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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화성 성벽을 바라보니
염상균의 수원이야기-7
2009-09-15 17:42:13최종 업데이트 : 2009-09-15 17:42:13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가을 하늘은 높고 바람은 시원하여 화성으로 나선다. 오늘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늬가 다양한 성벽이다. 어쩌면 이리도 다양하게 성벽을 구성했을까? 작은 돌들을 다듬어서 속삭이듯 아기자기하게 쌓은 성벽이 눈길을 끄는가 하면, 아주 큰 돌을 써서 장쾌하게 쌓은 성벽도 있고, 직육면체의 반듯반듯한 돌을 벽돌 쌓듯이 한 성벽도, 전혀 다듬지 않은 듯 아무렇게나 생긴 돌들을 자유롭게 쌓아올린 성벽도 보인다. 

이 가을, 화성 성벽을 바라보니_2
이 가을, 화성 성벽을 바라보니_2

성의 안쪽으로만 걸으면 시설물들을 제대로 보겠지만 성벽의 아름다움은 놓치게 된다. 성 밖에서 적군의 심정으로도 성벽과 시설물들을 살펴야 하고, 성안에서 아군이 되어 공격과 방어를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좋다. 그러면 화성의 성벽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나. 그저 돌일 뿐인데.

적심돌과 야질 흔적 찾기


첫째, 화성의 성벽에서 적심돌을 찾아내야 한다. 성벽은 거의 수직으로 쌓아올린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약 2~3 %의 기울기를 가진 벽체가 화성 뿐 아니라 우리나라 대개의 성과 축대에서 보이는 공통점이다.
1미터를 쌓아올릴 때 2~3cm의 기울기를 가지고 언덕 쪽에 기댄 꼴이니 4미터의 성벽이면 8~12cm의 기울기를 지닌 것이다. 돌로 쌓은 성벽이 수직으로 처리되면 곧 무너질 것 같아서 누구나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적군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주 만만해 보여서 성벽 자체가 약해 보인다. 그러나 적당한 기울기를 가지면 바라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꽤나 단단한 성벽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런 기울기를 지닌 거의 수직에 가까운 성벽을 쌓기 위해서는 성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별도로 필요한데, 이 장치가 바로 적심돌이다. 

이 가을, 화성 성벽을 바라보니_1
가운데 큰 돌이 적심석이다

적심돌은 수직에 가까운 성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성벽의 진행 방향으로 돌을 쌓은 것이 아니라, 긴 장대석을 성벽의 방향에서 직각으로 물려놓은 돌이 바로 적심돌이다. 긴 돌이 성벽 안쪽의 내탁(內托)에 의지하므로 성벽은 더욱 튼튼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중간중간 필요한 곳에 안으로 깊이 박아 놓았다. 이 적심돌은 대개 정사각형 비슷하게 생겼다.

둘째, 야질의 흔적을 찾아내야 한다. 화성의 성벽을 응시하다 보면 굴삭기(포크레인)의 날에 찍힌 듯한 흔적이 더러 보인다. 200여 년 전에 굴삭기가 있었던 것일까? 이런 자국들은 본래의 모습에서 반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돌을 떠내거나 쪼갤 때 쓰는 전통적인 방법은 떠내고자 하는 바위의 계획선 위에 띄엄띄엄 원뿔형의 구멍을 정으로 파낸다. 그 다음 바짝 마른 밤나무나 소나무 따위를 그 구멍에 맞게 깎아서 박아 넣고 물을 뿌려 나무를 불어나게 하면 그 힘에 의해 돌은 쪼개지게 된다. 이런 방법을 우리말로 '야질'이라고 하는데 고대로부터 써 오던 기술이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돌을 많이 다루는 다른 민족들도 대개 이런 방법으로 돌을 떠내거나 쪼갰다.
이렇게 돌이 쪼개지면 원뿔형의 구멍은 양쪽으로 나누어져서 마치 굴삭기의 날에 의해 찍힌 듯한 모습으로 남는 것이다. 때로는 원뿔형의 구멍을 줄지어 파놓고, 거의 그 모습대로 약간 크게 생긴 쇠날을 끼운 다음, 커다란 쇠망치로 때려서 돌을 가르기도 하였다.

성벽의 다양한 표정들


셋째, 성벽의 돌에서 표정을 읽어내야 한다. 네모반듯하게 직선으로 다듬은 돌보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돌이 더 생동감이 살아난다. 그런데 곡선과 곡선이 만나게 돌을 쌓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본래 이 기술은 '그랭이질'이라고 해서 자연석 주춧돌 위에 나무기둥을 세울 때 쓰는 고급의 건축 기법이다.

넷째, 성벽의 돌들 중에는 컴퓨터 게임의 테트리스 조각들이 군데군데 박혔다. 마치 오늘날의 컴퓨터 게임을 예견이라도 하고 만든 것처럼 성벽의 일부는 테트리스 조각들을 닮았다. 

다섯째, 성벽을 바라보면서 걷다보면 축성기법이 자주 바뀌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느 곳은 깔끔하게 쌓았고, 어느 부분은 대충대충 쌓은 듯하고, 또 어느 성벽은 큰 돌들을 써서 시원시원하게 쌓기도 했다. 이는 성벽을 동시다발적으로 쌓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보인다. 

이 가을, 화성 성벽을 바라보니_3
이 가을, 화성 성벽을 바라보니_3

축성에 참여한 석공의 성격과 감독자의 성격이 드러나는 특징일 것이다. 아주 못난 돌들만 가지고 쌓은 성벽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동성의 일부처럼 많이 무너졌던 것을 다시 쌓았다. 그런데 못난 돌들을 쌓아 이루어진 성벽도 우리에게는 하나의 교훈을 준다. 우리처럼 못난이들도 모여서 쌓이니까 이렇게 훌륭한 성벽이 되더라고.

구불구불 기어가는 성벽


화성의 성벽은 다양한 무늬와 축성 방법으로 획일성을 거부한다. 사람마다 성정이 모두 다른 것처럼 돌 하나하나가 제각기 생겼다. 또한 어느 한 곳이라도 줄을 띄운 듯이 곧게 펴진 곳이 없다. 마치 일부러 구불구불하게 쌓기 시작한 것같이 보이기도 한다. 자연의 지세에 순응하고 동화되어야 했던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듯 전통의 방법을 따랐다. 

성벽이 일직선을 곧게 그은 듯이 직선으로 이루어지면 만들기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자연적인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리고 또한 성벽 전체가 앞으로 엎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는 적들에게 사기를 북돋워주는 일이다. 

이 가을, 화성 성벽을 바라보니_4
이 가을, 화성 성벽을 바라보니_4

그러나 구불구불한 성벽은 더욱 단단해 보이면서 자연적인 성으로 생각하게 된다. 조물주가 온갖 재주를 다 부려서 만들어 놓은 듯한 천상의 성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또 병풍의 원리가 숨었다. 병풍을 펼칠 때 직선으로 활짝 펼치면 쓰러지게 된다. 그러나 적당히 접어가면서 펼치면 웬만한 바람이 불어도 든든히 서게 된다. 

가을이 더 깊어져서 찬바람이 불기 전에 화성의 성벽을 만나러 가자.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욱 좋고.
염상균 / (사)화성연구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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