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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연못에 실학이 담겨 있다
염상균의 수원이야기 46
2010-07-01 15:59:38최종 업데이트 : 2010-07-01 15:59:38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수원화성 연못에 실학이 담겨 있다_1
연꽃
 

다섯 연못과 수원화성

지금은 단 한 개의 연못도 볼 수 없지만 수원화성 안에는 다섯 개의 연못을 만들었다. 성안의 동쪽과 남쪽, 그리고 북쪽에 두었는데 서쪽만은 팔달산 때문에 제외된 듯하다. 

남쪽의 남지는 상남지와 하남지로 둘인데 팔달문 서쪽 팔달산이 시작되는 근처에 자리 잡았다. 
상남지는 너비가 사방 40보(약48미터), 깊이 6척이고 가운데에 작은 섬을 만들었으며 홍련과 백련을 심었다. 하남지는 너비 40보, 길이 60보(약 72미터), 깊이 7척이고 가운데에 섬 둘을 두었는데, 상남지와 하남지 사이에는 정자 터까지 마련하였다. 연못의 둘레에는 모두 버드나무를 심고 섬에는 소나무를 심었다.

북쪽의 북지는 북서포루(北西砲樓)의 서쪽 90보(약108미터) 지점인데 사방 30보, 깊이 5척이다. 성 밖으로 흐르는 도랑의 물을 끌어대었기 때문에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동지 중 상동지 위치는 매향동 어귀인데 남북 길이 58보(약 70미터), 동서 너비 50보(약 60미터) 깊이 7척이다. 
여기에는 마름과 연꽃(그 잎으로 세속을 초월한 은둔자의 옷을 만든다고 함)을 심었고 가운데에 작은 섬을 만들었다. 하동지는 상동지 아래인데 사방37보(약 44미터), 깊이 4척이다.

수원화성 연못에 실학이 담겨 있다_2
은구도에 보이는 상남지와 하남지
 

연못은 왜 팠을까

다섯 개의 연못 중 상남지와 북지, 그리고 하동지는 성역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갑인년(1794) 3월과 4월에 파낸다. 2월 28일에 장안문, 팔달문, 화홍문, 남수문들의 터를 닦기 시작한 것에 비해 세 연못의 조성은 무척 빠른 편이다. 왜 서둘러서 연못을 팠을까?

첫째, 성안을 흐르는 지표수의 관리를 위하여 연못을 판 것이다. 
팔달산 동쪽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지대가 낮은 팔달문 쪽으로 흐르게 된다. 그래서 팔달문 서쪽 남성의 아래를 화강석 기둥으로 받치고 도랑을 냈다. 
이것이 은구(隱溝)인데 전체 너비가 4보(약 4.8미터)다. 이 은구로 물을 흘려보내기에 앞서 물을 가두어 두려고 상남지를 판 것이다. 
이는 하동지도 마찬가지다. 다만 하동지의 물은 수원천으로 흘려보내면 되기 때문에 은구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꼭 지표수의 관리를 위해서만 연못을 판 것은 아니라는 점이 북지의 경우이다. 
북지의 물은 성 밖에서 흐르는 도랑의 물을 끌어왔기 때문이다. 

둘째, 건축 용수의 확보 차원에서 연못을 팠다. 
예나 지금이나 건물을 짓거나 성을 쌓기 위해서는 많은 물이 필요하다. 그래서 본격적인 성역에 앞서 세 연못부터 판 것이다. 
연못을 미리 파놓고 비를 기다려 물을 채우기 위해 서둘렀던 것이고, 세 연못에 고인 물은 근처의 성역 현장에서 요긴하게 사용한다.

셋째, 방화수로서의 역할을 염두에 두고 연못을 판 것이다. 성안에 화재가 발생하면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그러나 불이 났을 때 연못에 고인 물로 불을 끄기 쉽다. 이는 전쟁이 벌어졌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전쟁에서는 불을 가장 앞세우기 때문에 연못이 없으면, 아니 방화수가 확보되지 않으면 그 성은 아주 위험하다. 더구나 우리 전통 건축물은 화재에 약하다.

수원화성 연못에 실학이 담겨 있다_3
상동지와 하동지


넷째, 백성을 위한 휴식처로서의 공간 제공이다. 버들가지가 살랑바람에 흔들리며 흐드러진 연못가에 앉으면 누구나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연못에는 연꽃이 피어나고 작은 섬에는 멋들어진 소나무가 반기지 않는가. 오늘날의 놀이 공원에도 예외 없이 연못을 만드는 것처럼 화성의 여기저기에 연못을 다섯이나 만들고 백성들이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말뚝 10개 값 1냥

갑인년(1794) 4월 1일 상남지, 4월 4일 북지, 4월 21일 하동지 파기를 끝냈다. 또 상동지는 을묘년(1795) 9월 23일에, 하남지는 병진년(1796) 7월 27일에 완성하였다. 
필요한대로 세 연못을 먼저 파서 성역에 보탬이 되게 하고 두 연못은 나중에 파서 화성의 경치를 더 아름답게 한 것이다.
북지에 든 돈이 552냥 9전, 동지 2곳에는 1,420냥 5전, 남지 2곳에는 1,728냥 6전9푼이 들었다. 상남지를 파낼 때 토사가 흘렀는지 엮은 말뚝 875개를 사용하였고, 말뚝 값이 87냥 5전이므로 말뚝 10 개 값이 1냥이었음을 알게 된다. 

연못가에 버드나무를 많이 심은 것은 화성의 옛 이름이 버드내여서 그랬을 것이기도 하지만, 연못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심었을 확률이 더 높다. 
버드나무는 아무 곳에서나 빨리 잘 자란다. 특히 연못이나 제방 등 물이 많은 곳에서는 더 잘 자란다. 잘 자랄 뿐만 아니라 뿌리를 빨리 잘 내려서 물에 의해 약해지는 연못의 호안이나 제방을 보호해준다. 그래서 예로부터 그런 곳에 많이 심었다. 

수원화성 연못에 실학이 담겨 있다_4
북지


연못을 복원하고 연꽃을 심자

연못에 홍련과 백련을 심은 것도 예사롭지 않다. 연꽃은 더러운 연못에서 깨끗한 꽃을 피운다고 해서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중국 송나라의 주돈이(周敦頤,1017~1073)는 <애련설(愛蓮說)>에서,
"내가 오직 연을 사랑함은, 진흙 속에서 났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이 소통하고 밖이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가 없다.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으며, 우뚝 깨끗이 서 있는 품은 멀리서 볼 것이요, 다붓하여 구경하지 않을 것이니, 그러므로 연은 꽃 가운데 군자이다."

이러한 연꽃이 흰색과 붉은 색으로 피어나면 화성의 연못은 극적인 상황으로 치닫게 되고 바라보는 사람들은 환호성을 올리게 된다. 아니, 이렇게 연출한 것이다. 그래서 화성의 연못들 속에는 실학 정신이 담긴 것이다. 그러나 단 하나의 연못도 남지 않았다. 아쉬운 일이다.

화성의 복원에 우선해야 할 일이 다섯 연못의 재현이다. 
다섯이라고는 하지만 세 군데에 만들면 된다. 남지에 상남지와 하남지, 동지에 상동지와 하동지, 북지뿐이니. 자리를 찾아서 발굴하고 옛 방식대로 연못을 만들면 화성을 찾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선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꿈속에서나 연꽃 향기와 솔향기를 맡아야겠다. 홍련 백련 피고 버들가지 휘날리는 그 연못에서.
염상균/화성연구회 사무처장, 답사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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