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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문
2008-01-10 15:06:29최종 업데이트 : 2008-01-10 15:06:29 작성자 :   

장안문_1
장안문_1


 시설물명 :  장안문
 
 유  형 :  건축
 
 소 재 지 :  경기도 수원시 화성성곽 내 위치




상세정보

 장안문[편액은 전 참판 조윤형(曺允亨)이 썼다]은 성의 북문이다.
행궁의 왼쪽 편인데 동쪽으로 780보되는 곳에 사좌(巳坐) 해향(亥向)으로 앉았다. 문의 안과 밖은 홍예로 되어 있다. 안쪽 홍예는 높이 19척 너비 18척 2촌이고, 바깥 쪽 홍예는 높이 17척 5촌, 너비 16척 2 촌, 전체 두께는 40척이다.

안쪽의 좌우에 있는 무사(武砂)[성석이 크고 잘 다듬어진 것으로 문 옆의 석면(石面)이 된 것을 무사라 한다]는 각각 아래 너비가 67척 8촌, 높이가 23척 5촌, 왼쪽과 오른쪽의 와장대(臥長臺)는 각 32척 4촌, 섬돌은 각 23층 너비는 17척 2촌이다. 바깥 쪽의 좌우 무사는 각각 너비가 41척 높이가 23척 5촌이다. 안팎의 홍예문 사이에 있는 좌우 무사의 높이는 각 21척, 양쪽 선문(扇門) 안은 철엽(鐵葉)으로 하고 빗장을 설치하였다. 홍예의 덮개 판에는 구름 무늬를, 그리고 판 위에는 세 가지 물건[석회, 가는 모래, 황토]으로 쌓았는데, 두께는 4촌이다. 안팎의 홍예 위에는 장군 모양의 무사와 2층의 장대를 얹었으며 홈통[너비 1척 깊이 5촌]을 네 곳에 설치하였다.

안쪽의 평여장(平女墻)은 너비 88척 7촌, 높이 4척 3촌, 두께 2척 5촌이고 바깥 쪽 여장의 높이 두께도 같으나 너비는 동서장 밖으로 각각 7척 4촌이 나왔다. 이 부분에서는 높이가 6척이 되어 옹성 위의 작은 홍예와 연결되며 타구(口)는 10개[첩(堞)은 11개]를 벌여 놓았다. 그리고 네모진 총혈(銃穴) 12개[네모의 한 쪽 길이는 8촌이며, 첩마다 1 개를 뚫었고, 가운데에 있는 1개의 첩에는 2개의 총혈을 뚫었음]를 내었다. 동쪽과 서쪽의 여장은 너비 3척 5촌, 높이 5척 6촌, 중앙에 각각 작은 판자문을 두었는데 높이는 6척 5촌 너비는 6척이다. 장(墻) 안에는 2층의 누를 세웠는데 전체 높이는 32척 9촌, 아래 위 각각 10간(間), 가로 너비는 5간 세로 길이는 2간이다. 

아래 층[안은 7포, 바깥은 5포] 정면 간의 너비는 22척 5촌인데, 바닥[높이 1척]에는 널판지를 깔았다. 오른쪽과 왼쪽 각각 둘 씩 협간(夾間)이 있는데 너비는 모두 12척이며, 세로 길이 2 간이고 전체 길이가 24척이다.
서쪽 협간의 첫째 간과 동쪽 협간의 두 번째 간에는 각각 곡란층계(曲欄層階)를 설치하여 위층으로 통하게 하였다. 서쪽 층계는 북쪽에서 올라가며 동쪽 층계는 남쪽에서 올라간다[서쪽 층계 아래에 살문[箭門]이 있는데 잠가두었다가 임금이 오실 때에는 연다]. 

위층[안팎 모두 7포]은 정면의 간과 좌우 협간은 너비가 모두 하층과 같고 두 번째 협간은 각각 너비가 9척이며, 그 세로가 2간 전체 길이는 18척인데 모두 널판지를 깔고, 사면에 널판지 문을 달았다. 그리고 3면에는 모두 짐승의 얼굴을 그려 호로전안(葫蘆箭眼)[널판지마다 구멍이 하나씩 있는데 경(經)이 3촌 직봉(直縫) 역시 3촌이다]을 뚫었는데 안 쪽에는 태극을 그렸다. 단확(丹)은 3토를 사용하였다. 대들보 위에는 회를 발랐으며 문 안 서쪽 가에는 수문청을 별도로 세웠다.[협도(夾刀) 넷을 세웠다]

북옹성은 장안문의 외성이다. 성서(城書)에는 옹성의 크기는 정성(正城)의 대소에 따르며 모양은 옹기를 반으로 나눈것과 같다고 하였다. 문위에 적루(敵樓)를 세우지 않는 것은 정성이 가로 세워져 있어 적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옹성은 정문 좌우의 무사에서 각각 7보 되는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벽돌을 쌓아서 성을 만들었는데, 높이는 17척 안쪽 둘레는 159척 6촌 바깥 둘레는 209 척이고, 아래는 두께가 15척이고 위는 줄어 들어서 12척이다.

