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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성사 가는길, 염불소리 대신 바람소리만
하주성/민속학자, 문화재 답사 전문가
2013-09-09 13:52:11최종 업데이트 : 2013-09-09 13:52:11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창성사 가는길, 염불소리 대신 바람소리만_1
창성사 가는길, 염불소리 대신 바람소리만_1
 
창성사지. 수원시 상광교동 산41에 소재한 수원시 향토유적 제4호인 창성사지. 창성사는 고려 말의 국사인 화엄종사였던 진각국사(1305~1382)의 사리탑과 함께 조성이 된, 보물 제14호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가 있던 곳이다. 진각국사의 탑비는 현재는 수원 화성 안 방화수류정 길 위편으로 옮겨져 있다.

창성사지로 오르다

상광교 버스종점에서 폭포농원을 통과하면 작은 다리 하나가 뒤편에 보인다. 그곳을 건너 산등성이 쪽을 향해서 걷다보니, 밭에 고부사이인 듯한 여인들이 마늘을 파종하고 있다. 괜히 일을 하는데 방해를 놓는 것 같아, 말 한 마디 부쳐보지 못하고 산길을 걷는다. 조금 위로 오르다가 보면 내를 건너 길이 양편으로 나눠진다. 

좌, 우측 어리도 가도 창성사지를 찾을 수 있지만, 좌측 물이 흐른 자국으로 인해 돌이 드러난 길을 택하면, 쉽게 창성사지로 오를 수가 있다. 이정표 하나 없는 길을 찾는다는 것은 힘들다. 더욱 그것이 수많은 갈래치기를 하는 산길인 때야 말해 무엇하리요.

창성사 가는길, 염불소리 대신 바람소리만_2
창성사 가는길, 염불소리 대신 바람소리만_2
 
비가 온 뒤라 흙이 파인 길은, 돌 때문에 걷기가 여간 불편하지가 않다. 그래도 문화재를 찾아가는 길이 아니던가? 불평한 이유가 없다. 조금 오르다가 보니, 마치 거북이 한 마리가 엎드려 있는 듯한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이런 바위가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마치 전설 한 자락 머금은 듯한 바위이다.

누군가 마련한 옹달샘, 더위로 갈증 난 목을 축여 

창성사 가는길, 염불소리 대신 바람소리만_3
창성사 가는길, 염불소리 대신 바람소리만_3
 
바위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여기저기 찍다가 뒤로 돌아가니 옹달샘이 보인다. 누군가 바위 밑에서 흐르는 물을 작은 관을 묻어 마시기 편하도록 해놓았다. 돌러 주변을 쌓아올려 제법 그럴 듯한 옹달샘이다. 돌 위에는 그릇까지 하나 놓여있다. 물을 한 그릇 떠 마셔본다. 시원하다. 잠시 걸은 산길이지만 갈증이 났던 차에 목을 축일 수 있다는 것도 작은 행복이다.

다시 오름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위로 갈수록 점점 길이 험해진다. 걷기에는 그리 불편한 것이 없지만, 그래도 돌부리에 걸리고, 솟아난 나무뿌리가 발을 건다. 뒤뚱거리면서 보니, 바로 코앞에 문화재 안내판이 보인다. 

잡풀이 우거져 자세히는 사지의 면모를 볼 수가 없어 아쉽다. 하지만 이렇게 고려 때의 절터 하나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문화재 답사를 20년 넘게 해 온 나이다. 이런 폐사지 하나를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설레이는 일인가를, 남들은 아무리 설명을 해주어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단다.

창성사 가는길, 염불소리 대신 바람소리만_4
창성사 가는길, 염불소리 대신 바람소리만_4
 
폐허로 변한 창성사지, 정비가 아쉽다

창성사지에는 현재 약 50m 정도의 석축이 남아있다. 석축으로 쌓은 기단은 2단으로 되어있는데, 아래층 기단의 위로 또 2m 정도의 석축의 흔적이 보인다. 이 위층 석축은 다 무너져 내린 형태이다. 맨 위로 올라갔다. 200년은 됨직한 소나무 한 그루가 가지를 뻗고 서 있다. 

사지 안으로 들어가니 돌로 쌓은 우물터가 보인다. 밑에는 흙이 쌓여 앙금이 졌지만, 지금도 맑은 물이 고여 있다. 아마도 이 터에 남아있었던 진각국사의 사리탑과 비 등으로 유추할 때, 창성사는 고려 초에 창건된 절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진각국사의 비에는 국사가 13세에 입문한 뒤 여러 절을 다니며 수행하고, 부석사를 중수하는 등 소백산에서 76세에 입적하기까지의 행적이 실려 있다. 입적한 다음 해인 우왕 12년인 1386년에 광교산 창성사 경내에 이 비가 세워졌다. 이 비의 내력만으로도 창성사는 625년이 지난 절이었으니, 아마 그 이전에 지어졌다고 보면, 그 역사가 상당한 절이었을 것이다.

약 500평 정도의 규모를 가졌을 창성사지. 그 안 서북쪽의 대웅전지에는 장대석으로 조성한 기단석과 여기저기 주초로 사용했던 돌들이 보인다. 이곳에는 탑재편과 기단의 갑석 등도 보이는데, 어느 것 하나 잡초더미 때문에 제대로 알아보기가 힘들다. 위편 석축 끝으로 가서 산 아래를 바라다본다. 이곳에 절을 지은 이유를 알만하다. 저 멀리 아름다운 산의 능선이며 수원 시가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에 올라 앞으로 펼쳐진 산등성이를 보노라면, 왜 이곳에 절을 지었는가를 알 수가 있다. 피안이 멀리 있는 곳이 아님을 창성사지에서 느낀다. 바람 한 점이 흐르는 땀을 식혀준다. 염불소리가 그친 곳에, 바람소리가 대신 한다. 
입구에 안내판 하나 그리고 식당을 통과하지 않고 내를 건너 오를 수만 있다면, 그리고 정비만 되었더라면 이보다 좋은 오름길을 없을 듯하다. 못내 그것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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