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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터를 닦다가 발견한 봉녕사 삼존불
하주성/민속학자, 문화재 답사 전문가
2014-03-03 13:17:47최종 업데이트 : 2014-03-03 13:17:47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절터를 닦다가 발견한 봉녕사 삼존불_1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1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석조삼존불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 248번지에 소재한 비구니의 요람 봉녕사. 봉녕사는 비구니 승가대가 있는 절이다. 
봉녕사의 용화각에는 고려시대의 석불로 보이는 석조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이 석조삼존불은 대웅보전 뒤편 언덕에서 건물을 지으려고 터를 닦던 도중에 출토되었다고 한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1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석조삼존불상은,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입상을 배치하고 있다. 불상과 연화대좌는 각각 하나의 석재로 구성이 되었는데, 모래가 많이 섞인 화강암으로 조성을 하였다. 삼존불 모두가 뚜렷한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는데, 이는 오랜 시간 땅 속에 파묻혀 마모가 된 것으로 보인다. 

마모가 심한 석조삼존불

삼존불의 중앙에 좌정하고 있는 본존불의 얼굴모습은 원만한 편이다. 
그저 편안한 느낌을 받게 하는 본존불의 머리 부분은 파손되어 있고, 눈, 코, 입 부분은 심하게 마모가 되어 희미하다. 법의는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오른쪽 어깨가 노출된 우견편단으로, 법의의 주름도 상당히 도식화 되어있다. 

오른손은 무릎에 놓고 왼손은 가슴에 대고 있는데, 상당히 부자연스럽게 조각을 하였다. 밑에 받치고 있는 좌대인 연화대는 일석으로 2단으로 되어있으며, 가운데가 잘록하고 아래 위가 넓게 조성하였다. 연화대 위편은 커다란 앙련을 조각하였는데, 사이가 너무 벌어지게 잎이 조성되어 있어 매우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아래쪽 연화대에도 앙련이 흐릿하게 조성이 되어있으나, 상당히 마모가 심하여 정확하지가 않다. 본존불은 전체적으로 비례가 맞지 않는 편이다. 얼굴은 네모나게 조성을 하였는데, 양편의 귀는 어깨에 까지 늘어졌으며, 목은 두꺼워 얼굴의 넓이와 목이 뚜렷하게 구별이 되지 않고 있다. 

절터를 닦다가 발견한 봉녕사 삼존불_3
협시불로 마멸이 심하여 제대로 알아보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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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터를 닦다가 발견한 봉녕사 삼존불_4
협시불의 대좌에는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다
 
섬세한 연화문이 새겨져 있는 협시불

요즈음은 문화재 촬영을 엄격하고 금하고 있다. 자칫 이야기를 하지 않고 촬영을 하다가 들키기라도 할양이면 괜스레 경을 치기도 한다. 
하지만 문화재를 보고 그냥 돌아설 수는 없는 일. 마침 봉녕사를 찾아갔던 날은, 절집에 행사가 있어 사람들이 발 디딜 틈이 없이 모인 날ㅇ었다. 그 틈에도 문화재를 촬영하겠다고 안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피해 조심스럽게 촬영을 한다. 

본존불의 좌우에 서 있는 협시불의 얼굴 형태는 원만한 편이나, 각 부분은 마멸이 심하여 정확한 모습을 알아보기가 힘들다. 협시보살의 법의는 두 어깨를 모두 가린 통견으로 조성을 하였는데, 조각 등은 섬세하지 못하다. 왼손은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무릎 밑으로 내리고 있으며 원추형의 대좌에는 연화문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삼존불이 모두 평평한 느낌을 주는 영감 없는 조각 기법이나, 각 부분의 형식과 표현 수법이 도식화 되어 있다는 점으로 보아 고려시대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삼존불 모두 전체적으로 표현기법 등이 동일해, 한 사람의 장인에 의해서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벌써 봉녕사를 찾아가 삼존불을 촬영한 것이 몇 번째인지 모른다. 아마도 처음 봉녕사를 찾았던 것이 벌써 십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사찰도 많이 변했지만, 하지만 삼존불의 모습은 언제나 한결같다. 그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고 있는 듯하다. 날이 갑자기 추워졌는데 오늘은 봉녕사를 찾아, 이 겨울 제발 이 땅에 화가 없게 해달라고 빌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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