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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난파
2008-01-07 11:40:40최종 업데이트 : 2008-01-07 11:40:40 작성자 :   

 

홍난파_1
홍난파_1
 
1898년 4월 10일 경기도 화성군(현 화성군) 남양면 활초리에서 태어나 1941년 8월 30일 삶을 마감할 때까지 그의 44세의 삶과 예술이 바로 한국근대양악사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1912년에 황성기독교청년회 중학부를 졸업한 그는, 1913년부터 3년 동안 음악학교 '조선정악전습소 서양악과'에 다님으로써 바이올린 연주가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21세가 되던 1918년에 일본 '도쿄음악학교'(흔히 '우에노'로 줄여 말하는 학교)로 유학하였지만 그 다음해인 1919년에 3·1 운동이 일어나자 학업을 중지하고 귀국하여 음악활동을 열정적으로 펼쳐 나간다. 
바이올린 연주가, 작곡가, 평론가, 음악교육가, 지휘자, 작가로 활동 하였다.

1926년에는 사립인 도쿄고등음악학원에 편입하여 1929년에 졸업하였고, 1931년 7월에는 미국 시카고 셔우드(Sherwood) 음악학교에서 2년간 수학하기도 하였다.

년 도

활     동     내     용

1919년 10월13일 [경성악우회]를 조직하고 창립연주회에서 바이올린 독주를 함
1920년 11월13일 단성사에서 개최된 [음악대연주회]에서 바이올린 독주함.
1921년 5월  동경에서 열린 [폴란드 고아 구제 대음악회] 독주자로 삼청(三請)을 받음.
1922년 9월 9일 [경성 순회악단](단장 홍난파) 음악회를 천도 교회당에서 개최함.
1923년 6월 [정동 계명 음악원] 주최 음악회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관현악 반주에 
의한 합창을 지휘함
1923년 12월17일  [베토벤 탄생 15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을 독주함.
1924년 1월9일 우리나라 최초로 [홍난파 바이올린 독주회] 개최함.
1930년 7월5일 보성전문학교 학생회 주최 [납량음악대회(衲凉音樂大會)]에서 연주함.
1934년 10월30일 [경성 보육학교 녹양회] 주최 대음악회에서 연주함.
1937년 2월3일  전형철 독창회에서 [경성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함.
1939년 6월8,9일  동아일보사 주최 [제1회 전조선 창작곡 발표 대음악회]에서 경성방송
관현악단을 지휘하여관현악곡과 '나그네의 마음'을 연주함.
1930년 7월 23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교향곡 전악장(주피터 교향곡)을 연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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