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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대통령과 부대찌개 존슨탕
염상균의 수원이야기 31
2010-03-18 11:47:32최종 업데이트 : 2010-03-18 11:47:32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존슨대통령과 부대찌개 존슨탕_1
1999년 존슨동산에 세운 현충탑
 
미국 제 36대 존슨대통령은 1966년 아시아 태평양 지역 7개 국가를 순방한다. 
그 중 맨 마지막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는데 이는 당시 베트남전 참전으로 한미관계가 우호적인 상태에서 이루어진 결과였다. 
당시 존슨은 앞서 방문했던 6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우리나라는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때여서 미국의 차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시점이기도 하였다.

워커힐에서 잠을 잔 존슨은 헬기편으로 청와대로 가서 정상회담을 하고 서울역으로 가서 특별열차 편으로 동두천에 간다. 미군과 국군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그리고는 다시 헬기를 타고 수원 상공으로 접어든다. 농촌 출신인 그가 한국의 농촌을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수원은 농촌진흥청이 자리 잡은 곳이라 전국에서 처음으로 경지정리가 되어 바둑판같은 논이 즐비했던 곳이다. 

이는 정조의 수원화성 건설과도 관련이 깊다. 정조는 수원화성 주민들의 안정을 위하여 저수지를 세 개 만들고 국영농장을 두어 자족적인 도시로 이끌려고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농촌진흥청과 각종 농사시험장이 자리를 잡은 곳이 아니던가? 그야말로 수원과 인근 지역은 한국 농업의 핵심이다.

정부에서는 존슨을 당시 화성군 태안면 안녕리로 이끌었다. 그 주변이 수원 인근에서 가장 넓은 경지정리 구역이었기 때문이다. 
존슨의 헬기는 안녕고등공민학교(현 안용중학교) 운동장에 내린다. 
국무총리와 경기도지사를 비롯하여 수원과 화성 주민 등 3만여 명이 구름처럼 모여 존슨대통령을 환영하였다. 존슨은 경찰차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면서 주민들의 거친 손을 잡기도 하고 열광하는 학생들도 어루만졌다.

당시 병점초등학교 4학년이던 김전수(현 화성시 향남읍 총무과장)씨에 따르면 "아이스케키에 사용하던 30cm 짜리 대나무 막대기에 풀칠해서 만든 국기와 성조기를 들고 된소리로 '쫀슨 대통령'이라 부르며 뛰어다니곤했으며, 미국대통령의 방문은 우리에게 외롭지 않고 든든하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던 것 같다"고 하였다. 
가난하고 못 살았지만 세계 제일가는 강대국 대통령이 직접 우리 마을에 와서 손을 흔들어 주고 노인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좋았던 것이다.

존슨대통령과 부대찌개 존슨탕_2
존슨동산 비석

경기도에서는 존슨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안용중학교 뒷산을 '존슨동산'이라고 이름 지었으며 이날 비석의 제막식도 거행하였다. 
이 언덕에 서면 반듯하게 경지 정리된 논들이 한눈에 보였고, 역시 농촌 출신인 존슨은 '우리도 물 부족 돈 부족에다 희망마저 사라져 어려운 고비를 넘긴 농민이기 때문에 여러 농민의 심정을 잘 안다'고 위로하면서 희망을 심어준다.

환영식장에서 존슨은 남색 도포차림의 한 노인에게 가서 악수를 청하며 '내 이름은 존슨입니다'라고 우리말로 자신을 소개하였고 주민들이 선물한 사모관대 신랑복장을 걸쳐 입고 사진도 촬영하였다. 
1미터 93cm의 큰 키에 사모관대를 걸친 파란 눈의 서양인, 주민들은 배꼽을 쥐고 웃었다고 한다. 

존슨은 24인치짜리 '알씨에이' 텔레비전을 마을에 기증하였으며 남색 도포차림의 노인을 번쩍 들어 헬기에 태우고는 수원 상공을 한 번 더 선회한다. 
그러고는 소감을 물었는데, 노인은 '천국에 다녀온 것 같다'고 화답한다. 
또 존슨은 노인에게 '미국에 오고 싶으냐'고 물었는데 '한 번 구경하고 싶다'는 대답에 농담으로 그럼 오늘 가자고 한다. 그러나 노인은 '오늘은 안 되겠는데요.'라고 대답해서 한바탕 웃음이 더 이어졌다. 존슨은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 노인에게 볼펜과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주머니칼을 선물한다.

당시의 안용고등농민학교 학생 150여 명은 그들이 제각기 '사인'한 족자와 4H클럽 방패를 존슨에게 선물한다. 
존슨은 또한 화성군수가 준 활을 받아 들더니 화살을 꽂아 활 끈을 힘껏 당겨 취재에 극성을 부리는 카메라맨들 쪽으로 쏘는 시늉을 내어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존슨동산 비석 제막이 끝난 뒤 존슨은 "내가 어젯밤에 '워커힐'에서 잤지만 오늘밤은 이 '존슨힐'에서 하룻밤을 묵고 갔으면 좋겠다." 면서 "꼭 다시 한 번 이 동산에 들르겠다." 고 말했다.

존슨이 이렇듯 우리나라와 이곳 수원들판을 좋아하게 된 것은 한미 간의 끈끈한 우호관계도 작용했다. 또 농촌 출신이어서 농촌을 사랑하는 마음도 컸지만, 보다 큰 이유는 주민들의 소박하고도 열렬한 환영 때문이었다. 
존슨이 한국에 앞서 방문했던 6개국에서는 한국처럼 열렬한 환영을 받지 못했고, 존슨도 한국이 마지막 방문국이어서 피로할망정 부담이 적었기 때문이다.

존슨대통령과 부대찌개 존슨탕_3
안용중학교 운동장
 
존슨이 헬기를 타고 내렸던 안용중학교 운동장은 세계적인 축구 선수 박지성이 3년 동안 공을 차면서 꿈을 키우던 곳이다. 박지성 선수 덕분에 이제는 인공잔디를 깔아 깨끗한 모습을 보인다. 존슨동산의 비석도 그날을 증언하고.

존슨대통령이 심어준 친밀감 때문일까? 수원 지역에서는 언제부터인지 부대찌개를 '존슨탕'이라고 이름 붙였다. 
지금은 김치 대신 양배추를 넣고 치즈 두 장을 얹어 내 놓는 부대찌개를 특정해서 부르기도 하지만, '존슨탕'은 부대찌개를 일컫는 대명사였다. 
미군부대에서 가져온 햄과 소시지, 그리고 다분히 한국적인 김치와 당면, 마늘 등을 넣고 육수를 부어 끓였으니 밥을 먹기에도 좋고 술안주에도 제격이어서 오늘도 인기 만점의 '한국음식'이 되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라고 했던가. 유례없이 춘삼월 추위가 지속되는 요즘 '존슨탕'으로 가까운 사람들과 정을 나누는 것은 어떨지. 
염상균/(사)화성연구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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