바깥 쪽에 현안(懸眼) 16개를 뚫었다[각각 길이 2척, 지름 2척 2촌]. 안 쪽에 벽돌로 된 홈통 8개[지름 각 5촌]를 설치하였다. 옛 제도에는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한쪽 문만을 열었으나 지금은 사방으로 열리고 팔방으로 통한다는 뜻을 취하여 중앙에 문을 설치하여 정문과 마주하게 하였다. 양문의 사이는 10보 3척이며 돌로서 안팎으로 홍예를 만들었다.


안쪽의 홍예는 너비가 18척, 높이 19척이고 바깥 홍예는 너비가 16척 높이가 17척 5촌이며 안팎 홍예의 사이는 좌우 높이가 21척이고 양 선문(扇門) 안에는 쇠로서 빗장이 설치 된 것이 정문과 같다. 홍예의 덮개판 위는 세 가지 물건으로 쌓고, 다시 여러 장의 벽돌로 쌓았다. 그 위에 오성지(五星池)[『실정기(實政記)』에 이르기를 오성지는 모양이 구유같고 5개의 구멍을 뚫었는데, 크기는 되(升)만 하다. 적이 문을 불태우려 할때 물을 내려보낼 수 있다]를 설치하였는데, 오성지 전체 길이는 14척 너비는 5척 깊이는 2척이고, 각 구멍의 지름은 1척이다. 오성지 위에는 성가퀴 9첩을 설치하였는데, 전체 너비 38 척이고, 그 좌우는 1층을 낯추어서 凸 모양의 성가퀴 7첩을 설치하였다. 너비는 각각 10척 2촌이며 높이는 모두 5척이다. 

성과 만나는 곳에서 다시 凸의 반쪽 모양으로 층을 만들었는데 높이는 9척으로 각기 총안을 1구멍씩 뚫었다. 안쪽은 둘레가 평평한 여장으로 높이는 3척 5촌, 두께는 모두 2척 6촌이다. 옹성 위는 모두 네모난 전()을 깔고 좌우 끝에는 벽돌로 된 홍예에 작은 판문을 설치하여 성의 위와 통하게 하였다. 문의 양 옆은 평여장을 설치하였는데 높이는 10척 7촌이다.

북성의 적대는 2개로서, 각각 장안문의 좌우 53보 되는 곳에 있다. 옛 제도에는 70보 되는 곳에 1대를 세우고, 활화살 화창(火槍)을 대 위에 갖추어 둔다고 하였다.

성서에는 지금의 성은 화살과 탄환이 필요 없다고 하였다. 비록 창이나 선()으로 위로 찌른다 해도 전체 높이가 여유가 있고, 대의 양쪽 가장자리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적이 곧 바로 성 아래로 다가오지 못할 것이다. 또 포물선으로 날아오는 화살이나 비스듬히 날아오는 탄환도 대위에 있는 사람을 해치지 못할 것이라 했다.
대략 이 제도대로 하면 대의 높이는 2척으로, 원성의 성가퀴와 나란하고 반은 성 밖으로 나오고 반은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바깥 쪽의 아래 너비는 26척이고, 위로는 줄어들어 너비가 21척이다.
현안(懸眼)[각각 길이는 20척이고, 지름은 5촌이다]이 3개 있다. 

좌우의 아래 너비는 각각 29척이고 위로는 줄어들어 너비가 24척이다. 凸 모양의 성가퀴로 둘렀는데, 바깥 3면은 11첩(堞)이 있는데 높이는 5척이고 두께는 2척 8촌으로 각각 총안[사방 6촌]을 뚫었다. 내면은 좌우 평평한 성가퀴에 각각 1첩씩인데 높이는 8척 이고 가운데 5척은 속이 비게 하여 돌계단을 설치하여 대 위와 통하게 하였다. 



사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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