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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유래와 역사
2008-01-03 15:40:20최종 업데이트 : 2008-01-03 15:40:20 작성자 :   

 

수원시 유래와 역사_1
수원시 유래와 역사_1
수원 지역에서는 수십만 년 전인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정착하여 살아왔다. 수원의 파장동과 옛 수원 지역인 대야미동에서 구석기 유물인 곧은날 긁개와 주먹 도끼 등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수원 지역에서 구석기(8,000년 전) 인류가 존재했다는 것이 확인된다. 또한 수원 지역에 다수의 고인돌이 존재하고 수원시 서둔동 여기산에 집자리 유적까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3,000 - 5,000년전)에서 초기 철기시대(2,000 -3,000년전)에 사람들이 집단을 형성하여 거주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마한 54개국 중에서 현재 수원 지역에 위치했던 것으로 비정된 나라는 원양국(爰襄國)·모수국(牟水國)·상외국(桑外國) 세 나라이다. 모수국은 구읍치 시대의 수원 지역으로 비정할 수 있으며, 특히 모수국은 광개토호태왕비문(廣開土好太王碑文)의 백제 정벌 58성에 나오는 모수성(牟水城)으로 추정된다.
삼국 시대에 수원 지역을 최초로 차지하였던 국가는 백제였다. 백제는 3세기 중엽 고이왕(古爾王) 대에 이르러 급격히 발전하여 고대 국가 체제를 완성하였으며 지금의 경기도 지역 대부분이 당시에 백제의 영토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고구려의 남하 정책을 통하여 수원은 백제로부터 고구려의 영토에 편입되어 그 관할 하에 들어갔다. 고구려는 압록강 유역에서 건국하여 4세기 중엽에서 6세기 초에 걸치는 시기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 때 고구려는 한강 유역과 그 주변인 수원 지역을 확보하여 고구려의 영토에 포함시켰다. 그리고 각 지역의 이름을 고구려식으로 바꾸었는데, 이 때 수원 지역의 이름은 '매홀(買忽)'이라고 하였다. 이는 '물골'을 뜻한다.

이후 수원지역은 백제·신라 가 번갈아 점령하였고 신라가 통일한 후 한주에 속했다. 757년(경덕왕 16)에 전국의 지명을 한문식으로 바꿀 때 수원 지역은 '수성군(水城郡)'으로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수주(水州)라 하였고 고려 1271년(원종 12)에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가 되어 수원이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하였다. 이후 수원부→수원군→수원부 등으로 변화를 거듭하다가 조선조에 와서 수원도호부→수원군→수원부→화성유수부→수원군→ 등으로 바뀌면서 1949년에 수원시로 정착하게 되었다.  

구 . 신석기 시대 5,000 - 8,000년전 파장동 유물      
고조선 - 청동기문명시대 2,000 - 5,000년전 고인돌 무덤
마한 ( 모수국) - 철기문화 발전 2,000년전 여기산 선사유적지
백제 1,600 - 2,000년전 오목천동 고금산 고분
고구려(장수왕) 475년 매홀
신라(경덕왕) 757년 수성군
고려(태조, 원종, 공민왕) 918년 수주,수원도호부,수원부
조선(태종) 1413년 수원도호부
조선(정조 17) 1793년 화성유수부 승격
한말(고종 32) 1895년 수원군
일제 1914년 3. 01 수원군(남양군 . 의왕시 흡수)
대한민국 1949년 8. 15 수원시 승격
  1967년 6. 23 경기도청 수원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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