비 쪽으로 갔다. 그곳에 위안부 소녀상이 있었다. 소녀상은 예쁜 한복을 입고 귀마개를 하고 있다. 이 소녀상은 수원 '일본군위안부(공식명칭)' 피해자인 안점순 할머니를 보듬고 역사의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 시민단체들이 주축이 되어 세워졌다. 이곳에서는 매달 첫 번째 수요일 문화제를 한다.
수원 평화비 앞에서 해설하는 이동근 학예사

수원 평화비 앞에서 해설하는 이동근 학예사

발안 장터 1000여명 시위군중 태극기 흔들며 만세 불러
'일본군위안부'란 일본 제국주의가 1930년대 초부터 일본군 부대 전체에 군위안소를 세우고 식민지와 점령지에서 강제 모집, 납치, 사기 등의 방법으로 젊은 여성들을 끌고 가서 군인들에게 성노예 생활을 강제했던 일이다. 그들 중 조선의 미혼 여성이 가장 많았다. 아픈 역사라 들으면 감정이 좋지 않지만 상대국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역사 인식을 분명히 해서 평화롭게 발전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역사를 보고 배우며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3·1운동의 영향으로 탄운 이정근이 향남면 발안에서 만세운동을 사전에 모의하였다. 3월 31일 발안 장터에 1000여 명의 시위군중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일제의 총탄에 시위 군중들이 쓰러지고 이정근은 일제 수비대장의 칼에 찔려 숨을 거두었다. 대로변에 있는 선생의 유적지는 깨끗이 단장이 되어있었다.

3·1운동 순국기념관으로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갑자기 집중이 되었다. 이정표에는 발안 만세 시장이 있고, 태극기는 도로 양옆 가로등에 꽂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3·1운동과 역사이야기를 듣고 와서 그런지 태극기가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이곳은 3·1운동과 태극기로 하나가 된 것 같은 모습이다.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주차장에 내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니 커다란 봉분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는 제암리 학살 사건으로 숨을 거둔 시신 23구가 안장되어있다. 수원문화원장인 염상덕 원장님이 대표로 헌화하고 묵념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암리 희생자들의 묘에 헌화하는 염상덕 수원문화원장과 학예사

제암리 희생자들의 묘에 헌화하는 염상덕 수원문화원장과 학예사

제암리 학살사건, 성인남자 교회에 가두고 불질러
제암리 학살 사건은 수원군에서의 3.1운동이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발생하여 면사무소와 주재소를 파괴하면서 공격적인 양상을 보이고, 일본 순사들이 시위 군중들에게 처단되자 일제의 엄청난 보복으로 자행 되었다. 3.1운동 주동자 체포와 수색을 빙자하여 제암리에서 4월 15일 마을에 있는 성인 남자들을 교회에 모아 넣고 가두고 밖에서 총을 쏴서 학살했다. 이날 모인 사람이 23명이며 학살을 숨기기 위해 교회에 불을 놓아 시신을 유기했다. 유해는 1980년대 증언과 기록을 토대로 발굴하여 모아진 것으로 합장묘를 만들었다.

순국기념관에서는 화성시 문화해설사 홍은진님의 설명이 있었다. 제암교회터에서 발굴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그 당시 독립운동상황을 날짜별로 설명을 해 놓았다. 아이들과 함께 독립운동의 역사에 대해 느끼기에 좋을 장소이다.

미세먼지로 불편한 생활이 이어지지만 역사를 알고자 한 참가자들과 기획을 한 수원문화원이 시민들과 함께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지점이 하나 더 생긴 시간이었다. 수원의 독립운동사를 알게 되니 고장에 대한 애정이 더 풍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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