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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성'은 옛 수원의 터에 있다
2008-01-02 19:31:42최종 업데이트 : 2008-01-02 19:31:42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화성'은 일제 시기 이후 얼마 전까지 '수원성'이라고 불렸다. 

이를테면 남쪽에 있는 산을 남산, 북쪽에 있는 문을 북문이라고 불렀듯이, 수원에 있는 성이므로 일인들이 그냥 수원성이라고 부르게 된 이후 이 명칭이 굳어져 버린 것이다. 

다행히 10여년전 서지학자인 고 이종학 선생을 비롯한 뜻 있는 시민들의 노력으로 '화성'이라는 제 이름을 되찾았고 지금은 이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록되었다. 

그러면 수원성은 없을까? 
아니, 화성과 함께 수원성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수원성은 수원에 있지 않고 다른 지역에 있다. 

어디냐 하면, 옛 수원이 자리했던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와 봉담면 와우리에 이르는 지역이다. 
다시 말해서 와우리의 수원대학교에서 융·건릉으로 넘어 가는 곳, 경성종합고등학교 남쪽에 있다. 

일반적으로 '수원고읍성(水原古邑城)'이라고 불리는 토성(土城)이다. 
'신증 동국여지승람'에는 '토축(土築)이며 주변 둘레가 4천35척(1척은 30.303cm)'이라고 되어 있는데 지금은 상당 부분이 훼손된 상태다. 

성벽은 건릉 북쪽 해발 86.4m의 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내려가 수원대학교 옆 길까지 약 270m가 남아 있다. 
안쪽 경사면의 높이는 약 4.5m, 바깥 경사면 의 높이는 7.6m 정도이며, 상단부의 폭은 2m 가량이다. 
주민들이 길이 나있는 지역을 고서문(古西門)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미루어 아마도 옛날 이곳에 수원고읍성의 서문이 있지 않았나 추측된다. 일부에서는 고수문(古守門)이라고도 부른다.

남아 있는 토성의 보존상태는 비교적 좋은 편이다. 
서편 성터는 고서문으로부터 수원대학까지 약 160m의 토루(土壘)가 남아 있었으나 민가가 들어서 전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원래 수원고읍성의 토루는 고서문으로부터 도로 건너 수원대 도서관까지 연결되고 수원대를 거쳐 수기리까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문화유적 총람'에는 '수기리 성지는 화성군(현재는 시) 봉담면(현재는 읍) 수기리 3-2, 4-1의 경계, 태안면과의 경계에 높이 약 3.5m의 토루 360m 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흔적이 없다'라고 기록돼 있다. 

수원고읍성의 남문터는 융·건릉 건너편 형주건설 서쪽 도로변에 있으며 길이 21.7m, 폭 8m, 높이 2.1m의 토루가 남아 있다고 한다. 
또 동편 산 쪽의 성안에는 고분으로 보이는 터가 있는데 이미 도굴을 당해 노출된 단면이 남아 있다. 

수원고읍성의 성벽은 북쪽의 경사도가 남쪽의 경사도보다 심해 북쪽 지역에 대한 방어가 주목적이었음을 알게 한다. 
이 성터에서 채집되는 유물로 보아 축성 시기는 삼국시대까지는 미치지 않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이 성은 수원읍치(邑治)를 보호하기 위한 쌓은 것으로 보인다. 

수원부의 읍치는 정조 13년(1789) 양주 중량포 배봉산(현 서울시립대)에 있던 사도세자의 능인 영우원을 옛 수원부읍치(현 융·건릉)로 옮기면서 현 팔 달산 아래로 이전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기록에 보면 수원은 삼한시대(三韓時代)에 모수국(牟水國), 고구려시대에 매홀(買忽), 통일신라 시대에 수성군(水城郡), 고려시대에 수주(水州),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 등으로 불려져 왔던 유서 깊은 고장이었다. 
또 한반도의 중부권에 위치한 삼국 쟁패의 지정학적 요충지이자, 남양(南陽) 이라는 대 중국 해상 교역의 관문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중요한 지역으로서 항상 주목을 받아 왔다. 

어디 그뿐인가? 비옥하고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바다와 멀지않아 각종 해산물들이 풍성하다. 
따라서 이렇듯 중요한 지역에 읍성이 만들어진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이병도씨의 '한국고대사연구'에 따르면 '모수국은 광개토호태왕비문(廣開土好太王碑文)의 백제 정벌 58성에 나오는 모수성(牟水城)으로 생각되며, 수원 옛 이름 중의 수성(水城), 수성(隨城)이 있으므로 아마 수원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위에서 소개한대로 삼국시대 이전의 유물이 발견되지 않아 확실치는 않지만, 필자는 광개토대왕비문에 나오는 '모수성·수성'이라는 이름이 아마도 수원고읍성의 원래 이름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수원고읍성은 비록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정조대왕과 부친 사도세자(장조)께서 편안한 휴식을 누리실 수 있도록 옛 수원 고을 화산 일대를 아늑하게 감싸 안고 있다. 
수원고읍성은 비록 현재의 행정구역상 수원 땅은 아니지만 이 일대가 수원의 뿌리라는 점에서 관심 있는 분들의 답사와 보존 노력이 더욱 요구된다. <김우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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