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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 에서 비롯된 이름
"곶(串)이 곶[花]으로" , "곶(串) > 곶의 화(花)가 다시 화(華)로"
2008-01-04 15:45:27최종 업데이트 : 2008-01-04 15:45:27 작성자 :   e수원뉴스

"곶(串)이 곶[花]으로"
화량포는 일찍이 중국 대륙 문화의 유입 통로로서 신라 진흥왕 때(564)에 화량진(花梁鎭)을 개설하였다. 
또한 이 곳은 인천이 개항하기 이전까지는 중국 남경(南京)으로 가는 길목으로 흔히'남경두목쟁이'[南京渡項]라 일컬었으며 이 곳에 성을 쌓아 당항성(唐項城)이라 했으니, 이는 당나라로 가는 길목이라는 뜻이다. 

이런 전략적인 요충지의 이름을 왜 화량(花梁)이라 붙였을까? 화량은 꽃피는 포구란 뜻은 아니다. 바다로 삐쭉히 내민 곶(cape)에 형성된 마을, 곧'고지돌' 혹은'곶돌'을 차자표기한 것이다. 현용어 꽃[花]은 예전에'곶'이라 했고 이는'串'의 곶과 그 음이 유사하다. 고지>곶을 곶(串)이나 갑(岬)으로 차훈하지 않고 꽃을 뜻하는 화(花)로 대신한 것은 지명 표기에서 이왕이면 좋은 뜻의 한자로 적으려는 지역민의 바람이 작용한 탓이다.

한편 화량(花梁)의 양(梁)은 지명 표기에'돌'또는'들'로 읽히는 차자이다. 노량진(鷺梁津)이 노들나루로, 명량(嗚梁)이 울돌로 읽히는 것처럼, 돌(들)은 강이나 해변가의 취락지에 붙는 지명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남양에는 거지동(居芝洞)이란 마을이 있다. 거지(居芝)가 고대의 고차(古次), 홀차(忽次)와 같은'고지'의 차음 표기이다. 옛날 화량진(花梁鎭)은 지금의 남양면 지화리(芝花里)인데 이는 거지동(居芝洞)의 지(芝)와 화량동(花梁洞)의 화(花)를 따온 것으로 거지(居芝)나 화(花)는 공히'고지'의 표기이다. 이와 관련하여 수원과 화성에는 유독'화(花)'자 지명이 눈에 많이 띄는 게 결코 예사롭지 않다. 이 지역에 꽃이 많아서가 아니라 해변으로 뻗은 곶(串)이 많아서 붙어진 이름일 것이다.

                             매화리(梅花里 : 남양면) 수화리(水花里 : 남양면)
                             지화리(芝花里 : 송산면) 국화리(菊花里 : 양감면)
                             화수리(花樹里 : 우정면) 화산리(花山里 : 우정면)
                             고지리(古支里 : 정남면) 이화리(梨花里 : 우정면)
                             화당리(花塘里 : 팔탄면) 동화천(桐花川 : 봉담면)
 
남양면의 면 소재지인 매화리(梅花里)의 매화(梅花)는 수원 지명의 어원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 매(梅)가 매홀(買忽)의 매(買)와 통하는 물>미를 뜻하고, 화(花)는 고지>곶(串)을 뜻하기 때문인데 이런 점에서는 수화리(水花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우정면의 화산리(花山里)와 융건릉이 위치한 화산(花山)이란 지명이다. 흔히'꽃뫼'라
일컫는 화산(花山)의 화(花)에서 이와 통하는 화(華)로 옮겨가지 않았나 하는 의심에서다. 

"곶(串) > 곶의 화(花)가 다시 화(華)로"
화(華)는 화(花)와 통하는 한자이다. 자전에 의하면'꽃필·화[開花]', 또는 중화(中華)와 같이 땅 이름이나 나라 이름으로 쓰인다고 적고 있다. 본래 고지[串]에 솟은 산, 즉 곶뫼[串山]를 뜻이 좋은 화산(花山)으로 적다 보니 훗날 사람들은'꽃뫼'로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 꽃뫼, 곧 화산에서 화성(華城)이라는 지명이 생겨나게 된다.

이러한 사정은 정조가 화성(華城)이라는 지명을 풀이한 대목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이 된다. 1793년(정조 17) 1월 12일 팔달산에 올랐던 정조는 팔달산 아래 신도시를 화성(華城)이라 명명(命名)하였다. 이때 정조는 수원부를 화성유수부(華城留守府)로 격상시켜 서울을 개성(開城), 광주(廣州), 강화(江華), 화성(華城)의 4 유수부가 동서남북으로 감싸는 체제를 완성시켰으며 화성유수부에 장차 성곽 축성을 의도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794년(정조 18) 1월 15일부터 화성(華城)이라 불리는 성곽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 화성(華城) 축성 바로 전날인 1월 14일 정조는 연석(筵席)에서 화성(華城)이라 이름지은 내력을 밝혔는데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화성(華城)에서의'화(華)'자는 중국 요(堯) 임금 때 화(華) 땅의 봉인(封人)이 장수(長壽), 부귀(富貴), 다남자(多男子) 등 세 가지를 가지고 요 임금에게 축원(祝願)하였다는 고사를 취한 것이다. 그리고 사도 세자의 묘소인 현륭원(顯隆園)이 자리한 화산(花山)의'화(花)'자를
딴 것이기도 하다. 곧 화(花)는 화(華)와 통하니 화성(華城)은 곧 화산(花山)이라는 뜻이 된다.

이처럼'수원'의 지명 유래에는'물'과'곶'이라는 지형 상의 특성이 그대로 반영되고, 여기서 비롯된 수(水)와 화(花) 또는 화(華)가 어우러지면서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리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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