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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이름 변천사
2008-01-04 16:05:58최종 업데이트 : 2008-01-04 16:05:58 작성자 :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그들이 살고 있는 땅 이름은 변하기 마련이다. 지명은 단순히 지표상의 한 지역을 다른 곳과 구분짓기 위해 붙인 이름만은 아니다. 그 이름 속에는 그것을 지어붙인 당시의 언어는 물론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의 생각과 정서까지 담고 있다는데 우리의 주목에 값한다. 지명의 형성은 그 곳 주민의 정신 세계의 표출이며 지명의 변천은 그 지역 역사의 한 줄기이다.

아득한 옛날 부족 국가 시절, 마한(馬韓)에'모수국(牟水國)'이란 마을이 있었다고 중국측 사서는 적고 있다. 이 모수국(牟水國)이 지금의 어디인지는 정확히 비정할 수 없으나, 삼국 시대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있던 5세기 말엽에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던 때까지 불렀다는 '매홀(買忽)'과 대체로 동일한 지명일 거라고 추정한다.

중국측 기록인 모수(牟水)와 우리측 기록인 매홀(買忽)은 당시 어떻게 불렸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다만 이 땅 이름은 비록 한자로 적었으나 우리 고유어임이 분명하고, 또'모(牟)'나 '매(買)'는 발음상 물[水]과 관련된 어사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우리말을 적을 수 있는 고유 문자가 없던 시절, 한자의 음과 뜻[訓]을 빌어 고유 명사를 표기한, 소위 말하는 차자표기법(借字表記法)의 난해성이 고유어에의 접근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모수(牟水) 혹은 매홀(買忽)로 기록된 고유 지명은 신라의 삼국 통일과 함께 큰 변화를 겪는다. 순수 고유어로 불리던 삼국의 땅 이름이 2자(字)로 된 한자어 지명으로 바뀌는 지명 개혁을 맞이한 것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757년(경덕왕 16)에 이르러 매홀(買忽)은 지명의 본뜻을 살린 한자어'수성(水城)'으로 개칭된 것이다. 물론 지명의 보수성으로 인하여 원주민 사이에는 이후 오랫동안 매홀(買忽)이란 고유명이 쓰였겠지만 수성(水城)에서 비롯된'수주(水州)','수원(水原)'등의'수(水)'자계 행정 지명이 점차 이 지역 사람들의 뇌리에 자리
잡게 되었다.

한자어 지명 수성(水城)은 고려 건국 초(940년 : 태조 23) 중국식을 모방하여 수주(水州)로 개칭한 것을 필두로'수주목(水州牧)'을 거쳐 지금처럼 수원(水原)이란 이름이 등장한 시기는 1310년(충선왕 2)에 이르러'수원부(水原府)'가 설치되면서부터이다. 이 이후의 변천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열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군(郡)·성(城)·주(州)·부(府)·도호부(都護府)·목(牧)·읍(邑)·시(市) 등은 행정 개편이 있을 때마다 승격과 강등을 반복한 행정명의 변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후 수(水) 또는 수원(水原)과는 별도로 또 하나의 이름인'화성(華城)'이 탄생한다. 주지하는 대로 이 한자 지명은 1783년 정조 대왕이 아버지 사도 세자의 능침(陵寢)을 이 곳으로 옮기고 새로운 도시 건설을 위해 화성을 쌓음으로서 비롯된 이름이다.

지금은 수원시(水原市)와 화성군(華城郡)이 행정 구역상 따로 존재하지만, 기원적으로 이 두 이름은 결코 분리하여 생각할 수는 없다. 지금부터 200년 전 정조 대왕은 수원부의 호칭을 화성으로 바꾸고, 그 이름을 친히 현판에 써서 장남헌(壯南軒)에 걸었다고 하는데, 정조는 무엇을 근거로'화(華)'자를 이 땅의 이름으로 택했을까? 수원의 지명 유래를 얘기하자면 수원(水原)과 화성(華城)을 동시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으며 나아가 그 중에서도'수(水)'와'화(華)'의 탐구가 그 핵심적인 내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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