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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유원지와 그 추억들을 되살릴 수 있을까?
염상균의 수원이야기-4
2009-08-18 14:21:59최종 업데이트 : 2009-08-18 14:21:59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원천유원지와 그 추억들을 되살릴 수 있을까?_1
원천 저수지/사진 이용창

수원시 이의동 원천유원지는 지금 휴업 중이다. 광교신도시 건설 사업 때문이다. 
광교신도시는 광교산 못지않게 원천저수지와 인근의 신대저수지가 포함되어 '명품' 신도시로 주목을 받는다. 누군들 산과 물을 싫어하겠냐만, 살림집 가까운 곳에 산이 둘러싸고 물을 바라본다면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어디에 있을까? 게다가 교통이 편리하고 여러 도시 기반시설이 갖춰진다면 그야말로 명품도시가 아닌가?
그러나 '명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통이 따라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지금은 원천저수지로 접근하는 도로를 일시 폐쇄하고 신도시공사에 매진한다.

사람이 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은 네 가지 덕을 지녔다고 했다. '군생(群生)을 목욕시키고 만물을 뚫고 흐르므로 인(仁)이요, 맑음으로 탁함을 없애고 더러움을 휩쓸어가므로 의(義)요, 부드럽지만 함부로 범하기 어렵고 약하지만 능히 이겨내니 용(勇)이요, 강으로 이끌되 내를 거쳐 가득함을 싫어하고 겸허하게 흐르므로 지(智)이다'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사람 시자(尸子)가 예찬한 물의 사덕(四德)이다.
물은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만 내려오는 순리를 가졌으며, 서로 먼저 가려고 다투지 않는 예와, 부족한 곳은 채워주는 덕을 지녔고 언제라도 수평을 유지하는 자제력 또한 지니지 않았는가?

원천저수지를 축조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 3월 1일이다. 원천저수지를 아랫방죽이라고 했던 것처럼 윗방죽인 신대저수지도 같은 날에 공사를 시작하였다. 
신대저수지는 그해 12월 31일에 준공되었고, 원천저수지는 이듬해인 1929년 9월 1일에 준공한다. 광교산 동쪽 자락의 물을 오롯이 모아 농업용수로 쓰기 위해서였다. 한편으로는 홍수를 예방하고 농업생산력을 높여 수탈의 대상으로 삼으려던 일제의 잔꾀도 포함된 것이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릴 수 없듯이 우리는 광복을 맞이하였고 두 저수지는 수원 남쪽의 농업생산력에 크나큰 공헌을 하게 된다.

1976년 1월 원천저수지는 세간의 주목을 한껏 받는다. 1975년 12월에 일어난 수원경찰서 서장실 권총 도난 사건 때문이다. 수원경찰서는 서장실의 서장용 권총(리벌버)이 도난되어 쑥밭이 된다. 경찰서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이 조사를 받았고 그 가운데 20여 명은 용의자로 수사선상에 오르기도 했다. 경찰서장이 직위해제 되었고 다른 혐의가 드러난 경찰들도 옷을 벗거나 구속이 되는 등 어수선한 연말연시를 맞이한다. 

그러다가 1976년 1월 피의자가 잡히는데 서장실에서 타자수로 근무하던 한 여인과 경찰간부 1명이었다. 둘이 서로 공모하여 벌인 사건이었지만 문제는 도난당한 권총의 행방이었다. 타자수 여인은 서장이 퇴근한 다음 권총을 훔쳤고 가까운 사이였던 간부에게 권총을 건넸으며 수사가 시작되자 그 간부는 권총을 원천저수지에 버렸다고 했다.

두께가 13센티미터나 되는 얼음을 깨고 인천에서 급파된 잠수부 둘이 지뢰탐지기까지 동원하여 권총을 찾았지만 끝내 실패하고 만다. 더구나 피의자로 지목한 경찰 간부는 감시하는 수사관들을 따돌리고 원천저수지에 투신하였고 이내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인사에 불만을 품은 한 간부의 복수극이라고도 했고, 피의자 둘이 서로 내연의 관계였다는 둥, 말이 많았던 사건이었다. 그리고 권총 도난 사건은 미제 사건인 채로 점차 잊혀졌다. 

원천유원지와 그 추억들을 되살릴 수 있을까?_2
음식점과 위락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던 원천유원지/사진 이용창

1977년, 모든 것을 덮은 채 원천저수지는 유원지로 개발된다. 드럼통을 연결하여 물에 띄운 수상 음식점이 늘어나고 노를 젓는 보트가 대량으로 들어왔다. 또 페달을 밟아 나아가는 오리보트가 들어와서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수상스포츠'를 즐기게 되었다. 
저수지 주변으로는 음식점이 생겨나 행락객들의 주머니를 얇아지게 만들었고, 수영장이 생기고 숲에는 천막으로 만든 술집까지 생겼으며 야바위꾼도 횡행하였다. 마땅히 갈 곳 없던 수도권 사람들의 행락지가 된 것이다. 봄에는 푸른지대와 노송지대의 딸기가 유명세를 떨치고, 가을에는 포도가 그 이름을 이어갔다면, 여름에는 원천유원지가 '수원'을 알린 셈이다. 
더구나 수도권 전철이 개통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즐기는 명소가 되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남문'은 몰라도 원천유원지는 다 알게 되었던 시절이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원천유원지는 또 다른 변화를 겪게 된다. 값비싼 음식점들이 들어서고 러브호텔들이 자리를 잡더니 분위기 좋은 까페들도 하나 둘 문을 열었다. 모터보트도 늘어나고 수상스키를 즐기는 사람들도 모여들었다. 놀이공원도 꾸며서 바이킹이나 회전목마 같은 시설이 들어왔다. 
아직은 자가용 승용차가 없던 가족들은 먼 곳의 큰 시설에 가지 못하는 대신 버스와 택시를 타고 원천유원지로 몰려들었다. 한 여름 장사해서 일 년을 먹고 산다는 말이 상인들의 입에서 나올 정도였으니.

원천유원지와 그 추억들을 되살릴 수 있을까?_3
원천 유원지/사진 이용창

21세기 들어와 '명품'을 위해 원천유원지의 추억은 모두 흘러갔다. 선금 내고 오리보트를 빌려서 약속 시간보다 더 즐기고 엉뚱한 곳에 내려서 도망친 기억도, 정체 모를 동동주를 마시고 머리가 빠개지도록 아팠던 기억도, 보트 위에서 장래를 굳건히 약속했던 한 여인에 대한 기억도, 아이들과 함께 밤바카를 타고 서로 부딪치며 즐겼던 기억도 모두모두 흘러갔다. 
물처럼 바람처럼. 이제 명품으로 거듭 태어나면 다시 가서 그 추억들을 되살릴 수 있을까?  
<염상균/화성연구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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