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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율전동에 들어설 계획이었다
염상균의 수원이야기 34
2010-04-08 16:29:43최종 업데이트 : 2010-04-08 16:29:43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삼성전자는 율전동에 들어설 계획이었다  _1
삼성전자(주) 수원사업장과 수원시가지 일부-삼성 홍보팀 제공
 
삼성전자는 이제 수원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기업이다. 
1969년에 창업하였으니 불혹을 넘긴 연륜도 만만치 않거니와, 수원에 공장을 세워 그 명성을 전 세계에 떨치므로 수원의 자랑이기도 하다. 
처음엔 정부의 반대도 컸다고 하는데 이제는 수출 및 고용에 있어 삼성전자를 빼고 대한민국의 경제를 생각할 수 없으니 국가를 이끌어가는 중요 기업 중 하나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당시의 신문기사를 보면 수원 공장이 착공된 것은 1971년 11월이었다. 
본래는 지금의 자리가 아니고 성균관대학교 수원캠퍼스 주변이 후보지였다. 당시의 '연합신문'(현 경인일보) 기사를 살펴본다.

'수원에 전자 기계공장'이라는 큰 제목 아래 '제1 공장 연내 완공 종업원 1만 명 예상'이라는 작은 제목이 붙었고 본문은 이렇다. 1969년 1월 30일자 신문이다.

'경기도청 이전 이후 대규모 기간산업체와 공공기업체가 수원에 이전 또는 신설되고 있어 도시 발전에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는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최대 규모인 전자기계공장이 수원에 세워질 것이 29일 확정되어 벅찬 내일이 약속되고 있다.
수원에 새로 세워질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전자 기계 공장은 삼성재벌에서 일본의 산요전기와 합작투자로 총 예산 15억 원으로 투입, 관내 율전동, 구운동, 그리고 화성군 관내 반월면 입북리 일부 지역 35만평에 세워진다.
새로 세워지는 이 공장은 삼성전자주식회사로 오는 3월 초에 착공하여 연내로 건평 1만 평에 달하는 제1공장을 완공하고 종업원 수도 1만여 명에 달할 것으로 보이고 있다.
한편 공장부지 35만평 중 29일 현재 21만평이 매수되었다.
이 공장이 완공 가동을 하게 되면 해외에서 수입하여 사용하던 각종 TV 부속과 전자 전기기구 일체를 생산하여 국내 소비를 완전 충당하고 외국에 수출하여 외화획득으로 산업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 기대된다.'

삼성전자는 율전동에 들어설 계획이었다  _2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삼성 홍보팀 제공
 
1967년 경기도청의 수원 이전으로 수원 지역에 큰 변화가 일었는데 그 하나가 삼성전자의 공장이 수원에 들어서게 되어 '벅찬 내일'이 약속된다는 것이다.

율전동이냐 매탄동이냐, 삼성의 신화는 수원에서 출발

또 일본의 산요전기와 합작해서 출발한다는 것과, 본디 지금의 영통구 매탄동 일대가 아닌 율전동과 입북동, 구운동이 후보지였으며 이미 어느 정도 공장 부지를 매입했음도 드러난다. 
아마도 이때는 경부선 철로를 이용하여 제품을 전국에 공급하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벌써 그때는 경부선 부곡역을 화물기지로 육성한다는 계획이 섰으므로 선택한 일이었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삼성전자의 입장이 바뀐다. 
경부고속도로는 1968년에 착공하여 1970년에 개통했으니 삼성전자로서는 철로와 고속도로를 놓고 갈등하다가 고속도로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율전동 일대 땅값이 갑자기 오른 것도 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고, 당초 정부로부터 설립허가를 받을 때 수출만 하는 조건이었으니 물류 이동에 신경을 많이 쓴 탓이다.

근로자 숫자도 1만여 명으로 잡아 공장을 설립하려고 했으므로 이 정보를 미리 안 주민들이 땅을 쉽게 내놓았을까? 그러나 수원으로서는 어느 곳에 공장이 들어서도 좋은 일이었다. 이는 실제로 몇 년 만에 실현되어 수원 경제를 이끌어 가는데 삼성전자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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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수원 이밸리 전경-삼성 홍보팀 제공
 
통근 버스가 줄지어 수원 시내를 누비고 다녔는데 당시 소문은 시내버스보다 삼성전자의 통근버스 숫자가 더 많다고 할 정도였다. 그뿐인가. 삼성전자의 월급날이면 수원 경제가 핑핑 돌아간다고 하였고, 여름휴가 때가 되면 수원 시내의 상인들도 덩달아 휴가를 간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전국의 지방 곳곳에서 삼성전자에 취업한 근로자들은 기숙사에 모두 수용이 안 되었으므로 방을 얻어 자취하는 사람도 많았다. 
공장 주변 '말통골'에는 외양간이며 헛간을 개조하여 최대한 방을 많이 만들고 세를 놓았다. 어떤 집은 20여 개나 되는 방을 세놓아 웬만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는 소문도 돌았다.

돈까스 시키고 스프만 먹고 나간 사람

당시의 근로자들은 공장 근처에서 먹고 즐길만한 공간이 적었으므로 팔달문 주변으로 나와 쇼핑도 하고 음주도 즐겼다. 
그때 레스토랑을 경영하던 한 업주는 가장 많이 팔린 음식이 '돈까스'였는데 처음으로 먹어보는 사람도 많았다고 하였다. 
자리가 모자라서 대기하는 손님도 줄을 섰고. 돈까스를 시키면 우선 스프가 먼저 나왔는데 정작 주 메뉴인 돈까스가 나오기 전에 스프만 먹고 나가는 손님도 더러 보였다고 한다. 그 사람들은 돈까스가 얼마나 시시한 음식이라고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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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봉사단의 화성행궁 청소-수원시 이용창 사진
 
삼성전자 때문에 수원삼성 프로축구단의 연고지도 수원이 되었고, 그 응원 구호로 외치던 '수원삼성'은 2002년 월드컵 때 '대~한민국'으로 승화되어 전국 뿐 아니라 세계적인 응원 구호가 되었다. 

이처럼 삼성전자도 세계 속에 우뚝 선 기업이 되었으니 수원에서 이룬 성과가 크다고 하겠다. 나라 전체로 보아 삼성전자의 수출로 인한 외화 획득도 한 해에 500억불을 넘어선지 오래다.
수원과 삼성전자가 앞으로도 서로 공생하는 사이로 더욱 오래오래 발전하면 좋겠다.
염상균/(사)화성연구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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