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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을 본으로 하는 성씨들은?
수원 김, 수원 최, 수성 최, 수원 백씨등 다양
2008-01-17 17:40:29최종 업데이트 : 2008-01-17 17:40:29 작성자 :   

수원을 본으로 하는 성씨들도 있을까??
의외로 많다. 수원 김씨, 수원 방씨, 수원 백씨, 수원 이씨, 수성 최씨, 수원 최씨 등이 수원을 본으로하고 있는 성씨 들이다.

수원 김씨(水原金氏)
  
수원 김씨의 시조 김품언(金稟言)은 신라 경덕왕의 넷째아들 김은열의 손자로 고려 현종때 거란군의 침입을 토평하는데 공을 세워 수성군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선조가 봉군된 수원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가문을 일으켰다.  

수원 방씨(水原房氏)
  
"조선씨족통보"에 의하면 수원방씨의 시조 방정유는 관작이 대광이라고 전할뿐 본관의 유래 등 아무것도 알수 없다. 확실하지 않으나 남양방씨에서 분파한 계통이 대대로 살던 수원을 본관으로 한 것으로 짐작된다.  

수원 백씨(水原白氏)  
시조는 우경, 시호는 문경인데, 본래 중국 소주 사람 황제 헌원의 후손이다. 780년에 중국에서 우리 나라로 들어와 신라에서 벼슬을 얻어 좌복사공대사도라는 벼슬을 지냈다. 그러나 기록이 이어지지 않아 그 후손으로 경명왕 때 중랑장을 지낸 백창직을 중시조로 삼았다. 그리고 중시조의 증손인 백휘가 고려 때 대나마 대장군으로 수원군이 되자 수원을 본관으로 정하였다. 
한편 중시조의 9대손인 백천장이 중국에서 이부상서를 거쳐 우승상으로 수원백이 되어 수원을 본관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밖에도 염포 백씨, 부여 백씨, 대흥 백씨가 있으나 모두 수원 백씨에서 갈라져 나간 후손들이다.  

수원 이씨(遂安李氏)  
시조 이자송(李子松)은 1358년(고려 공민왕 7년) 양광(楊廣)과 전라도찰리사(全羅道察理使)가 되고, 1362년 전법판서(典法判書)로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홍건적의 평정을 알렸다. 이때 원나라가 고려 공민왕의 셋째 아들을 고려왕으로 책봉하고 군사를 거느리고 귀국케 할 때 그 호종(扈從)을 명령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1364년에 귀국하여 그 공으로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고 다음해 평양군으로 부임하였다. 또한 1382년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라 공산부원군(公山府院君)에 봉해졌다가 사망한 뒤 수성(수원)부원군으로 개봉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수원에 살면서 본관을 수원으로 하고 있다.  

수성 최씨(隋城 崔氏)  
수원을 본관으로 하는 최씨가 두 계통이 있는데 이를 本최와 來최로 구분한다. 본최인 수원최씨는 원래 성이 최이므로 본최라 하고 수성 최씨는 본래 성이 김이었는데 최로 사성되었다고 하여 래최라 한다.
수성 최씨의 시조 최영규(崔永奎. 시호는 문혜)는 원래 김씨이다. 

그는 신라 경순왕의 17세손으로 1261년(고려 원종 2년) 문과에 급제하고 형조전서겸 보문각 대경으로 있으면서 서경에서 명망이 높았다. 충렬왕 때 수원 일대가 기강이 퇴폐하고 인륜을 지키지 않아 왕이 개탄하고 '군신 가운데 누가 이를 다스려 풍속을 순화 하겠느냐?' 하니 그가 자청하여 호장으로 부사 안설과 함께 효도로 인도하고 의리로 설복하니 1년이 못되어 크게 변했다. 왕이 가상히 여겨 1302년(충렬왕 28년) 포상을 하고 그공이 최외와 같다 하여 최씨성을 내리고 수성백에 봉했다. 그래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수성으로 하였다.
같은 혈손이면서 또 다른 계통이 있는데 고려 때 부정을 지낸 최거경을 1세조로 하는 계통이 있다.  
 
수원 최씨(水原 崔氏)  
수원 최씨는 동성동본이면서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한 계통은 고려 예종때 수주(수원)호장 최상익을 시조로 한다 . 다른 계통의 시조 최정은 고려 때 산원동정을 지냈으나 그의 선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최정의 고향이 수원이므로 본관을 수원으로 하였다.  

이외에도 수원 공씨(貢氏), 동씨(董氏), 요씨(姚氏) 등이 있었으나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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