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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축성 일꾼들에게 임금이 지불됐다고?
두달 일하면 초가집 한채 살 돈 모을 수 있었다!
2008-04-23 16:35:50최종 업데이트 : 2008-04-23 16:35:50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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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은 정조대왕의 애민정신이 듬뿍 담긴 건축물이다

옛날 국가나 지방관청에서 시행하는 공사에는 백성들을 강제로 동원했을 뿐 만 아니라 임금도 지불하지 않고 혹독하게 일을 부려먹어 많은 백성들의 원 성을 샀다.  
특히 탐관오리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강제부역으로 가혹하게 착취 했기 때문에 민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부터 얘기하자!
정조대왕이 명하여 공사에 들어간 화성 축성 때는 이런 일들이 결단코 없었다.  
또박또박 임금을 지불했을 뿐 아니라 임금님의 인부들에 대한 관심이 각별 해 수시로 상품을 지급하고 잔치를 열어줬으며 더운 여름에는 몸을 보호하는 척서단이란 약을 직접 조제해 내려주기까지 했다.  
따라서 기록에 보면 화성 공사 및 수원 신도시 조성공사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전국의 백성들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수원에 오지 못하도록 하라는 임금의 특명이 각 지방관들에게 하달될 정도였다.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백성을 징발해 노동에 종사케 하는 것을 부역(賦役) 노동이라고 하는데,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부역노동을 하는 대신 현물로 대납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화성 축성공사가 시작되면서 채제공 역시 지금까지의 관례를 들어 부역을 주장했다.  
`정조실록' 권40, 정조18년 5월 조에 기록된 기사를 보자.  

"성인인 공자 역시 `백성을 시기에 알맞게 부린다'고 했지 언제 백성을 부리지 말라고 한적이 있습니까? 이번 화성 성역(城役)은 국가의 대사이므로 나라가 백성들에게 일을 맡기지 않을 수 없으며 백성의 도리로 나라를 위하여 부역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성상께서 백성을 너무 아낀 나머지 한사람이라도 노역에 지치는 폐단이 있을까 싶어 아직까지 백성 을 적절히 부리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고 계시니, 사랑한다면 수고롭게 시켜 야 한다는 의리를 저버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승군(僧軍)의 경우 더욱 더 이런 곳에 쓰기에 합당합니다. 신의 생각은 백성과 승군으로 하여금 거리와 수효를 균등하게 하여 며칠동안 축성 공사에 부역하도록 징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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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축성에 사용된 거중기 모형을 체험해 보는 어린이들

승군과 백성을 부역의 형태로 징발해 사역을 시키자는 것은 비단 채제공만의 주장이 아니었다. 우의정 이병모도 성역에 투입할 일꾼들을 각 도에 분배 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밖에 좌의정 김이소, 행판중추부사 김희, 행예조판서 정창순, 행사직 홍양호, 전참의 윤행임, 좌참찬 홍수보, 판돈녕부사 김지묵 등 대부분의 신하들도 부역론에 동조했다.  

그러나 정조대왕은 강제부역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임금을 지불해 백성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화성성역의궤'의 `화성기적비' 기록에 따르면 화성공사에 인부가 70여만명이 투입됐는데, 정조대왕의 백성을 사랑하는 성왕(聖王) 정치이념을 바탕으로 인부는 모두 노임을 주고 부리며, 백성들에게는 단 3일간의 의무적인 부역이라도 면하도록 했다. 
모두 품삯〔고가:雇價〕을 주고 사역했고 백성들의 강제적인 부역을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화성을 축성하면서 석수와 목수, 단청공, 기와 및 벽돌장, 미장, 대장장, 조각장 등 반드시 필요한 전문노동력들에 한해서 부역으로 징발했다.  
그러나 이 역시 모두 품삯을 지급했을 뿐 더러 일반 단순노동자들보다도 더 많은 액수를 지급함으로써 전문 장인(匠人)에 대한 예우를 했다.  

일반 인부의 경우 매일 돈 2전5푼 정도가 지급된 데 비해 목수와 미장이, 조각장, 화공, 수레장 등의 경우는 매일 돈 4전2푼씩이 지급됐다고 '화성성역의궤'에 기록돼 있다. 당시 물가로 쌀1섬(15말)은 5냥 정도에 거래됐다.  
당시 사도세자 묘원 천장으로 인해 이전해야 했던 수원부 내 다섯칸짜리 초가집의 보상가가 15냥 정도였던 것으로 미루어 일반 인부가 60일(두달) 정도만 일하면 집을 한채 살 수도 있는 돈이었던 셈이다. 
석수는 보조 1명을 포함, 매일 돈 4전5푼과 쌀6되를 지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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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의 아름다움에는 임금을 지불한 정조대왕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가 한몫 했으리라

화성 축성에 동원된 장인들은 모두 1천821명으로서 연311만1131일을 공사에 참여했다.  
그리고 장인들에게 지급된 품삯 총액은 12만8735냥4전3푼이었는데 이 가운데 석수에게 지급된 금액이 7만3164냥으로 52.3%를 차지했고, 미장이에게 2만4419냥7전(19%), 목수 1만3381냥(10.4%), 대장장 1만745냥8전7푼 (8.3%) 등의 순이었다.  
한편 전문 기술자들인 장인 외에 잡역부인 모군(募軍)에게는 11만7520냥 8전7푼이, 목재나 돌을 운반하는 담군(擔軍)에게는 5만8561냥5전7푼이 지급되어 축성에 동원된 일꾼들에게 지급된 총 품삯의 액수는 30만4817냥8전4푼에 달했다.  
화성 축성에 쓰인 목재 석재 등의 총액이 39만201냥1전1푼임을 감안하면 일꾼들에게 지급된 품삯의 비중을 알 수 있다.  

한편 멀리서 온 일꾼들을 위해 팔달문과 장안문 등 축성 공사장 인근과 돌 뜨는 곳이었던 숙지산, 여기산과 목재 다듬는 곳이었던 구포(현재 화성 시 비봉면) 등지에 임시 가옥을 설치했다.  
또 일꾼들이 질병에 걸릴 경우 성밖에 막사를 치고 진료해 주었으며 치료 기간 중 일을 하지 못하더라도 매일 쌀 1되, 돈 1전씩을 지급했다. 〈김우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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