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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비행장 활주로 확장 때 밀려난 사람들
염상균의 수원이야기 30
2010-03-11 14:48:19최종 업데이트 : 2010-03-11 14:48:19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수원비행장 활주로 확장 때 밀려난 사람들_1
비행장 정문/사진 이용창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을 북수문(화홍문)과 남수문으로 관통해서 흐르는 수원천은 버드내라고도 불렀다. 버드나무가 천변에 많기도 하고 곧장 '벋은내'라는 뜻도 된다. 버드내 따라 내려간 길은 상류천(上柳川)과 하류천(下柳川)을 거치게 된다. 지금의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이다. 공교롭게도 경부선 철도와 옛 원행로가 만나는 지점에 수도권 전철 세류역이 들어섰다. 또 세류역 옆에는 공군 수원비행장이 자리를 잡았다. 이 무슨 우연인가?

세류동과 공군 수원비행장

세류동이라는 이름은 세동(細洞)의 세와 상류천, 하류천의 류를 따서 일제강점기에 붙인 이름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세류동이 되고 말았으니 기이한 우연이 되고 말았다. 세류는 중국 섬서성 함양현의 서남쪽 고장의 이름이다. 한나라의 장수 주아보(周亞父)가 장군이 되어 세류(細柳)에 진을 쳤는데(세류영細柳營) 그 군영의 규율이 다른 장수들의 진영보다 훨씬 엄하였다고 한다. 이에 순시하던 문제(文帝)가 크게 감동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세류영이란 이름은 절도 있고 엄숙한 군영의 대명사처럼 알려지게 되었다. 

세류동 역시 이유에 관계없이 마찬가지가 되고 말았다. 화성의 남쪽 방향에 위치하였으며 현륭원으로 가는 길목 아닌가? 기왕의 버드내와 상류천과 하류천 등으로 부르던 데다가 화성의 남쪽을 더욱 엄숙하고 튼튼한 규율로 지키라는 의미까지 복합되지 않았는가? 일제의 의도는 달랐겠지만 지명만은 제대로 고른 꼴이 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세류역 바로 옆에는 대한민국의 정예 공군이 자리를 잡았다. 바로 공군의 수원비행장이다. 창공을 가로지르는 빨간마후라들의 요람이 된 것이다. 비록 비행기 소음에 인근 지역 주민들은 고통을 겪고 소송도 불사하지만 그 자리만큼은 예사 자리가 아닌 것이다.

비행장에 묻힐 뻔한 대황교

이 비행장 활주로를 확장할 때였다. 군부의 서슬이 시퍼런 때였으니 이주민들에 대한 보상은 또 얼마나 알량했으랴. 지금 같으면 우르르 몰려가 확성기로 농성하였을 터인데. 정든 터전을 떠나게 된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면서 큰일을 한다. 마을 앞에 놓였던 돌다리를 해체하여 그 일부를 옮긴 것이다. 다리의 이름은 대황교(大皇橋), 1795년 정조 임금의 을묘원행에 맞추어 건설한 것이었다. 정조 임금은 만석거와 축만제, 만년제, 만안교 등 일만 만자를 즐겨 쓰고 대범하게도 황제 황자를 대황교에 붙였는데 이는 중국을 큰집으로 섬기던 제후국가에서는 금기해야 할 사항이었다. 그러나 정조는 무슨 자신감에서인지 금기시하는 글자를  과감하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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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릉 금천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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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황교

주민들은 공군 비행장 활주로에 묻힐 대황교의 일부를 융릉 앞 개천에 금천교 대신 가설해 놓았다. 이름은 원대황교(元大皇橋)라고 붙였다. 그리고 옮기게 된 사정을 다리 난간머리에 새겼다. 얕게 새겨져서 눈을 씻고 봐야 겨우 보이지만 정성만큼은 눈물이 날 지경이다. 1970년의 일이다. 강하고 엄한 규율의 군대 세류영보다 한 수 더 쳐야 할 이주민들의 정성이다. 자신들은 쫒겨 가면서도 문화유산에 대한 애착이 더 앞섰던 것이다. 

강원도 알프스스키장 마을까지 이주한 대황교 주민들

주민들 가운데 일부는 근처 마을로도 옮기지 못하고 값싼 땅을 찾아 강원도 고성까지 흘러갔다.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흘리. 한때는 겨울전국체육대회를 열기도 했던 알프스스키장 마을이다. 쥐꼬리 같은 보상금으로 아직은 스키장이 제대로 들어서지도 않은 시골로 이주한 것이다. 개발에 대한 기대감과 값싼 땅을 좇아서 아주 멀리까지 옮겨간다.

80년대 초반이었다. 스키도 타지 못하면서 신혼여행의 행선지 가운데 하나로 꼽아 찾았던 진부령의 알프스스키장은 유럽풍의 건물로 시선을 끌었다. 주인 내외의 환대와 덕담도 들었으며 융숭한 대접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친분을 내세워 찾았고 또 스키를 배워 알프스스키장을 자주 찾았다. 
시설은 뒤져도 눈의 질은 좋다고 소문난 곳이었고, 신혼여행의 추억으로도 자주 찾았다. 그때만 해도 야간 스키는 꿈도 못 꾸던 시절이어서 저녁이면 동네 어귀에서 밥도 먹고 술도 마셨다. 

수원비행장 활주로 확장 때 밀려난 사람들_4
알프스스키산장

그런데 장사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강원도 사투리를 쓰지 않고 표준어를 쓰는 게 아닌가? 게다가 자세히 들어보면 수원사투리를 쓰는 게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수원 사람이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그 뒤로도 몇 년을 더 다녀서 친숙해진 다음에야 그들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수원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이제까지 감추거나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은 수원에 대한 야속한 마음 때문이었다고. 자신들을 내친 수원이 미웠고 수원 사람들만 만나면 그때 수원에서 밀려난 일이 생각나서 괜히 싫었다는 것이다. 

도토리묵 등 알량한 안주와 술, 밥을 팔면서도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는 알프스스키장이 각광을 받으면서 민박집도 차리고 여관도 열었는가 하면, 제법 큰 식당으로 재미도 보았다. 겨울 한 철 벌어 일 년을 먹고산다고 했는데 지금은 애석하게도 몇 년째 공치는 생활을 한다. 
스키장이 불경기와 소유권 분쟁 등에 시달리면서 문을 닫았고, 따라서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저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것으로 시름을 달랠 뿐이다. 

대황교 터 부근에는 경부선 기찻길과 제주로 가는 옛 길, 그리고 아주 넓고도 곧은 도로(비상활주로)가 서로 경쟁하듯 남으로 치닫는다. 
게다가 황구지천과 정예 공군의 하늘 길까지 놓여서 그야말로 입체적인 길이라고 하겠다. 
넓고 곧은 길은 수원비행장에서 비상시 활주로로 사용하기 위해 가설한 것이지만 속도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한 번 '밟아'보는 길이기도 하였다. 이제는 '카메라' 때문에 그도 옛 일이 되어버렸지만.
염상균/화성연구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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